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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온라인 학습 관리 교사 선영씨의 ‘부불 노동’

등록 2022-11-05 10:00수정 2022-11-05 16:34

[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온라인 학습 관리 교사 선영씨
사진은 본문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본문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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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잘 지냈어? 오늘 추웠는데 학교 잘 갔다 왔어? 목소리가 안 좋네. 속상한 일 있었어? 그랬구나.”

휴대전화 저쪽 학생에게 무엇보다 먼저 안부를 묻는다는 선영(가명)씨는, 온라인 교육플랫폼의 영어학습 관리 교사다. 일주일간 학생이 온라인 교재로 공부하면, 이를 점검하고 전화 상담으로 학생의 자기주도학습력을 북돋운다. 업체마다 지칭은 다르나, 고용과 업무 형태는 위탁직에 재택근무제로 모두 똑같다. 선영씨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수십명의 학습을 보살핀다.

“전화로만 하니까 서로 얼굴은 몰라요. 눈으로 보진 못해도 우린 연결됐죠. 일주일에 한번씩 일정한 시간에 꼬박꼬박 통화한다는 게 큰 인연이잖아요? 최소 6개월에서 길면 2~3년이니까 목소리만 들어도 얘가 지금 상황이 어떻구나, 마음이 불편한가, 이런 것도 느껴요. 그래서 안부를 물어요, 항상. 그런 다음, 아이가 학습을 잘했으면 ‘우아! 정말 열심히 잘했다.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잘했어?’ 칭찬하고, 어려워하는 게 있으면 ‘어려웠어? 같이 한번 얘기해봐도 괜찮을까?’ 물어봐요. 싫어하는 아이에겐 억지로 하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다음 한주는 어떻게 해볼까?’ 함께 계획을 짜요. 학습을 계속 열심히 잘하게 코칭하는 거죠.”

실력을 지녀야 가능한 일

그러자면 관리 교사는 학생의 학습 상황을 꿰뚫어야 한다. 일주일에 며칠, 무슨 요일에 몇분, 무엇을 얼마큼 공부했는지 확인하고 데이터를 해석한다. 지나치게 긴 학습 시간은 오히려 접속만 하고 공부하지 않거나,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영역별로 어떤 걸 수월하게 해내고 어려워했는지, 주요한 건 무엇인지, 나아가든 멈추든 뒤처지든 일주일 사이에 생긴 학습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찾아내야 한다. 공부를 직접 가르치는 건 아니라지만, 그만한 영어 실력을 지녀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영어를 좋아하고 관심 있어서 시도했지, 이 일은 문턱이 높아요. 면접 보고 교육을 받고서도 영어가 주는 부담감이 너무 커서 학생을 배정받기 전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아요.”

선영씨는 책을 즐긴다. 토론도 좋아해 독서 모임을 오랫동안 해왔다. 혼자 읽는 책이든 모임에서 고른 책이든, 영어 번역본 출간 도서는 원서를 구해 자유자재로 읽는다. <총, 균, 쇠>를 읽는데 알파벳 가득한 책에 한글로 쓴 김소월의 시 ‘산유화’가 나와 인상 깊었단다. 221쪽이라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선영씨는 다른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서, 동네 또래 여성들과 영어책 읽기 모임을 꾸리기도 했다. 주마다 모이길 꽉 채워 3년이라니, 멋지고 대단하다.

이런 밑힘으로 선영씨는 이 업무를 다년간 해왔다. “언니 (이 일) 괜찮아”라며 소개했던 지인은 “언니 (일은 힘든데 돈은) 안 올려주네요. 난 그만둘래요”라며 몇해 안 가 그만두었다. 모집 광고는 여성이 재택근무하며 쉽게 돈을 버는 것처럼 말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온라인 학습 시스템을 익히고 전화 상담 하는 요령을 터득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관리하는 모듈도 어렵고 복잡하고요. 충분히 시간을 두고 내실 있게 교육해야 하는데 안 그래요. 학생을 배정받고서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으로 일했어요. 돈은 안 되고 힘드니까 선생님들이 정말 많이 빠져나갔어요. 계속 사람을 뽑죠. 뽑고 또 뽑고. 교육 기간은 나 때보다 더 짧아졌어요.”

실력을 갖춰야 문턱을 넘는 일이지만, 문턱 너머에는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 보상이 지급되지 않는 노동이 있다.

위탁직, 저임금과 압축·부불노동

관리 교사는 위탁직이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선영씨는 기본급 없이 학생 한명당 수수료만 받는데, 그동안 단돈 1원도 오르지 않았다. 경력을 인정하는 보상도 없다. 무수한 시도와 고생으로 선영씨 스스로 얻은 노하우, 작업 몰입도와 속도를 신입이 따라올 수 없다는 것뿐.

“전화로 일한다고 딴 데서 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항상 제자리, 집 컴퓨터에 학생 자료를 열어두고 제시간에 일해요. 학생들이 학원에 다니니까 오후 4, 5시에 시작해 마지막 통화가 밤 10시15분쯤 끝나요. 상담 전에 학습 상황을 점검하고, 상담 마치고 자정까지 보고서 쓰는 일을 포함하면, 하루 최소 9시간 일해요. 상담하면서는 저녁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안 가요. 초긴장 상태로 집중하죠.”

수입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시간당 상담 인원을 늘려야 하나, 어렵다. 정해진 상담 시간은 10분 안쪽이지만 학생이 더 질문하거나 보호자가 잠깐 상담을 요청하면 거절할 수 없으니 초과 시간을 예상해야 한다. 상담 전 준비나 상담 뒤 보고서를 쓰는 시간은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노동으로, 수입을 최저시급에 맞추려면 노동강도와 집중력을 최대로 높이고 압축해서 일해야 한다. 늦은 밤, 아무리 피곤해도 보고서 쓰기를 다음날로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선영씨는 “콤팩트하게”라고 말했다.

“내 노동이 최저시급도 안 되면 막 아깝잖아요. 슬프잖아요. 하하하하. 그래서 더 콤팩트하게 하고 싶은 거예요. 강도는 높지만, 그래도 하루에 얼마 벌었잖아, 스스로 위로하는 거죠.”

회사는 회원 재등록률을 높이려 각종 이벤트와 프로모션에 관리 교사를 동원한다. 기본 수수료는 올리지 않으면서 싼 성과급을 내민다. 1등부터 몇등까지 줄을 세워 포상한다며 압박한다. 성과급으로 쓰는 돈은 따지고 보면 회원이 관리 교사 비용으로 낸 회비 중 일부다. 회사에 밉보이면 회원 배정에 영향을 받게 되니 안 할 수가 없다. 이 와중에도 갖은 부불노동(임금 없는 노동)이 생겨난다. 이벤트가 학생에게는 도움 되니 선영씨는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고 독려 전화를 돌린다.

“언어는 생각보다 오래 걸려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이 성장하는 게 보여요. 되게 뿌듯하죠. 내가 기여한 건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가 열심히 한 거죠. 아이들을 보면 노력이 주는 힘! 성실함이 주는 힘! 이런 걸 느껴요. 나도 아이들에게 쏟는 시간에 성실하려고 엄청 노력하죠. 많이, 정말 많이. 나라는 사람이 그런 것 같아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준비가 안 되면 불안해서 준비된 상태로 전화하고 꼼꼼하게 하려고 되게 노력해요. 아이들도 그렇고 우리 선생님들도 그렇고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열심히 마음을 다한 시간이 커다란 힘이 되고 거름이 될 거라 생각해요. 지치지만 않으면, 포기하지만 않으면요.”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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