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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습니다” / 이총각

등록 2013-06-24 19:22수정 2013-06-25 08:51

1976년 7월23일 동일방직 민주노조 총무부장 이총각은 이영숙 지부장과 함께 경찰에 연행됐고 이에 항의해 여성 조합원 1000여명과 가족들은 회사 안팎에 모여 밤샘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진은 당시 사흘간 땡볕 아래서 단식농성을 하다 경찰의 무차별 구타로 졸도한 이돈희 조합원이 인천복음병원에 입원해 있는 모습.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 중에서
1976년 7월23일 동일방직 민주노조 총무부장 이총각은 이영숙 지부장과 함께 경찰에 연행됐고 이에 항의해 여성 조합원 1000여명과 가족들은 회사 안팎에 모여 밤샘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진은 당시 사흘간 땡볕 아래서 단식농성을 하다 경찰의 무차별 구타로 졸도한 이돈희 조합원이 인천복음병원에 입원해 있는 모습.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 중에서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28
1976년 7월23일 아침 동일방직 민주노조 이영숙 지부장이 연행되고, 섬유노조본부(섬유본조)로부터 징계처분을 받은 고두영이 지부장에 선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합원들은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기숙사에 있던 조합원들은 오청자의 주도로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가로막는 기숙사 사감을 뿌리치고 나오다가 층계에서 몇 명이 굴러떨어지기도 하며 탈출을 감행했다. 기숙사 입구에는 경비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문을 부수고 울면서 뛰쳐나오는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비켜요! 조합원이 조합에 가겠다는데 왜 막고 이래요?”

“가지 말라면 말을 들어야지. 회사 내에서 네 맘대로 할 수 있어?”

“왜 못해요? 여덟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해주면 그만이지 내 몸 가지고 왜 내 맘대로 못해요?”

그들의 분노는 정당했다. 노조 사무실 앞에 모인 조합원들은 지부장 석방, 고두영 선출 대회 무효, 회사의 노조탄압 규탄을 외치며 농성에 들어갔다.

“우리 조합원들은 절대로 흩어져선 안 됩니다. 우리의 권리는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작업 현장에서 소식을 접한 조합원들도 울면서 주저앉아 지부장을 내놓으라고 농성을 시작했다. 오후 2시 출근자들까지 합세할 기미가 보이자 경찰은 2시 15분 전에 이 지부장을 풀어주었다.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을 진정시키고 경위 보고를 한 다음 퇴근자들을 모두 집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농성을 풀고 귀가하자 경찰은 다시 들이닥쳐 지난 주길자 집행부 3년간의 회계장부와 함께 이 지부장과 이총각 총무를 연행해 갔다. 7월25일로 예정된 조합원 총회를 막으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현장은 또다시 발칵 뒤집혔다. 밤 10시 출퇴근자 400여명은 김광자 부지부장의 지휘 아래 밤샘농성에 들어갔다. 날이 밝아 7월24일에는 농성 조합원이 800여명으로 늘어났고, 출입이 막히는 바람에 들어오지 못한 조합원 300여명은 정문 밖에서 농성을 벌였다. 조합원들은 노총가를 부르며 구호를 외쳤다.

“아침에 솟는 해는 우리의 동맥, 여명의 종 울려서 지축을 돌린다. 쉬지 않고 생산하는 영원한 건설자, 조국은 부른다. 아, 우리들은 노동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조합원들도 있었을 텐데 금방들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목이 쉬어라 외쳤다.

그러다 오전 10시쯤 갑자기 경비실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지난밤 귀가하지 못한 딸이 걱정된 가족들이 몰려왔던 것이었다. 이내 딸을 내놓으라는 어머니들의 항의가 시작되었고 동네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동일방직 주변의 교통이 통제되는 상황이 되었다. 어머니들은 무엇보다 내 자식 굶는 게 안타까워 우유와 박카스 등을 들여보냈지만 경비들은 보란 듯이 패대기를 쳐서 깨뜨려버렸다. 먹을 것도 못 들여보내고 경비들이 함부로 대하며 막말을 퍼붓자 가족들도 머리에 띠를 두르고 바닥에 앉아 아예 농성을 시작했다. 특히 김광자 부위원장의 어머니가 앞장서서 가족들의 농성을 이끌었다.

농성 조합원들은 무엇보다 배고픔을 참는 게 힘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따라다니던 가난으로 양껏 먹어본 기억은 없지만 이런 배고픔은 낯설고 서러웠다. 어느 순간 한두 명의 목이 멘 울음소리가 전체로 번져 통곡의 바다가 돼버렸다. 그때 누군가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노래는 합창이 되고 함성이 되어 새로운 용기를 북돋았다.

“어머니 여러분, 염려 마시고 돌아가 주세요.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우리들이지만 떳떳하고 자랑스런 딸들입니다. 무릎 꿇고 사느니보다 차라리 서서 죽겠습니다.”

목은 마르고 배도 고팠지만 그럴수록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영숙 지부장을 석방하라. 회사는 자율적인 노조 활동에 개입하지 말라. 7월23일의 대의원대회는 무효다. 엉터리 고두영은 물러가라. 한옥두 노무차장은 물러가라. 무릎 꿇고 사느니보다는 서서 죽기를 원한다.”

회사 쪽에서 외부와 격리하고 물과 전기마저 끊어버려,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 앉아 있으면서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조합원들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먹지도 못하고 목이 쉬도록 구호를 외친 조합원들은 밤이 되자 하나둘 찬 기운이 올라오는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어두운 하늘엔 수억의 별들이 무심히 반짝이고 있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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