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8월2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첫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이동관 전 위원장 사퇴로 5명의 상임위원 중 이상인 부위원장 1인만 남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방통위 소관 업무는 대부분 상임위원 2인 이상의 요구로 소집하는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만큼, 이 부위원장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방통위가 사실상 불능화 단계에 접어든 직접적 원인은 이 전 위원장의 ‘탄핵 전 사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를 대통령 몫의 상임위원 2인 체제로 운영해온 윤석열 대통령한테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언론계 안팎에서 나온다.
3일 취재를 종합하면, 방통위는 이상인 부위원장이 위원장 직무를 대행하는 1인 체제로 전환했다. 이와 관련해 방통위는 “인사와 예산 집행 등 일반 사무는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에서 처리·진행할 수 있으나, 심의·의결 기구로서의 전체회의 소집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법(12조)은 지상파 방송 재허가와 공영방송 사장·이사 임명 등 29개 방통위 소관 업무를 심의·의결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방통위는 대통령 등 여권 추천 상임위원 3명과 야당 추천 2명 등 모두 5명의 위원으로 꾸려지며, 안건 심의·의결은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이뤄진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과학기술정보방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과반수’란 최소 2인 이상의 상임위원이 의결에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만큼 1인 체제에서는 안건을 의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일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나며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는 이상인 부위원장 1인 체제가 됐다. 최성진 기자
방통위가 안건 의결 자체가 불가능한 1인 체제로 전락한 근본 원인은 상임위원 5명의 합의제 독립기구인 방통위를 사실상 독임제 부처처럼 운영해온 윤 대통령한테 있다는 것이 일부 언론 전문가와 야당의 시각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방통위의 5인 체제가 무너지게 된 근본적 출발점은 임기가 보장된 한상혁 위원장 면직과 야당 추천 최민희 상임위원 내정자에 대한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윤 대통령의) 임명 거부”라고 짚었다.
윤 대통령은 감사원 감사 결과와 검찰 기소를 이유로 지난 5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을 면직시켰다. 또한 야당이 추천한 최민희 상임위원 내정자에 대해서는 임명을 거부한 상태에서 대통령 추천 몫의 이상인 위원과 이동관 위원장만 차례로 임명했다.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이사진 및 경영진 교체와 와이티엔(YTN) 등 공적 소유구조를 갖는 보도전문채널 민영화 시도가 ‘이동관-이상인’ 2인 체제에서 급물살을 탔다.
윤 대통령과 여권이 2인 체제의 방통위를 앞세워 ‘언론 정상화’라는 이름 아래 추진해 온 공영방송 경영진 물갈이와 민영화 작업 등은 이 전 위원장의 사퇴로 급제동이 걸리게 됐다. 다만 이 전 위원장이 헌법재판소의 심판까지 길게는 180일이 걸리는 국회의 탄핵을 앞두고 자진 사퇴라는 형식을 취해 물러난 만큼, 후임이 언제 누구로 임명되느냐에 따라 방통위발 언론 장악 논란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현업·시민단체는 이 전 위원장의 사퇴 당일 성명에서 “이 위원장이 오늘 ‘자진’ 사퇴하고 대통령은 이를 즉시 재가했다. 국회의 탄핵을 피해 방통위를 이용한 언론 장악과 표현의 자유 억압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윤석열 정권 차원의 폭력적 의지를 재확인하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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