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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원(가명)씨는 대학 문헌정보학과 1학년생 때 도서관에 찾아가 자원봉사를 했다. 어쩌면 미래의 일터! 전공 선생들은 현장을 경험하는 데에 의의를 두고 가보라 했다. 학기가 바뀌고 8시간 자원봉사에 활동비 1만1000원을 받았다. 학년이 오르고는 도서관 알바생이 되었다. 주말에만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 채용공고에 문헌정보학과 전공자와 도서관 관련 경험자를 우대한댔다. 메원씨가 딱 맞았다.
도서관까지 파고든 초단기 근로
하지만 1주 14시간 근무는, 단 1시간 차이로 15시간 미만 초단기 근로가 돼 주휴수당도 없고, 4대 보험도 없고(산재보험만 가능), 연차도 없고, 퇴직급여도 없고, 무기계약직 전환 기회도 없다. 이때는 이런 내용을 잘 몰랐고, 바깥 다른 일자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메원씨는 그나마 익숙한 도서관에 머물렀다. 3개월마다 계약을 연장하며 한군데 도서관에서 2년 넘게 일했다.
“현장을 파악하는 데에 아무래도 도움이 됐죠. 위계질서를 포함해서요. 도서관에는 대충 이런 계급이 있고, 사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렇게 나뉘는구나, 이런 거요. 놀라지는 않았어요. 하하하. 어차피 여기 말고도 다른 데서도 그럴 텐데요.”
메원씨는 2급 정사서 자격을 갖추고 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접고 사회인으로 생업을 찾아 나섰다. 학생 때 본 대로 정규직 일자리는 드물었다. 도서관 연관 단체에서 사무를 보았다. 9개월 기간제였다.
기간제 노동은 노동자가 쉬고 싶지 않아도 쉬어야만 하는, 공백기를 떠안긴다. 계약 만료 뒤부터 곧바로 채용공고를 수소문하고 서류를 넣고 발표를 기다리고 1차 합격하면 2차 면접 보기를 10여차례, 메원씨는 석달 걸려 두번째 일자리를 얻었다.
끝이 정해진 출퇴근길
“지금 일하는 곳은 구립도서관이에요. 자료실에서 도서 대출과 반납, 민원 응대, 서가 정리와 장서 점검 업무를 봐요. 개관 연장 사서라고, 나는 야간 근무자예요. 주말 하루는 주간에 일하고, 평일 나흘은 낮 1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죠.”
저녁 6시, 이때부터는 메원씨 혼자 자료실에 붙박여 한 층 전체를 책임진다. 통근 거리가 있어 퇴근해 집에 돌아와 한숨 돌리면 금방 자정이다. 메원씨가 저녁형 사람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이 출퇴근길은 올해 12월31일로 이미 그 끝이 정해져 있다.
‘국민 문화 향유 기회 확대’와 ‘사서 등 전문 인력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는 그간 ‘공공도서관 개관시간 연장 지원사업’을 해왔다. 그런데 전국 공공도서관 540여관에서 이 일을 수행하는 개관시간 연장 사서 1400여명은 정규직이 아니다. ‘중규직’이라 하는 무기계약직도 아니다. 비정규직 기간제 사서다.
메원씨의 계약 기간은 10개월, 세전 190여만원 임금 외 식비나 수당은 없다. 계약 기간은 도서관마다 다른데, 채용공고를 보면 대부분 메원씨보다 더 짧거나 길어도 1년 미만이다. 그래서 퇴직금이 없다. 지자체에 따라 1년을 공고한 곳도 있는 걸 보면 1년 미만 계약을 당연하게 볼 게 아니다. 1년 이상을 넘어 정규직도 불가능할 게 아니다.
개관시간 연장 지원사업은 최근 일이 아니다. ‘단년도 계속사업’으로 2007년부터 시작해 ‘상시·지속적인 업무로 운영되어왔으며, 일정한 자격 요건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정부 지침으로도 ‘정규직 전환 대상 포함 가능 사업’(‘공공부문 2단계 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2018)이라 했는데, 아직 안 이루어졌다. 이 사업 시작 첫해에 메원씨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이제 청년이 되어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그 자리로 출근한다.
도서관은 성장·발전할까
“지금 일하는 곳에는 정규직 사서가 15명, 기간제 사서가 8명, 시간제로 일하는 분이 8명, 그리고 자원봉사자분들이 있어요. 정규직 사서는 행사 기획도 하고, 사무적인 일도 하고, 보기에 좀 심도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은데, 개관 연장 사서는 데스크 업무 등 단순·반복 업무가 주예요. 도서관 일에 깊이 관여하지 못해요. 경험할 수 없으니 사서로서 업무 능력을 키우고 발전할 계기도 그만큼 줄겠죠. 정규직보다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까 이용자분들이 문의할 때 대처 못 하는 일도 있어요. 정규직 분들이 기본적인 일이나 알아야 할 정보는 공유해주기는 하는데, 그 외에 부가적인 건 굳이 안 알려주죠. 문의가 오면 대충 본인한테 넘기라 해요. 이용객은 정규직 사서에게 연결돼 안내받으니까 딱히 큰 문제는 아닌데, 순간이나마 나는 그분들 앞에서 곤란하죠. 분명 나도 사서니까요. 물론 도서관마다 달라요. 학교 동기는 규모가 작고 정규직 인원이 적은 도서관에서 일해 정규직 업무를 다 하는데, 처우가 뒷받침되지 않아 문제죠.”
소속감을 10개월만 느껴야 하는 고용 형태, 메원씨는 불합리하다 말한들 뭐가 해결될까 싶어 불만도 품지 않으려 한다는데, 물어보았다.
“1년 미만으로 계약해 퇴직금 안 주는 거, 올해 말까지만 쓰는 거, 내년에 다시 뽑는 거, 일을 계속 이런 식으로 이어가는 거요. 도서관뿐만 아니라 다른 데도 다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바꿀 의지가 없는 것 같아요. 이미 고착화해서, 딱히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이러면 도서관이 큰 발전은 없겠죠. 그냥 하던 분들만 계속하니까요. 음, 조금 큰 힘이 들어오면 바뀔까요?”
메원씨를 비롯해 이 도서관의 기간제 사서 대부분은 20대라고 한다. 이들이 도서관에 심도 있게 결합한다면 어떤 새로움이 생겨날까? 12월31일이면 계약 만료로 전국의 사서들이 일제히 도서관을 떠나야 하는 대신 한곳에서 지속해서 일하며 능력을 발휘한다면, 도서관은 어떻게 될까. 메원씨가 공공도서관경영 수업에서 공부했다며 인도의 사서이자 교육가인 랑가나탄의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다”라는 문장을 들려주었다. 불안정한 고용으로 사서들의 성장을 막고 도서관은 과연 성장할까.
르포 작가
박수정 |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