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5년 전 미국에서도 게임업계 ‘메갈 사냥’이 있었다

등록 2018-06-29 13:53수정 2018-07-03 11:42

[혐오에 쫓겨나는 여성들] 마지막 4회
사진 페미니스트 게임이용자 모임 <페이머즈> 누리집. 그래픽 정희영 기자
사진 페미니스트 게임이용자 모임 <페이머즈> 누리집. 그래픽 정희영 기자
5년 전 미국에서도 ‘메갈 사냥’이 있었다. 미국에선 그 일을 두고 ‘게이머게이트’라고 부른다. 양상은 한국의 ‘메갈 사냥’과 똑같았다. 게임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주축이 되어서 게임업계 여성 종사자들을 특정해 공격했다.

‘게이머게이트’는 2013년 게임 이용자들이 여성 게임 개발자인 조 퀸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퀸이 개발한 게임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는 우울증을 주제로 한 텍스트 기반 게임이었다. 자전적인 우울증 경험이 게임에 담겼다. 캐릭터에게 인생의 어떤 기로에서 선택 옵션이 주어지고, 옵션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식이다. 피 튀기는 캐릭터 사냥 등이 주를 이루는 기존의 게임과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이를 두고 몇몇 게임 매체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올라오자 남성 이용자들이 반발했다. ‘가마수트라’, ‘레딧’, ‘포챈’과 같은 미국의 주요 게임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게임은 상관없고 그냥 퀸이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 여자의 인생이 끔찍해지길 원해”라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살해와 강간 협박도 있었다.

2014년 8월에는 퀸의 전 남자친구가 “조 퀸은 나와 사귀는 동안 다섯 명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폈다”고 주장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사이버불링(온라인 괴롭힘)은 더욱 거세졌다. 게임 자체와 관련이 없고, 사실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었지만 게임 이용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퀸의 집주소와 전화번호 등 신상 정보가 공개됐다.

공격은 다른 여성 게임 개발자와 여성 저널리스트, 페미니스트 미디어 비평가 아니타 사키시안 등으로 확산했다. 지난 6일,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찾은 아니타 사키시안은 2013년부터 비디오게임 속 여성 캐릭터가 얼마나 성차별적으로 묘사돼있는지를 분석한 영상을 제작하면서 게임 이용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는 등 사이버불링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페미니스트 문화 비평가 아니타 사키시안이 제작한 ‘트롭스vs여성’ 영상 시리즈는 비디오 게임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어떻게 성적으로 대상화되는지 정리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된 이 영상은 처음 제작 의도를 밝혔을 때부터 각종 악성댓글을 받았다. ‘킥스타터’ 해당 프로젝트 페이지 갈무리.
페미니스트 문화 비평가 아니타 사키시안이 제작한 ‘트롭스vs여성’ 영상 시리즈는 비디오 게임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어떻게 성적으로 대상화되는지 정리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된 이 영상은 처음 제작 의도를 밝혔을 때부터 각종 악성댓글을 받았다. ‘킥스타터’ 해당 프로젝트 페이지 갈무리.
■ ‘게이머게이트’로 얼룩졌던 미국의 어제

한국의 일부 게임회사처럼 미국의 게임업계 역시 ‘게이머게이트’ 공격에 동참했다. ‘인텔’사는 “게임 이용자들의 요구가 있었다”는 이유로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인 ‘가마수트라’에서 자사 광고를 내리기도 했다. 여성 저널리스트 리 알렉산더가 ‘백인 남성’ 중심적인 게임 문화를 비판하는 글을 ‘가마수트라’에 싣자 이용자들이 ‘가마수트라’에 광고를 게재한 ‘인텔’ 등에 광고를 내리라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운동’을 빙자한 한국의 게임업계 여성혐오 움직임과 같은 양상이다. ‘인텔’이 광고를 내리자 트위터를 통해 ‘게이머게이트’에 동참했던 이용자들은 공격이 성과를 거뒀다고 자축하는 글을 트위터에 게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텔’은 비판이 제기되자 뒤늦게 “우리는 여성을 차별하는 어떤 단체나 운동도 지지하지 않는다. (광고를 내린 일에 대해) 우리는 깊이 사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니타 사키시안은 한국과 미국을 막론하고 게임업계에서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로 “남성의 특권의식”을 꼽았다. 게임 문화는 그동안 “남성만이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의 일종으로 사이버불링이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 여성들은 남성들의 ‘공격’에 저항했다

