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길을 찾아서] 아버지 죽음 뒤 지오세 투사의 길로 / 이총각

등록 2013-06-03 19:28

이총각은 1971년 언니의 결혼과 아버지의 별세로 가정사의 변화를 겪었지만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활동에 한층 열정적으로 빠져들었다. 사진은 그 무렵 동일방직 지오세 회원들과 회사에서 찍은 것으로 뒤쪽 단층 건물이 노동조합 사무실이다.
이총각은 1971년 언니의 결혼과 아버지의 별세로 가정사의 변화를 겪었지만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활동에 한층 열정적으로 빠져들었다. 사진은 그 무렵 동일방직 지오세 회원들과 회사에서 찍은 것으로 뒤쪽 단층 건물이 노동조합 사무실이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13
이총각은 자신을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JOC)로 이끌어준 선배 투사 언니들이 무척 고마웠다. 그저 돈 많이 벌어 동생들 공부시키고 어머니 고생을 좀 덜어드리고자 열심히 일만 했던 그였다. 그래서 노동은 힘들어도 꾹 참으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전세계의 재산을 다 모은 것보다도 노동자 한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한 카르댕 추기경의 선언을 들으며 총각은 또다른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는 지오세 회원으로 사는 삶을 큰 축복이라 여기며, 현장 노동자로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변화시키고 그로써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뿌듯하게 가슴에 품었다.

이 무렵 총각네 가족에게도 몇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1971년 3월 큰언니(이유자)가 결혼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형부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간 언니는 2년쯤 뒤 다시 인천으로 이사를 와서 가족과 가까이 살았다. 언니 대신 총각의 가족 부양 부담은 더 커졌지만, 그는 언니의 결혼이 마냥 좋기만 했다. 그즈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남동생 덕분에 마음 한구석 든든함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두달 뒤 5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열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지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퇴원을 하고는 며칠 뒤 숨을 거둔 것이었다. 긴긴 세월 미운 남편 때문에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는 그래도 성품 좋고 잘생긴 아들을 당신 품에 안겨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하셨다. 쉰한살 이른 나이에 떠난 남편인 까닭에 ‘서방 잡아먹은 여편네’라고들 손가락질할까봐 어머니는 한동안 바깥출입을 자제하기도 했다.

늘 당신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서야 대세를 받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가족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했지만 그런 당신 자신도 편치 않았으리라. 그래도 막내딸에게만큼은 사랑을 듬뿍 줘서 바쁜 아내를 대신해 어린 딸을 많이 돌봐주었다. 총각은 아버지의 영구차를 붙잡고 서럽게 울었다. 이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신다고 생각하니 불쌍하고 섭섭한 마음에 가슴이 아렸다. 총각은 동일방직 입사 5년 만에 처음으로 결근을 했다.

아버지와 큰언니의 부재로 좁은 집이 텅 빈 운동장만큼 쓸쓸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유롭게 지오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차츰 노동조합운동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어간 총각은 훗날 가끔 이 시점을 돌이켜보곤 했다. 큰언니가 부산에 안 가고 동일방직에 같이 다니고 있었다면, 아버지가 계속 살아 있었다면 형사들이 쫓아다니며 집 앞을 지키고 그럴 때 총각의 손발을 묶고 주저앉히지 않았을까? 나중에 다시 인천으로 돌아온 언니는 이미 회사를 떠나서인지 다행히 가타부타 간섭하지는 않았고 어머니가 걱정하더라는 말만 했다. 아버지도 못다 주신 사랑을 안타까워하시며 하늘나라에서 셋째 딸의 고군분투를 지켜주시고 응원해줄 것이라고 총각은 믿었다.

지오세 투사로 다시 태어난 총각은 동료 한사람 한사람 모두에게 관심을 쏟고 어려울 때마다 손을 보탰다. 그리고 자신에게 처음으로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며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던 선배 투사들을 생각하며 후배들에게 최선을 다해 정성을 기울였다. 이제 일 잘하는 총각은 지오세 투사로서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지오세도 산업선교회도 청년종교단체 정도로만 알려진 까닭에 회사 쪽에서도 인식이 나쁘지 않았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총각은 같은 정방과에서 일하던 유재길·백애화·김유숙·고춘자·김연심 등을 지오세로 이끌어 같이 활동했다. 늘 성실하게 일하면서 남의 어려움까지 외면하지 않는 동료 총각에 대한 믿음이 지오세 활동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가 늘 가슴에 달고 다닌 지오세 배지는 그들에게 보석처럼 빛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사랑을 만나는 기도로 영성화되고 복음화되는 과정을 통해, 노동에 대한 의식 향상과 사회민주화를 꾀하며 이것이 다시 자연스럽게 선교와 복음화를 이룬다’는 지오세의 존재방식을 그대로 실천한 결과였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한겨레 인기기사>

황교안 법무부 장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화보] 100장의 사진으로 본 박근혜 대통령 100일
장윤정, 인터넷에 비방글 올린 누리꾼 고소
안철수 “진보 정당은 아니다” 최장집 교수와 선그어
딸의 우승에…가난한 ‘캐디 아빠’ 닭똥 같은 눈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박근혜보다 죄 큰데 윤석열 탄핵될지 더 불안…그러나” [영상] 1.

“박근혜보다 죄 큰데 윤석열 탄핵될지 더 불안…그러나” [영상]

주말 ‘윤석열 탄핵’ 10만 깃발…“소중한 이들 지키려 나왔어요” 2.

주말 ‘윤석열 탄핵’ 10만 깃발…“소중한 이들 지키려 나왔어요”

윤석열 쪽, 헌법재판관 3명 회피 촉구 의견서 냈다 3.

윤석열 쪽, 헌법재판관 3명 회피 촉구 의견서 냈다

응원봉 불빛 8차선 350m 가득…“윤석열을 파면하라” [포토] 4.

응원봉 불빛 8차선 350m 가득…“윤석열을 파면하라” [포토]

[단독] 공수처, 윤석열이 뭉갠 검사 3명 이어 4명 신규 임명 요청 5.

[단독] 공수처, 윤석열이 뭉갠 검사 3명 이어 4명 신규 임명 요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