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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70시간 살인 노동해도 헐값, 적정 운임이 화물 사고 줄이는 길”

등록 2022-06-15 11:00수정 2022-06-16 02:47

20년간 ‘화물 안전 연구’ 마이클 벨저 교수 인터뷰
화물 인력난 해소 위해 적정 소득은 반드시 필요
안전운임제 효과 파악하려면 데이터 더 확보해야
지난 9일 <한겨레>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한 마이클 벨저 교수 회의 장면 갈무리. 통역을 맡은 임월산 국제운수노련(ITF) 도로운수분과부의장(윗줄 왼쪽) 통역 하에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난 9일 <한겨레>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한 마이클 벨저 교수 회의 장면 갈무리. 통역을 맡은 임월산 국제운수노련(ITF) 도로운수분과부의장(윗줄 왼쪽) 통역 하에 인터뷰가 진행됐다.

화물기사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1주 70시간에 달하는 살인적인 노동시간부터 줄여 합니다.
그러려면 적정한 수입, 즉 ‘안전운임’이 보장돼야 합니다.

2002년부터 화물기사 노동환경과 도로 위 안전관계를 연구해 온 미국 웨인주립대 마이클 벨저 교수(경제학과)는 10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안전운임제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벨저 교수는 화물연대 파업 이후인 지난 9일 국외 연구자 39명과 함께 안전운임제 연장·확대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한 바 있다. 

벨저 교수는 ‘적정 임금→노동시간 감소→안전 확보→좋은 일자리’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국 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화물기사들이 적정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벨저 교수는 “1980년대 규제 완화로 화주들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화주들이 상·하차 시간이나 차량 대기시간 등 화물기사들의 ‘운행하지 않는 시간’에 임금을 주지 않았다”며 “화주가 화물기사의 시간을 마음대로 낭비해도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한국 역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화물기사의 운임이 헐값으로 매겨지기 시작했다. 주 70시간 넘게 일하고도 적정수입을 벌 수 없어 과적·과속하는 관행이 이 때부터 생겨났다.

그는 화물기사들이 적정 수입을 받게 되면 노동시간이 줄고 사고율도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가 2018년 발표한 ‘왜 화물기사는 극단적으로 오래 일하는가’ 논문을 보면 미국 중서부 장거리 화물차 운전자 233명은 운임이 마일 당 30센트(1997년 물가 기준)일 때까진 주69시간 근무를 유지했으나 운임이 그 이상 오르자 노동시간을 줄이기 시작했다. 운임이 마일당 39센트에 이르자 노동시간은 주당 60시간까지 줄었다. 한국 역시 안전운임제 시행 2년 효과를 분석한 한국교통연구원 자료를 보면,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노동시간이 월15.6~42.6시간 감소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는 “일자리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벨저 교수가 2018년 발표한 ‘왜 화물기사는 극단적으로 오래 일하는가’ 논문의 노동시간-마일당 운임 상관관계 곡선 갈무리.
벨저 교수가 2018년 발표한 ‘왜 화물기사는 극단적으로 오래 일하는가’ 논문의 노동시간-마일당 운임 상관관계 곡선 갈무리.

벨저 교수는 장기적으로 화물기사 인력난 해소를 위해서도 적정 임금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화물기사 구인난을 겪고 있는 미국에서는 주40시간 초과 노동에 대해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벨저 교수는 “과거에는 화물기사 노동시간을 하루 14시간 이하로 줄이도록 강제로 규제했으나 화물기사와 화주 모두 수입 보전 때문에 노동시간을 축소 보고하더라”며 “화물기사들이 노동시간을 스스로 줄이게 하려면 결국 적정 소득을 보장하는 게 맞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일본도 만성적인 화물기사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2018년 화물 운송에 드는 각종 고정비와 변동비, 대기시간 등을 반영한 ‘표준운임제’를 도입했다.

한국교통연구원 자료를 보면 한국 역시 도로화물운송 예상 취업자가 2027년까지 40만9천명으로 늘다가 2030년엔 40만3천명으로 줄 것으로 전망된다. 벨저 교수는 “화물기사 인력난은 일부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다. 화물업계가 현재와 같은 저운임·공짜노동 관행을 유지한다면 물류업계가 화물기사를 모집하고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물류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적정 운임은 필요하며 이는 시장 효율을 증진시키는 제도”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안전운임제는 시행 2년 만인 올해 일몰의 기로에 서 있다. 정부가 지난 2020년∼2021년의 시행 효과를 분석한 결과 화물기사 노동시간이 소폭 줄었으나 교통사고율 감소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안전운임제에도 교통사고율이 줄이 않았다는 한국 정부의 분석에 대해 그는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벨저 교수는 “약 30년에 걸쳐 안전운임제를 실시한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즈의 경우 다른 지역과 견줘 화물기사 사고율이 크게 줄었는데 한국은 그와 견줘 시행 기간이 지나치게 짧고 차종 데이터도 적다”며 “제대로 된 효과 분석을 하려면 한국이 안전운임제 적용 기간과 차종을 확대해 더 많은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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