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평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의 부당성 제기 및 손배 폭탄 금지 촉구 비정규직 대표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쌍용자동차 2009년 파업 이후 14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을 이 법원에 피고로 있습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15일 쌍용차(현 KG모빌리티)가 금속노조에 청구한 손해배상액 일부를 파기·환송하고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대법원 판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쌍용차의 주인은 14년 새 중국 상하이차에서 인도 마힌드라로, 또다시 케이지모빌리티로 바뀌었지만 ‘손배 가압류’만은 노동자들에게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김 지부장은 “오늘 판결을 가지고 케이지모빌리티를 만날 것”이라며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지속하기보다 과거의 아픔들을 고스란히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운동은 애초 2014년 손배 가압류에 시달리는 쌍용차 노동자를 돕기 위한 시민 모금 운동에서 시작됐다. 이날 개별 노동자의 손배 책임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을 받은 현대차 비정규직 관련 판결도 교섭에 응해야 할 실질적인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무분별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에 동력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노란봉투법은 노사 관계를 극심한 사회적 갈등보다 교섭과 대화를 통해 푸는 것을 지향한다. 2009년 쌍용차,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사업장 점거 당시 노란봉투법이 있었다면 이들의 현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선 비정규직을 포함해 3천여명의 정리해고에 반대하기 위한 쌍용차 노동자의 2009년 파업이 정당한 목적을 지닌 것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 노란봉투법 2조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 불일치’를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 불일치’로 고치는 내용을 담아 그간 사용자의 경영상 결정이라는 이유로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정리해고 또한 쟁의행위 대상으로 인정한다. 김득중 지부장은 “경영권이라는 가상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노동 삼권이 부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노란봉투법도 폭력·파괴 행위에 대해서까지 기업의 손배 청구를 막지는 않는다.
또한 파업과 이에 따른 손배로 인한 노동자와 가족의 불화로 나타나는 극심한 트라우마 피해가 다소나마 줄어들 수 있다. 노란봉투법 3조는 ‘손해의 배상 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규정해 지금처럼 노조와 조합원에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부진정연대채무’를 제한한다. 부진정연대채무는 사용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대상을 마음껏 정할 수 있어, 손배 취하를 노조 탈퇴 등의 ‘회유 조건’으로 삼는 폐해가 나타났다. 대신 노조에 남은 이들이 손해 배상 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다. 윤지영 변호사는 “이런 손배 책임이 조합원 사이의 불화, 죄책감, 부담을 조장해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쓰였다”고 말했다. 손배가압류의 경제적 고통과 그 앞에서 가정과 사회 관계가 무너지면서 쌍용차에서 30여명, 현대차 비정규직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무엇보다 노란봉투법이 있었다면 애초 공장 점거 파업과 이후 이어진 길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차단할 수 있었다. 현대차의 경우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 현대차에 교섭 의무를 부여해, 하청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을 찾아 나서고 점거·파업을 하기에 앞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줄 수 있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공장 점거에 앞서 법원은 여러 차례에 걸쳐 현대차를 실제 사용자로 봐야 한다며 불법파견 판결을 내놨다. 서범진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애초 이 재판들이 법원이라는 링 위에 올라온 것부터가 문제”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해 6월 임시국회에서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본회의 부의 의결 효력정지 및 본회의 상정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대통령실은 노란봉투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밝혔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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