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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한국노협 위원장으로 87년 노동자 대투쟁 / 이총각

등록 2013-09-25 19:24

1987년 1월 이총각은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2대 위원장을 맡아 처음으로 전국 규모 노동운동단체를 이끄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사진은 그해 7~8월 노동자 대투쟁 때 최루탄에 맞아 숨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열사의 장례위원들이 경남 거제시 옥포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으로, 이총각도 위원으로 참석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7년 1월 이총각은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2대 위원장을 맡아 처음으로 전국 규모 노동운동단체를 이끄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사진은 그해 7~8월 노동자 대투쟁 때 최루탄에 맞아 숨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열사의 장례위원들이 경남 거제시 옥포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으로, 이총각도 위원으로 참석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94
1987년 1월 이총각은 부천노동사목 활동을 정리하고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한국노협) 2대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초대 위원장 방용석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노동위원장을 맡고 노동상담소장도 겸하게 되면서 위원장 자리를 총각에게 넘겨주었다.

만 4년 동안 열정을 다해 활동했던 노동사목을 그만두려니 늘 손발이 잘 맞아 즐겁게 일을 했던 오기백 신부도 많이 섭섭해했다. 노동사목 활동은 총각에겐 뜻깊은 경험이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고 같이 생활하며 힘든 일 기쁜 일을 함께 해서 좋았다. 해직 이후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교구에 소속되어 사제들이 보호막이 되어주는 것도 마음 편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 무렵 한국노협은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져 균열이 발생하면서 초창기 참여했던 활동가들이 대거 탈퇴를 한 상태였다. 노동조합의 정치투쟁과 연대투쟁을 강조하는 쪽과, 조직 보전을 간과하는 노조로는 합법적인 노조운동을 하기 어렵다는 쪽이 팽팽히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 결성되면서 노동자의 선도적 투쟁을 주장하던 청계피복노조와 김문수 등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유동우는 한국기독교노동자총연맹에, 이영순·최순영 등은 한국여성노동자회 준비모임에 합류했다.

총각이 한국노협 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 그동안 활동이 정지돼 있었던 한국노협 인천지부가 새롭게 문을 열었고, 서울지역에서 남부와 동부 지부가 만들어져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인천지부는 동일방직 해고노동자인 최연봉이 지부장을 맡아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전후로 만도·한독·남일·콜트악기 등 67개 새 노조 결성을 지원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87년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시작되었다. 경찰은 서울대생 박종철을 조사하던 중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어이없는 발표를 했고, 이에 억눌려왔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전두환의 ‘4·13 호헌 선언’과 직격탄을 맞고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사건은 전국적으로 연인원 500만명이 거리시위에 참여하는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6·29 선언’으로 백기를 들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항쟁은 7월2일 이리(익산) 후레아패션 해고노동자들의 독일대사관 농성투쟁으로 다시금 불씨가 살아났다. 그리고 7월5일 울산 현대엔진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과 현대미포조선소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국적인 투쟁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현대엔진의 투쟁은 현대계열사로 급속히 퍼져 8월8일엔 ‘현대그룹노조협의회’가 결성되었다. 84년 4월 한국 사회를 흔들며 투쟁에 나섰던 대우자동차 노조가 협상에 성공하여 대기업 총수와 노조위원장이 어깨를 나란히 했던 역사적 사건 이래로, 전국의 대기업 사업장에서 투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는 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이 그동안 여성 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 양태를 남성 노동자가 참여한 대규모 사업장 중심으로 바꿔놓고 있음을 시사했다. 8월22일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 사망 사건으로 더욱 증폭된 노조 조직률은 86년 2675개의 노조, 103만5890명에서 87년 12월말 4103개 노조, 126만7457명의 조합원으로, 불과 몇달 사이에 20만명 넘게 급증했다.

총각은 힘든 시기에 조직을 맡아 수많은 노조를 방문하며 교육을 했고, 노조 결성을 지원했다. 당시의 지원투쟁 중에서, 그는 방산동 공장에서 갓 입사한 15살 어린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에 걸려 세상을 떠난 사건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를 회사는 사지로 내몰았던 것이었다. 정말 앞뒤 분간 없이 화가 치솟았다. 총각은 장례식에서 직접 하얀 상복을 입고 그의 영혼을 달랬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총각이 전국 규모 노동자 조직의 대표로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각 사회단체들과 함께하는 연석회의였다. 단위노조나 소모임 때와 달리 연석회의에서는 안건 하나하나마다 장시간 토론을 했는데 도무지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해서 알아듣기조차 힘들었다. 너무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이야기들이 난무하니 지루한데다, 대부분 남성 간부들이라 담배를 피워대 연기가 자욱해져 마치 굴속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총각은 갈수록 자신이 있을 곳은 노동 현장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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