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20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성진 기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티브이 수신료 분리 징수와 관련해 ‘현행 방식 유지가 타당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 지금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은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시행령 개정 추진 과정에서 제대로 된 숙의나 논의 과정은 물론 심지어 이해당사자 의견 청취도 건너뛴 채 (분리 징수라는) 대통령실의 권고를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권남용의 소지가 상당히 높다고 판단합니다.”
김현 방통위 상임위원은 지난 20일 오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의 ‘월권 논란’에 대해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추천으로 상임위원이 된 김 직무대행은 한상혁 전 위원장의 면직 이후 방통위 회의운영 규칙에 따라 ‘연장자’라는 이유로 임시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김현 상임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한 전 위원장의 면직과 야당 추천 상임위원 임명 거부 사태 속에서 3인(김효재·이상인·김현) 체제로 굴러가고 있는 방통위의 유일한 야당 추천 상임위원이다.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 과정과 김 직무대행 체제의 문제 등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티브이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꼽는다면.
“지난 3월 대통령실에서 수신료 징수 방식에 대한 국민 의견을 듣겠다며 국민제안 누리집에 글을 올렸는데, 이것부터 잘못됐다. 예컨대 대통령실은 수신료 통합징수 방식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전하며 ‘2006년 통합 징수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된 적도 있다’고 했는데, 그 결과는 언급하지 않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읽는 사람은 ‘헌법소원이 청구될 만큼 문제가 많은 방식’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지 않나.(당시 헌재는 ‘헌법 위반이 아니다’라며 각하 결정) 추진 과정에서 방통위나 국회 차원의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 핵심 이해당사자라 할 수 있는 <한국방송>(KBS)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 등이 가장 큰 문제다.”
-방통위의 분리 징수 권고 이행 과정은 어떤가.
“기본적으로 방통위는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 먼저 연구용역을 주고 해당 분야 전문가와 이해관계 집단의 의견을 듣는다. 또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방통위 내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입장을 정했다. 이번에는 지난 5일 대통령실에서 분리 징수 권고 사실을 발표한 뒤, 14일 방통위 전체회의에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이 보고됐다. 또 이틀 뒤 시행령 개정안의 입법예고가 이뤄졌는데, 상임위원 간담회와 전체회의 때 규제심사 결과에 대한 보고조차 못 받았다. 대통령실 권고안은 물론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서도 제대로 검토할 만한 시간과 조건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졸속으로 분리 징수를 몰아붙인 것이다.”
-방통위 사무처 입장은 수신료 분리 징수가 비규제 대상이라는 것 아닌가.
“아니다. 케이비에스(KBS)의 재원 및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 규제사항이다. 방통위 담당 과에 확인해보니 국무조정실에 규제심사를 요청한 게 13일이고, 하루 뒤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한다. 이는 곧 규제심사 요청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간담회(12일)에 시행령 개정안 안건을 올렸다는 이야기다.(방통위는 대개 매주 월요일 상임위원 간담회에서 이틀 뒤 전체회의 안건을 논의·확정한다) 규제심사 결과가 하루 만에 나왔다는 것도 졸속이다.”
-과거 방통위의 정책 추진 사례와 비교해보면 어떤가.
“전무후무한 일이다. 수신료 징수 체계는 모법인 방송법에 규정돼 있다. 지금 방통위는 모법은 그대로 둔 채 시행령을 한 줄 고쳐서 분리 징수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 물론 법무부나 행정안전부 등 독임 부처의 경우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방통위는 독임 부처가 아닌, 독립성이 강조되는 합의제 기구다. 방송·통신 정책은 굉장히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충분히 논의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으라는 취지다. 아울러 방통위는 21대 국회에서 정경희·허은아 의원의 수신료 분리 징수 법안이 발의됐을 때, 두 차례 모두 “현행 결합징수 방식 유지가 타당하다”며 ‘수용 곤란’ 답변을 낸 바 있다. 이게 그동안 수신료 분리 징수에 관한 방통위의 입장이었는데, 입장을 바꿔 단 열흘 만에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니 너무 어이가 없다.”
-민주당도 야당 시절 수신료 분리 징수 법안을 발의한 적 있다.
“당시 논의는 정치권과 국회가 중심이었고 일시적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서 권고하고 방통위를 통해 이를 일사천리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 수신료 제도를 바꾸려면 국회 차원에서 수신료위원회 등 기구를 꾸려 공영방송의 재원 구조와 징수 방식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안을 만들어 추진해야지 이런 식으로 ‘용산’이 직접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안 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단체는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에 대한 탄핵도 요구하고 있다.
“방통위의 모든 상임위원은 심의·의결의 주체로서 외부의 간섭이나 지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소신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각 상임위원에 대한 위원회 보고가 충실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지금 김 직무대행 체제의 방통위에서는 야당 추천 상임위원에 대해 이런 필수적 보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히 보고 누락의 문제가 아니라 방통위라는 합의제 기구의 설립 취지마저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태다.”
글·사진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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