그러나 여성 종사자들은 위축되지 않았다. 게임처럼 남성 지배적인 업계에서 일하며 겪은 성차별을 ‘#넘버원리즌와이(#No1ReasonWhy)’란 해시태그와 함께 고발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코드 리버레이션 재단’(CODE Liberation Foundation)은 남성 지배적인 영역이란 이유로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배제됐던 여성과 ‘논바이너리’(남녀 이분법에 해당하지 않는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 게임 프로그래밍 등을 무료로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여성 이용자들이 ‘팻, 어글리, 올 슬러티’(Fat, Ugly or Slutty)나 ‘낫 인 더 키친 애니모어’(Not In The Kitchen Anymore)처럼 온라인 성희롱과 여성혐오를 고발하는 블로그를 개설해 남성 게임 이용자들의 공격 사례를 수집하기도 했다.

여성들은 일종의 담론 투쟁으로, 남성 게임 이용자들의 사이버불링이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 혹은 단순히 “재미있기 때문”에 여성혐오에 동참하는 남성들에게 이런 담론 투쟁은 그들이 별 문제의식없이 행하는 행동이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혐오발언’은 ‘표현의 자유’의 부산물이 아닙니다. 그건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 난민 등 약자의 인권을 짓밟으려는 사람의 무기일 뿐이죠. 한 사람의 인간성과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권리를 짓밟고 있으니까요.” 사키시안의 말이다.

그러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타 사키시안에게 “당신 말이 맞다. 그러자 다시는 여성 캐릭터를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게임 개발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실제로 최근 여성과 유색인종이 (주체적인 캐릭터로) 게임에 더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여성에 대한) 억압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해요. 그래야 힘이 생기고 혐오발언을 사라지게 할 수 있죠.” 사키시안이 말했다.

■ “함께 목소리 내자” 연대 시작된 한국의 오늘

차별과 혐오로 굳어진 게임판을 깨려는 움직임은 한국에서도 시작됐다. 11일 출범한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는 그동안 개개인으로 흩어져 있던 여성 프리랜서 작가들이 꾸린 최초의 연대다. (▶관련 기사 : [단독] 게임업계 ‘메갈 사냥’ 광풍 속 여성작가들 뭉쳤다)

2016년에 이어 올해 게임업계에 불어닥친 ‘메갈 사냥’이 역설적으로 “부당한 처우에 함께 대처하며,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 탄생을 이끈 셈이다. 이에 대해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페미니즘 백래시에 저항하고 새로운 여성노동의 지형을 만드는데 여성들의 연대와 투쟁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대표도 “‘직접적인 고용 상태가 아니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고작해야 외주자’라는 세간의 편견에 맞서는 여성들의 연대에 경의를 표한다”며 환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고려 중인 피해 작가도 있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사상이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고용이나 용역의 공급에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반 페미니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작가 14명이 직접 참여하는 ‘내일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는 목표금액의 1000%가 넘는 약 9400만원을 후원받았다. ‘텀블벅’ 페이지 갈무리
‘반 페미니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작가 14명이 직접 참여하는 ‘내일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는 목표금액의 1000%가 넘는 약 9400만원을 후원받았다. ‘텀블벅’ 페이지 갈무리
게임, 웹툰 등 서브컬처 업계에서 ‘반페미니즘’ 공격을 받은 피해 작가 14명이 직접 참여하는 ‘내일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에 쏟아진 후원도 고무적이다. 7월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갤러리 ‘이앙’에서 열리는 이 전시회에는 모두 2470명이 9396만원을 후원했다. 목표 금액(900만원)의 1000%가 넘는 액수다. ‘메갈 사냥’ 피해를 당한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 ㄴ씨는 “블랙컨슈머와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회사가 있는 현실에서는 내가 비정상처럼 보였다. 전시회 후원금을 보고 우리와 연대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것만으로도 무척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여성 게임 이용자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여성이 ‘유저’로서 동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선 게임업계에서 여성이 ‘노동자’로서 먼저 동등한 위치에 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 게임 이용자 모임 <페이머즈>는 피해 작가들과의 연대뿐 아니라 게임 문화 전반을 바꿔나가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게임 이용자 모임 <페이머즈>는 혐오와 차별 표현을 쓰지 않는 등의 내용을 담은 ‘회원들 간 모두의 약속 및 주의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게임 이용자 모임 <페이머즈>는 혐오와 차별 표현을 쓰지 않는 등의 내용을 담은 ‘회원들 간 모두의 약속 및 주의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페이머즈>는 모임 규칙부터 남다르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서로를 평등하게 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이 규칙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회원은 자기를 소개하면서 이름, 나이, 학교, 학번 등을 말하지 않는다. 성소수자 인권을 침해하는 말이나 장애인을 타자화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세워둔 셈이다.

