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에는 적막만이 흘렀다. 거대한 크레인이 움직이고 쇠붙이가 갈리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야 하는 조선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경비 두 명만이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다. 조선소 곳곳에는 파산선고를 받고 유체동산은 파산관재인의 점유관리하에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조선소 앞 사무동은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가 어른 키만큼 자라고 있다. 야적장에 쌓여 있는 자재들은 녹이 슬어가고 있다. 인근 상가는 문을 닫고 새로운 임대인을 찾는 공고문이 바람에 날렸다. 1946년 멸치잡이용 어선을 만드는 회사로 출발한 신아에스비(sb)조선소는 통영 조선소의 상징으로 한때 세계 10위까지 올랐었다. 2007년 매출액은 1조원에 달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5천여명에 이르렀다. 호황을 누리던 신아에스비조선소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선박 수주가 끊기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2010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수차례 매각 시도가 무산되면서 지난해 스스로 파산신청을 했다. 지금은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신아에스비 노동조합은 지난 6월 노조를 해산했다. 한때 1000여명에 달하던 조합원은 직장을 잃고 전국으로 흩어졌다. 총회에는 50여명만이 모여 투표로 조합 해산을 의결했다. 조선 하청노동자들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국회에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다. 지난해만 해도 2만여명의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2016년에는 3만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쫓겨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당장 9월말 해양플랜트 공사가 마무리되면 대규모 해고가 벌어질 것이다. 예전에는 통영의 조선소가 망해도 거제, 울산 등 다른 조선소로 옮겨 일을 하면 됐지만 이제는 갈 곳이 없다. 조선산업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하청노동자들에게 찬바람이 먼저 불고 있다. 무인비행기를 날려 조선소 안을 살펴봤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직원들로 북적거렸던 4만~5만t급 중형 선박을 만들던 도크가 텅 비어 있다. 노동자의 손이 닿지 않는 각종 자재들과 크레인들은 녹슬어 가고 있다. 점점 상황이 악화되어 가고 있는 조선·해운업계의 불황을 상징하는 것 같다.
통영/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