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등 노동·종교·법률·시민단체 대표와 회원들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 3권을 무력화하는 손배 가압류 금지와 하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손배소)에 맞서 쟁의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발의된 ‘노란봉투법’에 대해 경영계가 ‘손해배상 청구 금지법’이라는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민사회가 현행법 틀 안에서 쟁의권을 폭넓게 보장하자는 취지로 제안한 것을 ‘재산권 침해’라는 프레임으로 몰고간 것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전날인 14일 전해철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나 노란봉투법에 대해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닌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하는 법”이라며 “사용자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을 뜻하는 노란봉투법은 기업이 자본력을 이용해 노조 쟁의행위에 수백억원대 소송을 남발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이를 제어하고자 19대 국회 때 발의됐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은 지난 2014년 쌍용자동차 노조가 옥쇄파업으로 46억8천여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자 한 시민이 노란색 봉투에 성금을 넣어 전달한 데서 비롯됐다. 이 법은 7년간 국회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다가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와 하이트진로 화물기사 노조가 점거 농성으로 거액의 손배소를 당하면서 다시 주목 받았다.
노란봉투법이 ‘손해배상 청구 금지법’이라는 손 회장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합법적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 범위를 현행보다 넓히자는 요구가 뼈대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합법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 배상을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파업의 목적 자체가 사용자의 생산활동에 차질을 일으켜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것인데 배상 책임을 지게 하면 단체행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노동조합법이 허용하는 노조의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 범위가 워낙 좁다 보니 현행법 안에서 노조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청 노조가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거나 파업할 수 없는 구조가 결정적이다. 지난 6월부터 51일간 파업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경우 조선업의 낮은 임금인상을 문제 삼으며 합법파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교섭 권한을 쥔 원청이 협상을 거부하면서 논의가 교착되자 결국 조선소 점거 농성으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원청은 “교섭 의무가 없다”며 대화를 거부했고, 점거 농성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한 차례 형식적으로 대화에 ‘참석’할 뿐이었다.
이 때문에 노조의 단체행동이 최대한 법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동조합법을 재설계하자는 게 노동계 요구다. 쟁의행위 손배소 문제 해결을 위해 전날 출범한 ‘노조법2조·3조 개정운동본부’에 따르면 본부의 핵심 요구사항은 원청업체에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책임을 부여해 노조가 극단적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고도 노동조건에 관한 교섭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또 합법 파업의 범위도 현재 법원이 절차·수단·방법·내용 면에서 세세하게 규제하던 것을 쟁의행위 전반으로 넓히자고 요구한다. 경총이 말하는 ‘불법 쟁의행위까지 모조리 면책하자’는 요구가 아니다.
손 회장이 강조한 ‘재산권 보호’ 역시 기업들이 실제 손배소를 활용한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2015년 하청 노조 조합원 29명을 상대로 20억원 손배소를 건 현대차의 경우 불법파견 소송을 중도에 포기한 조합원 21명에 한해 선별적으로 소송을 취하했다. 삼성그룹과 유성기업은 ‘거액의 손배소로 압박해 식물노조를 만들어 해산시킨다’는 내용의 내부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총이 노조 존립을 위협하는 청구액을 청구 못하게 하는 등 노란봉투법의 일부 조항을 들어 ‘재산권 침해’라며 문제 삼고 있지만, 애초에 이런 조항이 포함된 배경엔 기업들의 무분별한 소송 남용 관행이 있었던 것이다.
노조의 쟁의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 논의는 조만간 국회를 통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적법한 투쟁은 언제든지 면책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불합리한 부분이 있어 입법 논의를 하겠다는 것으로 이제 입법의 시간”이라며 “이른 시일 내에 (자체적으로 실시한) 손배소 실태를 보고드리겠다”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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