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커넥트 오토바이 라이더 최현이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전자책 전문 1인 출판사를 운영하던 41살 최현이 배민커넥트 라이더가 된 건 지난 7월이었다. 최근 3~4년 동안 경쟁에 밀려 소득이 줄면서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고, 난치성 질환으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결론은 음식 배달 기사였다.
최현이 본격적으로 배달을 시작한 곳은 동네 배달대행 업체였다. 업체에서 오토바이를 빌릴 수 있지만 매달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해 중고 오토바이를 샀고, 보험도 들었다. 하지만 곧 걸림돌을 발견했다. ‘강제 배차’ 문제였다. ‘배민커넥트’나 ‘쿠팡이츠’ 같은 플랫폼과 달리 동네 배달대행 업체에는 배차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관제센터에서 지정해준 가게의 배달을 거부하면 언제 어떤 불이익이 떨어질지 몰랐다. 과속과 신호 위반, 인도 주행을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비 오는 날 하루 대여섯건 넘는 강제 배차가 들어오는 거예요. 10분 뒤에 조리가 끝나는 가게가 있어 그곳에 가서 음식을 픽업하고, 동선을 고려해 20분 뒤에 조리가 끝나는 가게까지 2개를 잡아놨는데, 갑자기 엉뚱한 곳으로 가야 하는 콜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또 5분 뒤에 음식이 나온다면서 현재 위치에서 15분 떨어진 식당에 가라고 하기도 해요. 이 콜을 따르자니 목숨 내놓고 달리는 위험에 노출되는 거죠.”
3개월 만에 배달대행 업체를 그만두고 배민커넥터가 된 최현은 처음에는 ‘에이아이(AI·인공지능) 추천 배차제’에 따라 자신이 “가고 싶은 곳만 하나하나 찍어서” 갈 수 있는 근무 여건이 좋았다. 하지만 이 역시 잠깐이었다.
‘배달의민족’은 지난 2월 시범 도입한 에이아이 추천 배차제를 7월1일부터 수도권 모든 지역으로 확대했다. 에이아이 알고리즘이 배달대행 기사의 동선과 주문 음식의 특성을 고려해 가장 적임자인 배달 기사(라이더)를 선정하고 최단 이동 경로와 시간을 안내하는 시스템이라고, 배달의민족은 설명한다. 라이더는 에이아이 추천 배차제와 직접 원하는 콜을 잡는 기존의 ‘일반 배차’ 모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최현의 ‘소박한 자유’는 수수료 500원 앞에서 꺾였다. ‘에이아이 추천 배차제’를 선택하면 일반 배차 모드로 일할 때보다 건당 500원의 수수료를 더 받는다. 건당 500원이지만, 일당을 고려하면 적은 돈이 아니었다. 주문에 빠르게 응답하려고 다른 라이더와 경쟁하는 ‘전투콜’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위안이 됐다.
그런데 이 역시 곧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인공지능이 실현 불가능한 요구를 해오는데, 라이더들이 이에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배민 라이더들은 “최근 에이아이 추천 배차제가 지나치게 제한된 시간 안에 음식을 배달할 것을 지시한다”고 입을 모은다. 배민 라이더의 업무용 앱인 ‘브로스’가 제시하는 이동시간이 일반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이동시간보다 짧다는 것이다. 최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빨리 가도 25분 걸리는 거리를 15분 안에 가라고 안내를 해요. 신호 5개 중에서 3개는 그냥 어기고 가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겨요.”
동네 배달대행 업체에서 일할 때는 이런 문제가 생기면 관제센터 매니저에게 항의라도 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사용자’와 싸우다 보면 말이라도 “앞으로는 형님한테 강제 배차 안 줄게요”라는 답도 종종 들었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라이더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에이아이 추천 배차제에서는 최현이 항의하거나 싸울 대상이 없다. “기업에서도 부당한 걸 시킬 때 이거 부당한 거라고 말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미션을 주잖아요. 이것도 그런 거죠. 일반 내비게이션으로 갈 때도 신호 위반을 해야 하는데, 그것보다 더 빨리 가라고 미션을 준다는 건 신호를 몇 개는 더 위반하라는 의미인 거죠.”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쪽은 “라이더의 출발지와 목적지 간 직선거리에 알고리즘이 계산한 특정 숫자를 곱해 배달 거리와 소요시간을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어떤 공식에 기반해 ‘특정 숫자’를 산출한 것인지는 대외비여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배민커넥트 배달대행 기사 ㄱ씨가 지난달 8일 갈무리한 ‘에이아이(AI· 인공지능) 추천 배차제’ 배차 경로안 내 화면(위)과 일반 내비게이션 경로안내 화면(아래). 인공지능은 도착 예정 시간을 일반 내비게이션보다 4분 빠르게 안내했고, 오토바이로 배달대행 일을 하는 ㄱ씨에게 오토바이 진입이 불가한 난지한강공원 주차장으로 배달할 것을 요청했다. 라이더유니온 제공
ㄱ씨가 같은 날 갈무리한 경로안 내 화면을 보면 인공지능 배달 제한 시간은 12분(위), 일반 내비게이션은 21분(아래)으로 9분 차이 난다. 라이더유니온 제공
인공지능이 라이더들의 업무를 지휘하고 감독하는 사용자가 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 서울북부지청은 또 다른 배달 앱인 ‘요기요’ 소속 라이더 5명이 낸 체불임금 등의 진정에 대해 ‘요기요 쪽이 라이더에게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며 요기요와 라이더들을 사실상 사용자와 노동자로 인정하는 취지의 결정을 했다. 이 판정은 플랫폼 기업들이 그간 라이더들에게 강제 배차 등의 업무 지휘·감독을 하는 관행에 대해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신호가 됐다. 이후 배달의민족 등은 라이더와 직접 메시지를 주고받는 카카오톡 채팅방을 모두 삭제하는 등 대응 조처를 했다. 홍창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직국장은 “회사(우아한형제들)는 계속 라이더의 노동자성 문제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하지만, 끊임없이 라이더의 업무에 개입하고, 지휘·감독을 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낀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에이아이 추천 배차제 등을 시도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배민커넥트 오토바이 라이더 최현이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그렇다면 강제 배차가 아닌 에이아이 추천 배차제의 사용자성은 어떻게 될까. 강제 배차와 달리 에이아이 추천 배차제에서는 라이더들이 배차를 ‘거부’할 수 있는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점이 쟁점이다. 업무 지시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휘·감독이 아니라는 논리가 생길 수 있다. 라이더들은 반박한다. “에이아이 추천 배차제를 하면 ‘과도한 거절 시 배차 지연 주의’와 같은 공지가 떠요. ‘감봉하겠다’는 소리로 들려 무섭습니다.” 최현의 말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인공지능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사장님’으로 엄연히 존재하니 사용자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알고리즘이 회사의 지휘·감독과 별개란 주장은 라이더에게 불법적인 지시를 한 말단 관리자의 행동에 대해 회사가 ‘개인의 일탈’로 꼬리를 자르는 것과 똑같은 논리”라며 “회사의 계산식이 매뉴얼화돼 있다면 그것 자체가 회사의 지침이자 업무규칙”이라고 말했다.
김민제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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