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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동일방직 조합원 첫 구속 ‘유재길 사건’ / 이총각

등록 2013-07-09 19:49수정 2013-07-10 09:40

1977년 4월4일 수습 대의원대회를 통해 새로 출범한 동일방직 민주노조 이총각 집행부는 회사 쪽의 조합원 탈퇴 공작에 맞서 항의하던 노조 조직부 차장 유재길이 해고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사진은 그해 4월4일 대의원대회 때 불상사를 우려해 회사 정문 앞에 모여든 조합원 가족들. <동일방직 노동조합운동사> 중에서
1977년 4월4일 수습 대의원대회를 통해 새로 출범한 동일방직 민주노조 이총각 집행부는 회사 쪽의 조합원 탈퇴 공작에 맞서 항의하던 노조 조직부 차장 유재길이 해고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사진은 그해 4월4일 대의원대회 때 불상사를 우려해 회사 정문 앞에 모여든 조합원 가족들. <동일방직 노동조합운동사> 중에서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39
1977년 4월4일 수습 대의원대회가 끝나자마자 발생한 회사의 조합원 탈퇴 공작은 결국 이총각 집행부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남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정방과 조장인 김장분이 조합원 탈퇴 서명을 받으러 다니자 노조 조직부 차장 유재길이 항의를 하다가 빚어진 사건이었다. 유재길은 7년 경력의 동일방직 노동자로 이총각이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로 이끌었던 인물이고, 이후 적극적으로 노조 활동을 함께 해온 동지였다. 반면 김장분은 알몸시위 때부터 남자 조합원들과 합세해 노조 파괴 운동에 동조하였고 조합원 탈퇴 서명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들의 말다툼은 급기야 머리채를 잡고 뒤엉키는 싸움으로 번져갔다. 그제야 같이 일하던 조합원들이 뜯어말려 싸움은 끝났지만 회사는 또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김장분이 병원에 입원하여 3주 진단서를 떼고 유재길을 폭행으로 고소한 것이었다. 4월6일 유재길이 인천 동부경찰서로 연행되자 노조는 발칵 뒤집혔다. 이총각은 고락을 함께해온 유재길이 구속되자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다. 다른 조합원이었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총각은 유재길을 석방시키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김장분을 설득하여 고소를 취하하도록 시도했으나 그건 그의 뜻이었다기보다 회사의 의도였기에 성사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총각 집행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재길은 풀려나지 못한 채 재판이 진행되었다. 조합원들은 수시로 면회를 갔고 재판이 열릴 때마다 100여명씩 몰려가 법정을 가득 메웠다. 결국 6월16일 유재길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선고를 받고 출소했지만 회사는 이를 빌미로 그를 해고해 버렸다. 집행부는 즉각 농성에 들어갔고 노동청과 본조를 방문해 협조를 구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유재길의 가족이 나타나 그를 강제로 퇴사시키는 바람에 복직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 일은 동일방직 조합원이 처음으로 구속된 사건이었으며 이총각 집행부에 최초의 좌절을 안겨준 투쟁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조합원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기회가 되었다.

총각은 뼈아픈 상실감을 딛고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공석이 된 조직부 차장과 아직 채워지지 않은 간부진을 새롭게 보완했다. 조사통계부장 황정옥, 조직부 차장 강정자, 쟁의부 차장 서정례, 교육선전부 차장 서선숙, 회계감사 추송자, 정선희 등이 집행부 간부로 합류했다.

조합원 탈퇴 사건이 수습되면서 집행부는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수습 집행부의 임기는 이영숙 지부장의 잔여 기간인 1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큰 변화나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기보다는 장기간 계속된 투쟁으로 누적된 조합 내부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주력했다.

총각은 회사를 상대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조합원들의 노조 활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과연 노동자가 누구인지를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총각 자신도 현장에서 노동을 통해 삶을 배웠고, 지오세와 도시산업선교회(산선) 등의 교육이 자신을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켰다고 믿고 있었다. 조합원 교육은 집행부 전체가 동의하는 가운데 77년 8월 초부터 전력을 기울여 진행되었다.

12월 말까지 계속된 ‘노동조합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교육은 연 43회에 걸쳐 진행됐으며 모두 800여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교육은 오후 2시 퇴근반에 빵과 우유를 제공하고 지부 사무실에서 지부장이 직접 진행했다. 총각에게 교육 진행은 익숙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동안 보고 배운 것들을 중심으로 교육안을 준비하며 부족한 부분은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등 최선을 다했다. 조합원들의 반응은 좋았다. 그동안 자신들이 겪어온 일들을 바탕으로 함께 투쟁을 해온 지부장이 들려주는 교육은 그대로 현장으로 돌아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노조를 강화하는 데 적극 활용되었다. 한편 노조 간부들 교육은 섬유본조에 의뢰를 하거나 산선 등 단체의 힘을 빌려 나날이 의식이 성장해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1년 임기의 이총각 집행부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남아 있던 여러 가지 교섭 활동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고 기대했던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 조합원들의 반조직 문제가 잠재해 있었으며 조합 간부나 열성 조합원들에 대한 회사 쪽의 탄압 역시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구술정리 박민나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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