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준비되고 있는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피해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 나흘 후에 나는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들과 함께 합동분향소에 조문 갔었다. 희생자들의 신원이 아직 확인되지 않아서 분향소는 갖추어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서 조문 온 사람들을 맞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다만 울음을 듣고 돌아왔다.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내는 땅을 치며 울었고 뒹굴면서 울었다.
-불쌍하다 불쌍해.
-어쩔 거나 어쩔 거나.
언어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온몸의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은 더 크게 울렸다.
그 울음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울음이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의 울음이었다. 그 울음은 어디로 향할는지 방향이 없는 울음이었다. 허공을 향해 우는 울음이었고 절벽에 대고 우는 울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티브이를 보니까 여러 전문가들이 나와서 과거를 분석하고 현실을 진단하고 예방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왜 이런 참사가 거듭되는가, 어떻게 하면 이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 한국 사회는 모르는 것이 없다. 오래전부터 다들 알고 있다. 수많은 박사학위 논문, 연구보고서, 특집기사, 세미나, 공청회, 국무회의, 긴급대책회의, 총리 지시가 있었다. 이 산더미 같은 담론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모두가 말짱 헛것이고 꽝이고 도루묵이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이것은 이미 의미 없는 질문이다.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빤히 보이는 길을 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도루묵이 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