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지면서 반도체 공정의 직업병 논란을 세상에 처음 알린 고 황유미 씨의 11주기인 지난 3월 6일 오후 고 황유미 씨와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에 참가한 이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을 출발해 서초동 삼성전자 앞 반올림 농성장으로 향하고 있다. 맨 앞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1일 중재안을 내놓아 11년을 끌어온 ‘삼성 백혈병 사태’는 본격적인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게 됐다.
조정위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1라인이 준공된 1984년 5월 이후 삼성전자의 반도체·엘시디(LCD) 생산라인에서 1년 이상 일한 모든 이를 지원보상의 대상으로 정했다. 반도체·엘시디 작업환경과 질병의 인과관계에서는 인과성을 입증하는 것도, 반증하는 것도 어려운 불확실성이 있으니 이를 전제로 피해자 구제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 조정위는 피해 가능성이 있는 이를 최대한 포함하기 위해 보상 범위는 대폭 늘리고 개인별 보상액은 낮췄다. 조정위가 밝힌 원칙은 “가능한 한 폭넓게 인정하되, 보상 수준은 산재보상보다 낮게 설정한다는 것”이다. 즉 근무와 발병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인과성이 의심되는 수준까지 피해자의 범위를 가능한 한 폭넓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최소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피해자 규모를 정확히 추산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민이 작용한 결과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관계자는 <한겨레>에 “지금까지 제보해왔던 분들이 수백명 규모”라며 “그 규모를 넘어설지는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위는 이런 결정을 하면서 삼성전자와 반올림 두 당사자에 대해 몇가지 권고를 내놨다. ‘노동건강인권선언’을 공동으로 하고, 직업병에 대한 추가 연구와 역량을 축적하면서 직업병 문제 해결에 필요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나갈 것을 권했다. 특히 삼성전자에 대해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유사한 문제가 제기되는 다른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보상 문제를 이 사례를 참고 삼아 풀어나갈 것”을 권했다.
조정위는 또 국가와 사회에 대한 권고도 내놨다. “산업재해 관련 판정에서 인과관계의 증명 책임을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부담시키는 등 현재의 법제도에 대한 반성적 검토와 이에 따른 입법적 개선과 정비, 기존 법제도 아래에서도 적극적으로 노동건강권을 보장하려는 법률 해석에 얼마나 충실하였는지에 대한 비판적 숙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반도체 관련 산업에서의 산업재해 문제가 전반적으로 해결됐다고 보기 어려운 점은 이번 중재안의 한계다. 조정위는 권고문에서 “(이번 중재안에서) 다수의 반도체 등 사업장에 번갈아 출입하면서 노동을 제공하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지형 위원장도 “좀처럼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중재합의가 이뤄졌고 최종 중재 판정까지 내리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뿌듯한 일이지만, 근원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본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종 중재안이 나왔지만 이와 관련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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