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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수년간 불임·유산 끝에 아이 낳았지만…‘엔드팹의 비극’

등록 2014-11-13 22:37수정 2016-03-22 13:50

박정숙씨가 삼성전자 기흥공장 3라인 엔드팹에 근무했던 당시인 1992년 9월 찍은 사진. 박정숙씨 제공
박정숙씨가 삼성전자 기흥공장 3라인 엔드팹에 근무했던 당시인 1992년 9월 찍은 사진. 박정숙씨 제공
[심층 리포트] ‘반도체 아이들’의 눈물(하)

90년대 삼성 기흥사업장 3라인
한조 20여명중 발병 확인만 10명
유방암·난소낭종·백혈병·뇌질환…

노후설계에 각종 유해물질 더해져
어렵게 낳은 아이도 선천성 질환
‘죽음의 엔드팹’. 한 조에 20여명이 근무했다. 그 가운데 무려 10명이 병에 걸렸다. 2명 가운데 1명꼴이다. 4명은 6년에서 10년까지 불임을 앓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산, 유방암, 난소낭종, 백혈병, 갑상선암, 뇌질환 등을 각각 앓거나 동시에 앓았다.(표 참조) 그중 한 명이 숨졌다. 2006년 7월 백혈병으로 진단받은 지 한 달 만에 숨진 이숙영씨다. 연락이 닿은 사람이 10명이다. 남은 10명은 근황조차 알 수 없다. 그 가운데 누가 질병에 걸렸는지 알 수조차 없다.

그들은 모두 1990년대 초부터 말까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3라인 2층 엔드팹에서 한 조로 일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이 훗날 불임과 유산을 비롯해 이러저러한 몹쓸 병에 걸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팹(fabrication facility)은 웨이퍼 가공공정을 이르는 말로 3라인 2층 엔드팹은 말 그대로 3라인 2층 끝쪽에 있던 팹을 의미한다. 기흥사업장에서 가장 오래된 반도체 생산라인인 3라인은 고 황유미씨도 일했던 곳으로 반도체 백혈병 논란이 불거진 2008년 1~2라인과 함께 폐쇄조치됐다. 지금은 없어진 3라인 2층 엔드팹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 줄 몰랐어요. 엔드팹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1년에 한번꼴로 모임을 갖는데, 8명 정도가 모였거든요. 얘길 해보니 저를 포함해 아픈 사람이 9명이나 되는 거예요.” 박정숙(가명·41)씨는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만 7년 동안 기흥공장에 다녔다. 주로 3라인 엔드팹의 식각·포토·증착 공정에서 일했다. 퇴사 직전 3년 동안에는 조장 역할도 맡았다. “4조3교대였는데 생산량 압박이 심했어요. 조장이 생산량에 따라 인사고과를 매기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생산물량이 떨어지면 그 조가 전부 닦달을 당하곤 했죠.” 조별로 생산량 경쟁을 한 것은 비단 3라인 엔드팹만은 아니다. “3라인 엔드팹 옆에 신설베이(반도체 제조 공정 구획)가 11베이부터 16베이까지 생겼거든요. 그때 설비엔지니어랑 같이 셋업 업무를 몇달씩 했어요. 신설베이가 생기면서 노후 설비에 더 많은 유해물질이 더해진 거죠.” 신규 설비를 본격 가동하기 전에 여러 화학물질을 사용하면서 생산공정을 최적화하는 셋업 작업은 집중적으로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작업으로 꼽힌다.

1992년부터 1999년 동안 주로 4베이 식각공정에서 일했던 이지영(가명·40)씨는 “업무량 압박 때문에 옆 베이의 오퍼레이터가 비번이거나 월차를 쓰면 그 공정 업무까지 도맡아 하기 일쑤였다”며 “격벽구조라고 말은 하지만 베이별로 다 문을 열어 놓고 일을 했고 내부 공기가 순환되는 ‘클린룸’의 특성상 다른 베이에서 노출된 유해물질을 다 같이 맡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노출됐던 유해화학물질들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그들의 몸속에서 생식독성으로 자리잡아 반도체 2세의 눈물을 낳았다. 4년 동안의 불임, 한번의 인공유산 끝에 어렵게 아이를 낳은 박씨는 현재 유방암 항암치료를 받고 있고 이지영씨는 4번의 유산 뒤에 아들을 낳았지만, 그 아이는 현재 후두엽성 간질이라는 중추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다. 시각적인 환상이 보이는 희귀한 뇌질환이다. 이씨 또한 두개강 내 저혈압과 부정맥을 앓고 있다. 친정 식구 중에 유산을 하거나 비슷한 질병은 앓은 사람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박정숙씨와 함께 일했던 장미순(가명·41)씨는 7년 동안의 불임을 앓았다. 그는 지금도 몇달에 한번 생리를 할 정도로 월경이상 증상이 심하다. “당시에도 생리가 매우 불규칙했어요. 세달에 한번 생리를 한 경우도 있었어요. 생리통도 엄청 심했어요. 너무 아파서 배를 부여잡고 뒹굴 정도였거든요. 기숙사 생활을 하니까 잘 알죠. 근데 그땐 그러려니 했어요.” 장미순씨와 한 기숙사에서 생활한 이지영씨의 증언이다.

비극의 크기에서 3라인 엔드팹은 미국 아이비엠(IBM)의 ‘빌딩13’과 고스란히 겹친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던 아이비엠 반도체 연구소인 빌딩13의 연구원들은 클린룸에서 사용되는 물질과 동일한 물질을 다뤘다. 1985년부터 2003년까지 그곳 연구원들 10명 가운데 8명이 암에 걸렸다. 6명이 사망했다. 4명이 뇌종양이었다. 당시 전체 암의 대략 1%에 불과했던 뇌종양은, 이후 미국에서 대표적인 반도체 직업병이 되었다. 빌딩13은 결국 폐쇄됐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엔드팹의 노동자들이 다뤘다고 하는 이소프로필알코올, 아세톤 등의 생식독성물질들은 현재까지도 반도체 공장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물질들”이라며 “과거에 노출된 것이 지금 질병으로 나타나고 지금 노출된 것이 미래의 2세 질환을 낳기 때문에 생식독성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엔드팹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정숙씨는 말한다. “사실 제가 아는 건 저희 조에서 10명뿐인 거예요. 엔드팹에서 같이 일한 다른 조 사람들은 아프지 않길 바랄 뿐이죠.”

오승훈 김민경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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