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근로 유연화를 핵심으로 한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의 뼈대를 마련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연구회)에서 유일한 건강권 전문가였던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중순 사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수는 불규칙한 노동 시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했으나, 이같은 의견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논의 흐름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노동시간 관리단위와 임금체계 개편을 핵심 내용으로 한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 교수는 29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지난해 11월 초부터 연구회 논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11월 중순 좌장(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에게 사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연구회와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권고문을 발표하며 김 교수의 중도 사임은 알리지 않았다. 법학·경영학 전문가 중심으로 꾸려진 연구회에서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우려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전문가가 빠진 채 권고안이 만들어진 셈이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 노동자의 산재 자살 등을 연구한 보건 전문가다. 노동부 또한 연구회 출범 당시 김 교수를 들어 “근로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보건 전문가를 포함 시켰다”고 설명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사임한 시점은 권고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이라 찬반이 맞붙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발제와 토론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매주 지속되는 흐름을 볼 때 (논의의) 총론이나 각론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노동 시간 유연화로 인해 비정규직의 장시간 노동이 늘어날 우려,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 기구의 노동 시간 권고, 노동 시간 배치의 중요성 등을 연구회에서 논의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연구회 논의에 대한 김 교수의 우려는 현실화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회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권고문은 세부 과제의 첫 번째로 ‘현재 주 최대 12시간 안에서 쓸 수 있는 연장근로시간의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하는 내용을 담아 불규칙·집중·압축 노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재검토에 들어간 상황이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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