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장에서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민인숙씨. 그는 “코로나로 단기 일자리도 없다”며 “지금 자른다는 건 살인이에요, 살인. 그냥 죽으라는 거”라고 말했다.
“아이엠에프(IMF) 때 같아요. 그땐 젊기라도 했지….”
유복남(62)씨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올해로 9년째 엘지트윈타워에서 청소를 하는 유씨의 생일은 12월31일이다.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생일에 해고된다. 남편(67)이 지난해 정년퇴직하는 바람에 생계를 혼자 책임지고 있는 유씨는 “당장 앞일을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다”고 했다.
유독 몸이 약했던 유씨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다. “그저 건강하게, 살림 잘하는 현모양처가 꿈”이었지만 삶은 녹록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엘리베이터 제조업을 하던 남편은 사업을 접었다. 딸은 중학교 1학년,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유씨는 결혼 16년 만에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부부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한번 일터를 잃은 남편은 안정적인 직장을 잡지 못했고, 유씨 역시 53살이 되던 해부터 청소 일을 시작했다. 50대 여성에게 돌아갈 ‘좋은 일터’는 많지 않았다. <한겨레>가 만난 청소노동자들은 다른 일을 하다가 50대 중반쯤 청소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유씨에게 해고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유씨는 월급으로 약 170만원을 받는다. 이조차도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월급이 100만원도 안 됐어요. 3년 전만 해도 130만원 받고 일했고요.” 유씨에게 가난은 열심히 빨아도 더 나아지지 않는 대걸레처럼 느껴졌다. 부지런히 벌어도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농성장에서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유복남씨.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60대에 접어든 탓에 유씨 부부가 다른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우리 아저씨도 나이가 많고, 몸도 왜소해서 써주는 데가 없어요. 경비 일도 못 한다니까. 나도 이 나이 먹고 어디 다른 데 갈 수 있겠어요.” 유순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코로나19 확산은 유씨에게 또 다른 불안이다. 하지만 농성을 멈출 수 없었다. “코로나도 무섭지만, 지금 당장 생계가 달렸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유씨를 비롯한 파업 참가 노동자들은 매일 아침 체온측정을 하고 농성 내내 마스크를 쓰는 등 개인방역을 준수하며 파업하고 있다.
트윈타워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민인숙(63)씨에게도 올 연말은 유난히 춥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해고 통보와 남편의 위암 의심 진단을 동시에 받았다.
민씨는 15년 전부터 가정을 혼자 책임져왔다. 남편은 당뇨로 인한 각종 합병증으로 중환자실을 전전했다. 딸은 고등학생, 아들은 중학생이라서 돈 들어갈 일이 수두룩하다. 청소 일을 하기 전 민씨는 8년 동안 김치공장에서 “몸이 삭도록” 일했다고 했다. 하지만 손에 쥔 돈은 자녀 양육비와 남편 병원비로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50대 중반에 민씨는 트윈타워로 직장을 옮겼다. 마지막 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일했다. 청소 업무는 물론, 버려진 화분에도 정성을 쏟아 되살렸다. 덕분에 그가 담당한 층의 화장실은 화원으로 불렸다. 같은 층 직원들의 평가도 좋았다. 민씨는 동료들 사이에서 “직원들과 사이가 가장 좋은 조합원”으로 꼽힌다. 민씨는 2018년 모범 직원으로 뽑혀 표창장과 격려금을 받기도 했다.
23일 정오께 트윈타워분회에서 점심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는 원래 좀 무서운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민씨가 노조에 가입한 건 점점 더 심해지는 관리자들의 괴롭힘 때문이었다. 노조에서 평생 모르고 살던 자신의 권리를 알게 됐고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관리자의 부당한 지시에 맞설 수 있었다. 그는 “노조에서 난생처음 사람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농성장에서 구호를 외치면서도 민씨는 남편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다. 170만원 월급 중 남편 병원비와 약값으로 한 달에 50만~60만원이 들어간다. “해고되면 한 달도 버티기가 어렵다”고 민씨는 말했다.
“집이 어려워 국민학교(초등학교) 때부터 쌀 봉투 만드는 일을 했다”, “정말 악착같이 살았다”는 민씨는 이번 겨울을 온전히 날 수 있을까. “코로나로 단기 일자리도 없어요. 지금 자른다는 건 살인이에요, 살인. 그냥 죽으라는 거예요.” 민씨가 주름진 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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