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기사 김아무개(44)씨가 안개가 낀 상공에 있는 타워크레인을 바라보고 있다. 안개가 걷히지 않았지만 작업을 하라는 지시를 받아서 이동중이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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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너무 심해서 올라가기 어렵지 않을까요. 지금 아예 안 보이는데….”
지난 10일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조종사 한아무개(58)씨가 작업반장과 통화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지상에선 위가 안 보이는데, 올라가면 보일 수 있으니 일단 올라가서 상부만이라도 옮기라는 거예요.” 하지만 한씨는 결국 지상 인양물을 옮기라는 요구가 이어질 거란 걸 안다. 35층 높이의 타워크레인 조종실은 안개에 싸여 보이지 않았지만, 한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작업모를 챙겨 타워크레인으로 향했다. 습기 젖은 사다리를 오르는 일은 여전히 위험하다. 지난해엔 비 오는 날 타워크레인을 오르던 조종사가 추락해 숨지기도 했다. 미끄러지고 부딪히는 일이 잦다 보니 한씨도 오른쪽 팔꿈치에 보호대를 끼고 있다. “예전 같으면 ‘김 반장, 기다려봐. 안개 시야 확보하는 대로 올라갈게’ 할 텐데…. 지금은 태업이라고 하니 올라가야죠.”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윤석열 정부 ‘건폭(건설 현장 폭력)과의 전쟁’으로,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임금 외 현장 하청업체들로부터 받던 ‘월례비’(성과급)가 사라졌다. 하지만 1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월례비를 대가로 조종사들에게 요구했던 위험·불법 작업은 여전했다. 나아가 의도적으로 작업을 지연시킬 경우 조종사 면허를 정지하겠다는 정부의 ‘태업 때리기’ 대책에 현장 노동자들은 “위험 징후조차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타워크레인 조종사 김아무개(44)씨 역시 지난 9일 공사장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1시간 반 추가 근무를 하며 단열재와 철근을 옮겼다. 작업 중단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태업으로 몰릴까 지시대로 업무를 수행했다. “안전 점검을 하는 것도 태업, 밑에 사람이 있으면 위험하니까 인양물을 들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태업이래요. 그냥 개돼지처럼 원청 말이나 듣고 일하라는 거죠.” 신호수 무전에 따라 눈보다 귀에 의지해 인양물을 나르다 보니 그는 늘 신경이 곤두선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8일 부당하게 태업할 경우 조종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는 ‘행정처분 가이드라인’을 낸 데 이어 지난 12일 최대 1년 면허 정지로 이어질 수 있는 성실한 업무수행 위반 유형 15개를 담은 지침을 발표했다. 정부 발표 이후 조종사들은 안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이영훈 민주노총 건설노조 인천경기타워크레인지부 조직차장은 “정부는 시범사례로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라 하고 불을 켜고 있다”며 “안전에 황색불이 켜지면 서야 하는데 태업이라고 불이익이 있을까 봐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규칙에 따르면 신호수는 신호 업무만 담당하고 작업자가 따로 인양물을 받아야 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신호수와 조종사가 단둘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8m가 넘는 철제 물건을 받는 게 일상이다. 인양물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인양함을 사용하고 추락 방지를 위해 랩을 씌워야 하지만 이런 기본 안전도 지켜지지 않는다. 10일 <한겨레>가 방문한 공사 현장에서도 이중으로 적재된 인양물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지난 1월 부산의 한 건축 현장에선 인양물을 쌓은 나무 팰릿(팔레트)이 부서지면서 20대 하청노동자가 맞아 숨지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특히 지침 가운데 ‘순간풍속이 기준치를 초과해도’ 원도급사의 승인 없이는 조종석을 이탈할 수 없다는 규정을 문제 삼는다. 한씨는 “지상은 바람이 조금만 부는 것 같아도 고공의 조종석은 크게 흔들리고 위험하다”며 “산업재해가 날 정도가 아니면 이탈하지 말라는 건데, 국토부 규정대로 현장 안전관리자가 그런 판단을 할 거면 위에 올라와보고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작업계획표. 4~5일에 한 층 공사가 마무리 되어야 하는 일정이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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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광주 아이파크 사고 났을 때 ‘일주일에 한층씩 올렸다’고 부실공사라고 하는 거 보고 웃었어요. 모든 현장이 다 그렇고 지금 있는 현장도 그런걸요.”
조종사 윤아무개(49)씨는 4~5일마다 한층씩 공사가 마무리되도록 짜인 현장 근무표를 보여주며 무리한 공사 일정 탓에 불법 지시는 여전하다고 했다. 현장 근무표를 보면, 3월1일 23층이던 현장은 한달 안에 28층이 돼야 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주 52시간 준법투쟁에 공사 현장 업체들이 아우성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윤씨는 “현장 업체들이 안전점검 없애고 불법 작업 요구하며 조금씩 늘어난 게 월례비인데, 이제 월례비가 사라졌으니 정부가 안전한 현장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런 노동자들의 바람과 달리 지금까지 발표된 정부의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에서는 건설 현장 안전 확보 방안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전문가들은 느슨한 안전규정이 산업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권영국 변호사는 “안전은 노동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 정부 지침은) 지시를 거부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라며 “그동안 사용자가 위반을 묵인해온 관행들을 오히려 합법화하겠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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