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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유레카] 노동현장의 ‘고삐 풀린 망아지’, 민법 / 전종휘

등록 2022-09-25 17:13수정 2022-09-26 02:41

노란봉투법과 민법. 김재욱 화백
노란봉투법과 민법. 김재욱 화백

민법이 제정된 건 1958년 2월이다. 1948년 7월 제헌헌법이 만들어진 지 10년이나 지난 뒤다. 이는 식민지 시절 조선을 지배한 일본 민법의 그림자가 워낙 짙었을뿐더러 조문이 무려 1111개(현재는 1118개)에 이를 만큼 방대한 규모의 법을 만드는 작업이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다. 성격상 민법의 특별법으로 개별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근로기준법과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1997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으로 통합)은 그보다 앞서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3년 5월과 3월 제정됐다.

출생이 늦었음에도 일반법인 민법 개념이 그동안 거꾸로 특별법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주요 가치를 꾸준히 무력화했다.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는 도급이다. 도급은 인력 제공이 아니라 “어느 일을 완성할 것”(664조)을 약속하고 계약하는 행위다. 그런데 이 도급 조항을 이용해 노동력을 갖다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많은 경우 도급이란 계약의 형식이 고용관계란 실질을 지우는 것이다. 재하도급으로 이어지면 더욱 복잡하다. 속편 제작에 들어간 영화 <베테랑> 1편 대사는 이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중간에 운송료를 떼인 배 기사(정웅인 분)가 신진물산 앞에서 농성하자 최 상무(유해진 분)가 조태오(유아인 분)한테 이렇게 얘기한다. “하청업체에서 임금체불됐다고 본사에 항의하러 왔다는데, 법적으로 우리 쪽 문제는 없어서 가급적 경찰 부르지 않고 해결하려고….”

하청은 도급의 일본식 표현이다. 이런 식으로 배 기사와 신진물산의 관계를 단절하는 가위 구실을 도급이 해온 것이다. 얼마 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점거파업과 그 뒤 이어진 470억원 손해배상 소송 배경과 다르지 않다.

손해배상 소송의 남발은 입법권자들이 의도하지 않은, 노동권을 제약하는 두번째 민법 개념이다. 69년 전 만들어진 ‘노동쟁의조정법’도 제헌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구현하기 위해 쟁의행위를 이유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으나 현실에선 고삐 풀린 망아지다. 도급이 갈라놓은 고용관계의 단절이 결국 파업을 불법으로 몰고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를 합리화하는 일이 70년 가까이 이어졌다. 이를 막으려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적어도 노동 현장에선 민법이 종횡무진 설칠 수 없도록 족쇄를 제대로 채우는 일, 지금은 그게 민생이다.

전종휘 전국부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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