여성 게임 개발자와 여성 이용자들이 만나는 자리인 ‘펙타’(FegTa·Feminist Gamers Take Action)도 개최한다. <페이머즈>는 “게임업계가 의도적으로 여성 게임 개발자와 여성 이용자를 성차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현상을 고발하고 여성혐오와 젠더 폭력 없이도 게임 이용자들에게 충분히 다가갈 수 있는 게임 제작이 가능함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처음 열린 펙타는 올해 2회 행사를 열 예정이다. <페이머즈>는 페미니스트 게임 이용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형 커뮤니티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처음 열린 ‘펙타’ 행사를 통해 여성 게임 개발자와 이용자들이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페이머즈> 제공
지난해 처음 열린 ‘펙타’ 행사를 통해 여성 게임 개발자와 이용자들이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페이머즈> 제공
미국에서처럼 게임업계 내부에서 자정 움직임도 미세하게나마 감지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한 관계자는 “최근 2∼3년 동안 젠더 이슈에 대해 게임회사가 자문을 구하는 일이 늘어났다. ‘젠더 감수성’에 대한 강의를 요청하고, 직원들과 함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준 회사도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여기까지 온 것도) 게임업계 자정을 위한 여성들의 움직임 덕이 매우 컸다”고 평가했다.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선 “‘메갈사냥’에 저항하는 작가들을 ‘블랙리스트’로 만들겠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그럼에도 변화의 움직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래픽 정희영 기자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선 “‘메갈사냥’에 저항하는 작가들을 ‘블랙리스트’로 만들겠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그럼에도 변화의 움직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래픽 정희영 기자
■ “혐오와 차별 없는 게임을 위해” 새로운 문화를 꿈꾸는 내일

하지만 혐오의 광풍은 여전히 거세다. 새로운 연대에 대한 역풍도 분다.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가 발족한다는 기사에는 “(연대 참여 작가들을 중심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회사에 뿌리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연대 가입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들의 불안정한 지위도 숙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이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비록 법적으로 만만치 않다고 해도 연대 출범은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덧붙였다.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게임업계 밖의 개입이 절실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문화평론가 성상민씨는 “게임업계는 말로는 문화산업이라고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하청이 빈발한 전형적인 제조업 형태다. 애초에 내부에서 건강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상황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성씨는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처럼 내부 결속도 중요하지만 외부 단체들과 연대해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곳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는데 이를 방기한다는 건 사회운동단체로서도 직무유기”라며 “프리랜서·특수고용직 노동 관련 문제는 게임업계뿐 아니라 문화산업계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고용노동부나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조차도 상황파악조차 제대로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임업계의 성차별을 말하는 건 곧 우리 사회, 우리 문화의 성차별을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타 사키시안도, 한국의 게임업계 여성 노동자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게임업계의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우리 사회 모두의 과제로 남아 있다.

게임판의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박다해 이유진 기자 doal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