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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여동생 죽음 계기로 천주교에 귀의 / 이총각

등록 2013-05-28 19:31수정 2013-05-29 14:59

1967년 8월 이총각은 인천 화수동성당에서 세례명 ‘루시아’로 영세를 받았다. 그해 봄 여동생 은옥의 장례를 도맡아 해준 성당 사람들의 정성에 감동해 언니와 동생들까지 모두 함께 가톨릭에 귀의했다.
1967년 8월 이총각은 인천 화수동성당에서 세례명 ‘루시아’로 영세를 받았다. 그해 봄 여동생 은옥의 장례를 도맡아 해준 성당 사람들의 정성에 감동해 언니와 동생들까지 모두 함께 가톨릭에 귀의했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9
1967년 8월15일, 이총각은 ‘루시아’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11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동생 ‘은옥’(똘똘이)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지난봄 은옥의 장례는 대세를 해줬던 이웃 아주머니의 배려로 화수동 성당 분들이 모든 일을 맡아 진행했다. ‘똘똘이’는 꽃으로 덮인 조그마한 관에 누워 조용히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집을 떠나 구월동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지금 같았으면 절대로 죽을병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고 생때같은 자식을 묻은 어머니는 자꾸 당신 탓을 했다. 식구들 모두 가슴이 저렸다. 총각은 동생이 불쌍하고 미안해서 동생이 묻힌 곳에 자주 찾아가 한바탕 목놓아 울다 돌아오곤 했다.

똘똘이의 죽음 앞에서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식구들은 친척도 아닌 어린아이의 장례를 정성껏 자기 일처럼 봐주는 성당 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식구들 모두 가톨릭 신자가 되기로 뜻을 모았다. 총각은 성당에 다녀야 나중에 천당에 가서 동생을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여린 가슴에 작은 희망의 씨앗 하나를 품었다.

장례 이후 첫 일요일, 온 가족이 모두 화수동 성당에 나가 주임신부를 만나 낯선 종교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큰언니는 십자가가 나타나 반짝반짝 빛나는 꿈을 꿨다며 아마도 똘똘이가 좋은 곳으로 간 것 같다고 했다. 당신의 몸이 아픈 것조차도 만신에게 가서 물었던 어머니도 어린 딸이 남기고 간 고마운 인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큰어머니께서 달려와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피난 오기 전 고향에서 일년에 한두번은 큰굿을 했던 큰어머니는 ‘너희들이 다 성당에 나가면 그 많은 귀신들이 모두 우리집으로 오니 절대로 안 될 일’이라고 못을 박았다. 말도 안 되는 얘기에 이런저런 대꾸를 하자 사태는 점점 싸움으로 번져갔다. 결국 어머니는 큰집하고 불목이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성당을 포기했다. 하지만 자식들이라도 고마운 마음에 보답을 해야 한다며 성당에 보냈다.

총각은 그렇게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우선 6개월 과정의 예비자 교리 교육을 받아야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뭔가를 배운다는 게 그저 좋았다. 월사금 때문에 초등학교 교육조차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설레기까지 했다. 화수동 성당의 주임신부인 박요셉 신부님은 외국인으로 눈이 노랗고, 발그스름한 머리카락에, 팔에 난 털이 반짝거려서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가톨릭교회에서 느낄 수 있는 서양문화가 낯설면서도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의지하는 만신을 통해 본 무속신앙은 큰 칼에 작두를 타고 꽹과리 소리가 시끄러운, 좀 무서운 종교였다. 그런데 가톨릭의 미사는 고요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교리반 공부는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교리를 가르치는 ‘윤 회장’이라는 신도 대표는 마치 동화 속의 신기한 나라에 대해 얘기하듯 재미있게 말을 잘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의 큰 사랑을 경건하게 가슴에 품도록 잘 가르쳤다. 어느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동안 지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는 장소’라고 연옥에 대해 얘기해줬다. 총각은 순간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연옥에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는 천국에 갈 수 있는 희망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마음을 졸이며 간절히 기도도 했다.

총각의 동일방직 ‘여공’ 생활은 여전히 힘들고 잠이 부족했지만 일주일에 한번 교리를 받는 시간에는 머리가 맑고 총총해졌다.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세계는 현재의 노고에 대한 답으로 하느님의 구원과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일주일에 한번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런데 오후 2시 출근 때는 저녁에 하는 교리공부에 갈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일도 더욱 열심히 했다. 가톨릭 신자로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게 되면 충분히 보답을 받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찰고’(세례 받을 예비신자에게 영세 받을 준비가 돼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일)가 있던 날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교리 공부반 모두 함께 찰고를 받았는데 하필 그날 오후 2시 근무였던 총각은 나중에 혼자 찰고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생 처음으로 마주 본 외국인인 박요셉 신부님과 단둘이 문답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긴장되는 일이었다. 벌벌 떨며 눈도 잘 못 맞추고 있는데 신부님이 질문을 했다. “하느님과 인간은 어떤 관계입니까?” 아직도 귀에 쟁쟁한 신부님의 그 목소리는 살아오면서 늘 새롭게 총각의 마음에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총각은 루시아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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