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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가명)씨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다. 파견직으로 일했던 공항에서 나온 뒤로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린다. 시간제 점원으로, 일용직 안내원으로, 그 밖에도 여러가지를 몇달이나 몇해씩 이어왔다. 일은 스스로 찾거나 지인들이 “알바 할래?” 하며 소개했다. 단시간·최저임금 일자리는, 두세가지를 같이 해야 최소 수입이 된다. 어느 때는 주 6일씩 일했다. 상연씨는 더는 “전투적으로 살고 싶지 않아” 돈 쓰는 일을 줄이고, 자신에게 시간을 주었다. 햇볕을 쬐고 무작정 걷고 책을 펼치고 피아노를 배웠다. 오래 해온 주말 아르바이트 가운데 하나는 예식장에서 식권을 받고 안내하는 업무다.
“예식장도 비수기, 성수기가 있어요. 완전 더운 여름과 완전 추운 겨울, 설과 추석, 이때는 예식이 없어요. 3월·4월·5월, 그리고 9월·10월·11월이 바쁘죠. 하객이 5천, 6천명 올 땐 연회장마다 여러명이 종일 서서 식권을 받았어요.”
첫 예식은 오전 11시, 연회장은 30분 전인 10시 반부터 문을 연다. 저녁까지 모두 다섯차례 예식이 이어진다. 상연씨가 일하는 예식장은 단독 홀이 아니라 한 건물 안에 예식홀과 연회장이 여러개인 대형 예식장이다.
“고용은 계약직과 일용직으로 나뉘는데 일용직은 한달에 최대 일곱번까지만 출근해요. 월 60시간 미만 단시간 근무죠. 그래서 이 사람이 비는 때 대신 일할 여분의 사람이 필요해요. 처음에 나는 그 대타로 한번 와서 이 일을 시작해 지금은 일용직으로 일하는 거죠. 주말에 누가 일할지는 주중에 팀장이 알려줘요. 늘 호출을 기다리고 대기한달까요. 그런데 결혼 인구도 감소하고 코로나 영향도 있어서 그간 예식이 줄었어요. 그래서 연회장 앞 배치 인원도 조금씩 줄였고요. 일용직이나 대타로 일하는 사람이나 월 출근 횟수가 어느 정도는 보장되고 고정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가기도 해요.”
코로나로 지난 3년간은 일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그간 결혼식이 준 만큼 식권 담당 인원도 3분의 1이 줄었다. 그러니 지금 인원은 말하자면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언제 일하러 오라고 부를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간을 견딘 사람들이다.
이 일은, 식권 받는 일쯤이 아니다. 1인당 식대가 4만~5만원 아닌가. 하객이 횡렬해 한꺼번에 몰려들어도 혼비백산하지 않아야 한다. 잊고 그냥 들어가는 사람 없게 식권을 받고, 서명이나 도장이 빠진 식권을 걸러내어 다시 받아오게 하고, 한번 들어와서 나가면 재입장이 안 됨을 알리고 설득하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을 땐 재입장자와 아닌 사람을 구분해 내야 한다. 예식장에 안내원이 따로 없어 세세한 안내까지 맡는다. 예식장에 오긴 왔는데 누구 결혼식인지 아무 정보 없이 오는 사람도 있어 혼인 당사자와 혼주 명단을 뒤적여 알려준다. 팀장 이하 모두 경력자라 하객과 사이에 여차한 일이 벌어져도 이 선에서 다 해결해, 관리자는 신경 쓸 일이 없다.
“일용직은 일한 돈을 그다음 주에 받아요. 토요일 하루 일하면 얼마, 일요일까지 이틀 일하면 주휴수당 포함해 얼마, 정해져 있죠. 이틀 일한 돈을 계산해보니까, 최저시급에 몇십원 더한 거였어요. 서너해 해온 게 아닌데, 경력자가 대부분인데 너무하죠. 계약직은 근무가 고정됐달 뿐이지 임금에서는 일용직과 큰 차이가 없어요. 이게 불만이어도 안 불러줄까 봐 우리는 말을 못 해요. 나이가 이제 재취업하기 힘든 나이면서도 젊잖아요. 자식들도 다 커서 시간도 많고요. 비슷한 또래가 모여서 얘기하면서 일하니까 그런 즐거움으로 그냥 참는 거죠. 일 시작하기 전까지 얘기하면서 기다리는데 분위기는 되게 좋은 거죠. 학창 시절처럼 약간 좀 모여서 수다 떨고 그런 느낌이랄까요. 여기 언니들은 다들 오래된 사람들인데, 그러니까 힘들어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참는 거죠.”
‘부지런’이 몸에 밴 식권 담당자들은 은연중 공짜로 더 일한다. 오전 9시 반 출근인데도 다들 9시에 출근한다. 9시에서 몇분만 지나도 ‘어? 내가 지각했나?’ 착각하게 된단다. 일 시작 전 아침을 먹고, 오후 3~4시쯤에 저녁을 먹고, 그사이 간식(휴게) 시간을 다 합쳐도 1시간이 채 안 되니 여기서도 또 공짜 시간이 나온다.
“눈치가 보이는 거죠. 천천히 먹고 화장실도 들르고 그러면 좋은데 일이 바쁘면 서둘러 가게 되죠. 배치 인원이 넉넉했을 때는 여유 있게 쉴 수 있지만, 인원이 준 만큼 내가 빠지면 다른 사람이 힘들다는 걸 아니까요.”
일요일은 토요일보다 예식이 적어 일찍 끝나니, 중간에 못 쉬었던 시간을 이때라도 쓰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한다. 가만히 있기가 뭐한데 일감이 보이면 손부터 나가는 사람들은 어느 날 자기들 일이 아닌 연회장 청소와 테이블 세팅을 도왔고, 어느새 그 일이 자기네 일이 되고 말았다.
“새해마다 우린 항상 그래요. 월급도 일당도 오르지 않으니까 ‘아! 이 일을 정말 이제 열심히 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그러면서 또 일을 찾아서 해요. 쉬는 시간도 우리가 확실하게 해서 휴게실에 들어가 쉬게끔 만들면 되는데, 그게 일을 안 하고 노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하는 거죠. 쉬고 나와서 도와도 되는데요. 조금만 시간이 남아도 우리는 눈치를 보게 돼요. 관리자를 비롯해 모르는 사람들은 ‘식권 받는 일이 뭐가 어렵냐? 이 일이 임금을 많이 줘야 하는 일이냐?’ 할지 몰라요. 이 일의 디테일을 모르는 거죠. 이 자리에 서보면 알 거예요. 그 많은 사람과 사례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요. 정직원도 아닌 주말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들이 정말 정직원 이상으로 주인의식을 갖고, 사명감을 갖고 일해요.”
오랜 경력에 식권 업무를 말끔히 처리하는 이들에게 회사가 해마다 인색하게 최저임금을 내미는 건, 아무런 애사심도 소속감도 사명감도 주인의식도 책임감도 품지 말라는 뜻이었으련만, 오늘 일자리가 소중한, 오늘 일하는 내가 소중한 사람들은 연회장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사람에게 다가가 무얼 도와줄지 먼저 묻는다. 인색하지 않게.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