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포트] ‘반도체 아이들’의 눈물(하)
유해성 인정한 정부
특별관리물로 지정은 안해 관련법엔 생식독성 개념조차 없고
노동자 특별검진 항목에도 포함 안돼
산업재해 인정받지도 못해 1980년대 이미 정부가 에틸렌글리콜의 유해성을 발표했던 미국의 경우 1996년 존스홉킨스대학 보건대학원의 유해성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미국반도체협회 차원에서 사용이 금지됐다. 그 이후에도 미국은 생식독성물질의 유해성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2000년대 초 안전한 대체물질로 여겨지던 PGES조차 일부 물질들이 암이나 발달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혀지자, 2004년 6월 캘리포니아주는 주 법률상 이를 발암물질로 규정했고, 화학물질 직업병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국립과학도서관은 생식독성물질로 등재해 관리에 나선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생식보건 문제는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산업안전의 근간을 이루는 법이라 할 수 있는 산안법에는 생식독성과 관련한 개념조차 없다. 또 유해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건강검진 항목에도 생식독성 관련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가임기 여성을 방사선이나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되는 위험한 사업장에 고용할 수 없다고 못박은 근로기준법 65조는, 20~30대 여성이 많은 반도체 사업장을 비춰볼 때 ‘잠꼬대’ 같은 법규가 된 지 오래다. 주로 사고성 재해에 초점을 두고 있는 현재의 산업안전보건 체계 안에서 생식보건 문제는 이처럼 간과되고 있다. 아이비엠(IBM)은 1982년에 이미 임산부 고용 금지와 업무 이동 등을 내용으로 하는 모성보호 규정을 별도로 두고, 태아의 경우 화학물질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더 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지난 8월에는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 최종 조립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벤젠과 노멀헥산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5개월 전 미국의 시민단체 ‘그린아메리카’와 ‘차이나레이버워치’ 등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한국처럼 미흡한 상황에서 한국의 반도체 대기업들이 미국의 기업들처럼 자발적으로 에틸렌글리콜 같은 생식독성물질을 규제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벤젠을 비롯해 에틸렌글리콜 등의 생식독성물질 11종의 사용을 자체적으로 규제하면서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통해 임직원의 생식보건 문제를 모니터하겠다는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시도가 반가운 이유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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