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씨 사망사건과 관련한 2심 재판이 열린 9일 오후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1심보다 후퇴한 재판 결과에 김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중대재해없는 세상 만들기’ 대전운동본부 회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씨의 당시 원청업체 대표가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유죄였던 본부장도 무죄를 받았고, 함께 기소됐던 이들 대부분이 감형됐다. 1심보다 외려 후퇴한 판결이다. 사고 당시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었다면 엄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참사였다는 점에서 이 법의 절실한 필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대전지법 형사항소2부는 9일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사장은 실제 업무 현황 및 운전원의 작업 방식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권유환 전 태안발전본부장에게도 “증거만으로는 위탁 용역 관리에 직접 관여했다는 정황을 확인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마디로 ‘위험성을 몰랐으니 책임도 없다’는 논리다. 피고들은 줄곧 ‘점검구에 왜 몸을 집어넣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거나 ‘고인이 과욕을 부린 것 같다’는 주장을 폈는데,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김용균씨의 죽음으로 천신만고 끝에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개정 산안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차례로 시행됐지만, 이 사건 재판에는 소급 적용될 수 없다. 1심보다 기존 산안법을 더욱 좁게 해석한 것도 적잖은 문제지만, 무엇보다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처벌하고, 직접 고용 관계 여부를 떠나 원청 경영책임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모르는 게 능사가 될 수 없게 하고, 원청 현장에서 작업하는 하청업체가 안전 설비에 직접 투자하기 어려운 현실 등을 반영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시행된 지 갓 1년여 만에 이 법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족시킨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티에프(TF)’는 이 법을 손보겠다고 공언해온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실려 있다. 처벌 대상과 요건은 훨씬 까다롭게 하고 처벌 수위는 크게 낮추려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날 충남 보령화력발전소 부두 석탄 하역기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작업을 하다 추락해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김용균씨 같은 희생자를 계속 양산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