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공부 열심히 해라.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이런 소리를 대놓고 한다.”(경비 노동자 ㄱ씨)
“경비복을 입은 상태로 정화조로 내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처음에는 어디인줄 모르고 작업하라고 해서 장화도 안 신고 내려가 분뇨가 발목까지 차고, 똥독이 올라서 2주 넘게 치료를 해야 했다.”(경비 노동자 ㄴ씨)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관리소장에 의한 갑질 피해를 호소하며 70대 경비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경비노동자에 대한 갑질과 부당한 업무지시가 만연함에도 상당수의 노동자가 간접고용과 단기계약 등 고용불안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직장갑질119는 지나해 10월 경비노동자 5명, 청소노동자 1명, 관리소장 1명, 관리사무소 기전 직원 2명 등 총 9명을 심층 면접해 갑질 피해 실태를 담은 ‘2023 경비노동자 갑질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를 보면, 경비노동자 9명 모두 1개월∼1년의 단기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모두 입주민으로부터 고성·모욕·외모 멸시, 천한 업무라는 폄훼, 부당한 업무지시·간섭 등 갑질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9명 가운데 6명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70대 경비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업무 외 부당한 지시를 수행하는 등 ‘원청 갑질’을 당했다. 9명 가운데 4명은 입주민에게 해고 협박을 받기도 했다. 면접 조사에 참여한 한 경비원은 “여의도 아파트에서 젊은 입주민에게 차를 좀 빼달라고 요청했다가 경비 주제에 무슨 말을 하냐며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해서 그만두게 하겠다며 협박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비원은 “2021년 10월부터 들어온 경비용역회사의 경우 3개월마다 (입주민) 민원이 있는 대원들을 내보냈다”며 “야간 순찰을 지시하며, 야간 순찰을 못 할 사람들은 그만두라고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직장갑질119는 경비노동자가 입주민과 용역회사의 갑질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간접 고용 구조와 초단기 근로계약기간을 꼽았다. 조사 대상 노동자 9명 모두 1년 미만의 단기 근로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하는 고용 형태였다. 5명 중 4명은 3개월 단위로, 1명은 1개월 단위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12월 발행한 ‘공동주택 경비근로자 업무범위 명확화의 고용 영향 분석’을 보면, 전국 경비 노동자들의 간접고용 비율은 9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 응답자 3150명 중 94%는 1년 이하 단기 계약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괴롭힘을 당해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기는 어렵다. 지난 14일 유서를 남기고 사망한 경비 노동자의 경우 갑질 가해자로 지목된 소장과 피해자는 같은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았다.
직장갑질119는 간접 고용 구조에서 초단기 근로계약기간 설정이란 관행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실효성 있는 노동자 보호 체계 마련 △직접 서비스 제공받는 입주민 및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책임 강화 △직접 고용 구조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연구에 참여한 임득균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3개월, 6개월 단위의 초단기 근로계약, 관리회사에 경비회사까지 있는 다단계 고용구조, 다수의 입주민·관리사무소 등 수많은 갑들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 구조에서 경비노동자들은 너무 쉽게 갑질에 노출된다”며 “입주민, 관리소장 등의 갑질 방지 및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고용불안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만 갑질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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