프로배구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
[19돌 창간특집] ② 스포츠 명장들의 리더십 배워볼까
프로배구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
이런 사람 드물다. 겉으로는 호랑이 같고, 안으로는 여우 같은….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이 딱 그렇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호랑이 선생님’이다. 경기도중 선수들이 잘 못하면 양복 윗도리를 벗어던지고, 거침없이 선수들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가끔은 욕도 한다. 또한 심판판정이 마음에 안 들면 경기위원장이나 심판위원장에게 달려가 엄청난 항의를 해댄다. 이럴 때면 눈에 핏발이 다 서 있다. 정규리그 때 대한항공에 패한 뒤에는 선수들에게 밤늦게까지 얼차려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정말 다혈질이다.
하지만 찬찬히 지켜보면 김 감독의 머릿 속에는 여우 몇마리가 숨어 있다. 경기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 2006~2007 시즌 V-리그 삼성화재와의 챔피언결정전서 손쉽게 3-0으로 이길 수 있던 데는 시즌과 반대로 가져간 김 감독의 작전이 있었다. 좌우 바깥쪽 공격을 자제하고 가운데 속공플레이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자 삼성화재 베테랑 선수들은 적잖이 당황해야 했다. 김 감독은 경기 뒤 “우리의 적은 삼성화재라고만 생각하고 시즌 내내 삼성화재의 17경기 비디오를 계속 돌려봤다”고 고백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 열렸던 도하아시아경기대회 때는 남자대표팀 감독을 맡아 주위예상을 깨고 값진 금메달을 수확해 내기도 했다. 8년 만에 맞붙은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세트마다 오더를 바꿔 상대의 허를 찌른 게 컸다. 불같은 성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갈공명의 모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김 감독의 배구에 대한 열정은 평상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안남수 현대캐피탈 사무국장은 “김 감독님은 내일 어떤 선수에게 무엇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시면 선생님이 수업준비하시듯 밤새 그것을 공부하신다”고 했다. 김 감독이 지난 시즌 동안 잔병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시즌이 시작되면 다른 것은 모두 중단한 채 불철주야로 배구에만 매달린다. 지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탓에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며, 이때문에 그의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전혀 없다.
김 감독 부임 이전에 현대캐피탈은 종이호랑이 같았다. 성적은 늘 삼성화재에 밀렸다. 그러나 김 감독은 모래알 같던 현대캐피탈을 찱흙처럼 끈기가 있는 팀으로 변모시켰다. “김 감독 부임 후 선수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다”는 게 주전 레프트 송인석의 말. 김 감독의 지휘 아래 확 바뀐 현대캐피탈은 2년 연속 V-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김 감독의 지도 스타일을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선수들에게 훈련의 이유와 목적을 설명한다. “왜 런닝을 해야 하는지”부터 “이런 상황에서 왜 이렇게 공격해야 하는지” 일일이 풀어서 선수들에게 설명한다. “선수들에게 이런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납득시켜야 훈련의 효과가 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김 감독을 믿고 따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지휘대로 움직이면 대부분 이겼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이제 그를 “배구의 신”으로 부른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프로야구 김성근 SK 감독
‘균등한 기회’ 원칙 더그아웃의 솔로몬
김성근 SK 감독은 철저히 기본에 충실한 평등의 리더십을 추구한다. 김 감독에게 ‘이름값’은 무의미하다. 베테랑이든 신인이든, 그리고 10년 연속 3할을 쳤든, 2할을 쳤든 그는 현재의 기준으로 모두를 똑같이 평가한다. “과거에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니라 “지금 열심히 잘하고 있느냐”가 선수들의 평가잣대다. 김 감독은 1군· 2군 가리지 않고 자기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를 중용한다. “내 밑에서 모든 선수는 제로(0) 베이스에서 평가받는다”는 게 그의 신조다. 베테랑 박재홍이 전지훈련에서 신인선수와도 같은 지옥수비훈련을 소화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이런 김 감독의 리더십으로 2군 선수들을 몇년 만에 처음으로 1군에서 빛을 볼 기회를 얻는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전지훈련 때 열심히 하고, 시범경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선수가 있더라도 시즌 시작 후 몇차례 기회만 준 채 뚜렷한 결과물이 없으면 “2군 선수는 한계가 있다”며 다시 2군으로 돌려보낸다. 똑같은 성적이라면 2군 선수보다는 1군 붙박이 선수를 기용하는 게 일반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선수가 치열하게 1군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1군 선수들과 똑같이 균등한 기회를 준다. 1994년 데뷔 이후 2군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던 LG 신윤호가 2001년 15승(6패) 18세이브 0.714의 승률로 투수 3관왕을 차지하며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것은 김 감독이 그에게 주었던 ‘균등한 기회’ 때문이었다. 롱릴리프와 마무리 두가지 역할을 다하면서 혹사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도 야구 관계자들은 말한다. “만약에 신윤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은퇴할 때까지 그냥 2군 투수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 감독은 기회를 줬고 신윤호는 어쩌면 자기 생애에 없을 수도 있던 가장 찬란한 한 시즌을 만끽했다.”
