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33
1978년은 동일방직 민주노조 이총각 집행부가 잔여임기 1년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3년 임기의 지부장을 선출해야 하는 중요한 해였다. 그동안 회사 쪽의 야비한 노조 파괴 공작을 저지하는 데 힘을 쏟느라 제대로 된 노조 활동을 펼쳐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임기가 시작되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반조직 세력들이 노조를 장악하려고 온갖 음모를 꾸밀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가 절실했다. 동일방직은 최초로 여성 노조지부장을 배출한 곳으로서 끊임없는 회사의 탄압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켜왔기 때문에 동일방직 노조의 미래는 민주노조운동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77년은 감시와 처벌이 일상화된 해였다. 3년째 모든 양심세력의 숨통을 조이고 있던 ‘긴급조치 9호’가 끔찍하게 작동하고 있었지만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날로 격렬해지고 있었다. 노동운동 상황도 마찬가지여서 민주노조 결성이 빈번해지고 이를 사수하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세지자 그들 뒤에 산업선교회와 지오세가 있기 때문이라며 본격적인 탄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섬유노조 위원장인 김영태는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직접 칼을 휘둘렀다.
해가 바뀌어 78년 1월22일 전국섬유노조 임시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이날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본부 산하의 지부에 대한 본조의 통제권을 크게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첫째, 본조가 지부나 분회를 제쳐놓고 단체협약의 체결 등을 교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지부 노사협의회 대표자를 본조 위원장이 선정할 수 있도록 했으며 단체협약의 체결에 관하여 지부 분회의 인준을 얻도록 한 규정을 삭제했다. 둘째, 본조의 집행위원회가 사고 지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해당 지부장은 본조 위원장이 위촉한 수습위원에게 그 권한을 인계하며 수습위원은 조직이 정상화될 때까지 그 권한을 집행하도록 규정했다. 셋째, 지부 임원이 인정한 사유에 해당될 때에는 본조 중앙위원회의 결의로써 제명이나 정권 등의 징계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선출 기관의 동의를 요한다는 규정을 삭제했다. 넷째, 본조가 중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산하 지부의 임원뿐만 아니라 산하 조직 그 자체를 징계 특히 제명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다섯째, 본조 산하의 지부 운영 규정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그 제정을 금지했다.’
규약 개정의 의도는 분명했다. 본조가 그동안 누려온 특권과 위세 그리고 타협의 대가로 얻는 이익 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하게 밝힌 것이었다. 참으로 반민주적인 내용인데도 대의원들은 쉽게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방용석 원풍모방 지부장이 나서서 규약 개정에 반대하는 개의안을 제기했다. 대회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일시에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자 곧바로 김영태 위원장과 한통속인 서울의류지부장 박은양과 부산지역지부의 대의원 몇몇이 그냥 표결에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방용석의 개의안에 대한 재청을 몇 차례 물었으나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때 원풍모방 박순희 부지부장이 재청을 해 겨우 개의안이 성립했고 바로 공개투표에 들어갔다. 하지만 투표 결과 4표 차이로 규약 개정안은 통과되고 말았다.
규약 개정으로 맨 처음 화살을 맞은 곳은 동일방직이었다. 섬유본조는 동일방직 민주노조를 깨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 공작을 위해 내세운 인물이 바로 반도상사 노조 전 지부장 한순임이었다. 섬유본조는 동일방직 근처에 있는 문화호텔에 방까지 빌려 한의 활동 근거지로 사용했다. 회사와 본조는 현장에서 교육을 하면 노조의 반발을 살 게 분명했기 때문에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문화호텔로 초대하고 한을 강사로 소개했다. 그러나 한의 강의는 애당초 주장했던 현장에서의 안전 및 품질 교육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이총각 집행부와 도시산업선교회(산선)를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퇴근하는 조합원들을 관광버스에 실어날라 호텔에서 반강제로 교육을 받게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이총각은 열성 조합원들을 그 교육에 참석하도록 했다. 한의 교육이 너무 어이가 없자, 조합원들이 “정말 산선이 빨갱이 단체라면 왜 정부에서 그냥 놔둘까요?” “집어치워라!” 등등 작정하고 고함을 지르며 항의하자 갑자기 여관 종업원을 가장한 깡패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조합원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공갈 협박을 하며 한 조합원에게는 강제로 입맞춤을 하고 입술을 물어뜯기도 했다. 결국 그렇게 장소가 들통나자 섬유본조와 회사는 한을 다른 곳으로 옮겨 그 ‘공작’을 계속했다. 이 사건은 그해 2월로 예정된 동일방직의 새 지부장 선출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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