김 감독은 1군에서 태업성 플레이를 하는 스타 선수가 있으면 아무리 팀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그를 2군으로 내려보낸다. “야구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글러브를 내던지거나, 공을 발로 차거나 하는 행동도 김 감독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김성근 감독의 가장 큰 무기는 풍부한 이론과 경험이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 투구폼을 보고 김 감독은 어떤 공이 나올지 거의 예측해내며, 타자들이 친 타구 방향을 보고도 타격에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를 짚어낸다. 뉴욕 메츠 박찬호가 김 감독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받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승엽이 일본에서 슬럼프에 빠졌을 때 김 감독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에 야구팬들은 김 감독을 “야구의 신”으로 부른다. 그의 해박한 야구지식은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많이 아는 게 탈이 날 때도 있다. LG 감독으로 재임할 당시 김 감독은 선수들의 부분지도를 타격코치나 투수코치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나서서 모든 일을 총괄했다. 이병규(현 주니치 드래건스)의 타격법까지 바꾸려고 했을 정도다. 다행히 SK 감독 부임 후에는 대부분 코치들에게 맡기는 상황. 김 감독은 최근 “예전에는 왜 모든 걸 내가 다 하려고 했는 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5년만에 프로야구 현장으로 돌아온 김 감독은 현재 “이기기 위한 야구”가 아니라 “팬을 위한 야구”를 선언한 상태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프로농구 창원 LG 신선우 감독
‘나만의 색’ 만들어낸 카리스마
그의 별명은 ‘신산’(神算)이다. 신의 경지에 이를만큼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얘기다. 창원 LG 신선우(51) 감독.
신 감독이 코트에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에는 따뜻함보다는 냉철함이 더 강하게 묻어난다. 이따금 심판판정에 항의하는 뜻으로 웃음을 비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강한 카리스마로 코트를 지배한다. 그러나 여간해서 화를 내는 법은 없다. 그가 ‘민철수’라고 부르는 찰스 민렌드도 그의 이런 냉철함을 배운 까닭인지, 상대의 거친 파울에도 절대 자제력을 잃는 법이 없다.
신 감독의 ‘손가락 지휘’는 마치 야구감독의 사인같다. 양손 검지손가락을 흔들기도 하고(1대1을 하라는 뜻), 엄지와 검지, 검지와 약지를 내보이기도 한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생각되면 벌떡 일어나 예의 ‘손가락 사인’을 낸다. 그것은 초반 기선제압이 중요하다면 1쿼터가 될 수도 있다. 승부를 결정짓는 3쿼와 4쿼터에서는 더더욱 이런 모습이 자주 보인다.
신 감독은 프로농구 원년(1997년)부터 지금까지 11시즌 동안 한번도 지휘봉을 놓지 않은 유일한 사령탑이다. 11차례 도전 중 무려 8차례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정규리그 우승 3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 통합우승 2회를 일궈냈다.
신 감독은 프로농구판을 정확히 꿰뚫는 눈이 있다. 그는 “국내 프로농구는 춘추전국시대다. 프로농구 1세대 스타선수들이 전성기가 지났고, 2세대는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토털 바스켓’, ‘패턴 농구’를 밀고 나가는 것도 이런 농구판의 흐름에 따른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려도 자신만의 농구를 꿋꿋하게 밀고 나간다. 2005년 케이씨씨(KCC)에서 엘지로 둥지를 옮겼을 때 엘지 선수들은 그의 농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규리그 9위라는 참담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올해는 완전히 달라졌다. 한해 동안 ‘신산 농구’에 익숙해 진 덕분에 정규리그 2위로 7계단이나 도약했다.
‘토털 바스켓’은 주전 5명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그가 맡은 팀은 주전 외에 백업 선수들도 든든하다. 케이씨씨 시절 포인트가드 이상민 뒤에는 표명일이 있었고, 엘지에도 박지현과 이현민을 번갈아 포인트가드로 기용했다.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선 선수들도 과감히 물갈이 한다. 1998~99년 우승의 주역이던 재키 존스를 내보냈고, 올해는 찰스 민렌드를 케이씨씨에서 데려왔다. 지난해에는 전체 엔트리 15명 중 무려 9명을 교체했다. 케이씨씨 시절에는 에스케이(SK)로 트레이드했던 조성원을 재영입해 정상에 다시 오르기도 했다.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정신. 그것이 한국 프로농구 역사상 최초로 300승을 돌파한 원동력이고, 그가 ‘한국의 래리 브라운’이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프로야구 김성근 SK 감독
‘균등한 기회’ 원칙 더그아웃의 솔로몬
프로야구 김성근 SK 감독
프로농구 창원 LG 신선우 감독
‘나만의 색’ 만들어낸 카리스마
프로농구 창원 LG 신선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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