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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백설(가명)씨와 이슬(가명)씨는 2022년도 간호조무사 국가시험을 보았다. 이 시험을 보려면 교육훈련기관에서 학과교육을, 의료기관이나 보건소에서 실습 과정을 총 1520시간 이수해야 한다. 두 사람은 고용노동부의 국민내일배움카드 국비 지원(일부 자부담)으로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주 5일씩 11개월간 이 과정을 함께 밟았다. 학과교육 기간에는 간호학원에서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이론을 공부하고, 실습 기간에는 간호학원과 협약한 병원 중 두 곳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실무를 익혔다. 4월 초에 합격자를 발표했고, 두 사람은 보건의료기본법 제3조 3항에 따라 보건의료인이 되었다.
백설씨는 벌써 병원에 취업했다. 가채점하고선 일자리를 물색했다. 첫 병원에서 당장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백설씨는 20대부터 30대까지 14년간 무섭게 일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본업을 하고 초저녁에 4시간 자고 일어나 편의점에서 밤샘 근무하고 바로 출근하던 사람이다. 결혼 뒤 시가와 가깝게 살면서 “주양육자로 아이를 돌봐준 시어머니가 계셔서” 바짝 돈을 벌어 집도 일찍 장만했다. 어렵게 얻은 둘째를 낳고 한 5년은 아이들에게 푹 빠져 지내다 다시 돈을 벌러 나섰다. 커가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고, 여동생과 엄마에게도 주고 싶은 게 많다. 프랜차이즈 뷔페 주방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3년 남짓 일했고, 1년 계약직으로 건물도 청소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재계약이 안 돼 청소 일을 그만둘 즈음 사촌동생이 전화했다.
“간호조무사 자격증 따서 자기처럼 일하라는데 ‘나이 50이 넘는데 취직이 되겠어? 무조건 자격증만 딸 게 아니라 자격증으로 일할 수 있어야잖아?’ 그랬더니 걱정하지 말래요. 한의원, 요양병원, 간호통합병동, 이런 데 다 나이 50 넘어도 쓴다고. 그래서 자격증 딴다던 이슬씨한테 전화했죠.”
이슬씨는 요즘 면접을 보러 다닌다. 백설씨보다 7살 어린데, 간호조무사로 경력을 쌓아 방문간호조무사가 되는 게 꿈이다. 그래서 힘들어도 일을 배울 병원이 어딜까 찾는 한편, 저녁이나 주말은 늘 가족과 함께해온 터라 시간 앞에서 갈등한다. 요양병원은 2교대나 3교대이고 개인병원은 토요일도 출근하는데 연봉은 2400만원 정도이거나 그 아래로 식대 없는 곳이 꽤 됐다. 교육 동기들의 취업 소식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임신하면서 직장을 그만뒀어요. 첫애 낳고 8개월에 남편 직장 따라 서울에 왔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이었죠. 3년 터울로 둘째가 생겨 일을 못 하고 다시 주저앉았어요. 일하고 싶은 욕망은 계속 끓었어요. 그 욕망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계기가 없으니까 선뜻 나서지 못했어요. 주부도 괜찮지만, 사회에서 내가 할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했어요. 언제부턴가 아는 엄마들이 하나둘씩 ‘나 일자리 구하러 다녀, 일하러 가’ 그러더니 ‘야, 너 일 안 해? 너 애 다 키웠잖아?’ 그래요. 병원 일, 간호조무사 일을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너무 미뤘단 걸 3년 전 엄마가 크게 아프신 다음에야 깨달았어요. 더는 미루면 나 자신에게 안 될 것 같아, 되든 안 되든 일단 시작해보자고 마음을 굳혔죠.”
백설씨는 교육 기간에 집 근처 편의점에서 저녁 일을 했다. 단, 국비 지원 규정상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안 돼 4시간씩 주 3일만 일했다. 백설씨와 이슬씨는 자기 집이 있고 다른 가족의 수입이 있지만, 집세와 생활비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매달 일정액의 훈련비를 받아도 공부하는 동안 어려움이 따르겠다.
실습생의 실습은 병원 현장에서 노동이 된다. 백설씨는 병동 환자 45명의 활력징후를 체크하고, 이슬씨는 간호조무사 선생님을 따라 퇴원 환자 침상 틈새에 낀 각질까지 파내며 깨끗이 청소했다. 코로나로 소독과 멸균에 더욱 신경 써야 했다. 이슬씨가 병원 모집 요강을 얘기했다.
“실습한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를 뽑는데 요강에 간호조무실습생의 업무를 적어 놓았어요. 실습생이 있으니 그렇게 업무가 과중하지 않을 거라는 거, 실습생이 있으면 아무래도 조무사가 숨통이 좀 트이잖아요. 서브해 주니까요. 요즘 면접 본 다른 병원도 모집 요강에 그 점을 어필했어요. 실습생 있다고. 그러니 실습생이 역할이 있는 거죠, 나름.”
실습생에서 간호조무사로 이제 현장에 선 백설씨는 실습 때 다짐한 걸 잊지 않으려 되새긴다.
“나는 이 일을 양심적으로, 진심으로 할 거예요. 요양병원에서 실습하면서 환자와 보호자, 그 가정의 히스토리를 알게 되면 짠한 경우가 많아요. 내가 물질로 어떻게 도와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내 업무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예를 들면 솜 하나를 써도 제대로 된 걸 써야죠. 소독 안 된 솜을 쓰거나, 떨어뜨렸는데 주워 쓰는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면 안 되고, 귀찮아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자꾸 다짐해요. 내 조그만 귀찮음으로 환자에게 염증이 생기거나 그러면 큰일이잖아요. 실습에서 조무사님이 항생제 부작용 테스트를 한 후, 30분 뒤에 놔야 하는 주사를 곧바로 놓는 걸 봤어요. 자신도 깜짝 놀라 당황하던데 위에 보고는 안 해요. 환자에게 항생제가 맞아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아찔했죠.”
요양병원은 간호사가 부족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간호조무사 업무 영역이 넓고 과중해 두 사람이 실습하는 동안에도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이슬씨는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 환자들에게 다정한 안부를 물었다.
“환자가 말은 못 해도 눈은 마주칠 수 있어요. 혈압 재러 가서도 보호자가 다녀간 환자에겐 ‘따님 잘 만나셨어요?’ 여쭤요. 그냥 눈만 뜨고 계시지만, 평상시 눈빛이 아닌, 조금 더 초롱초롱하고 기분 좋은 눈빛이 돼요. 볼 때마다 나는 느껴요. 내가 안부를 묻는다고 그분들이 대답하진 않아요. 그래도 안부 물으면서 일하면 보람을 느낄 때가 많거든요. 환자마다 일일이 말을 걸면 내가 힘든 면도 있지만, 우리의 일상을 만드는 거죠. 그분들이 건강해져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백설씨와 이슬씨는 마을 도서관에서 만나 서로 알게 되었다. 백설씨가 큰딸을 서른셋에, 이슬씨가 큰딸을 스물여섯에 낳았는데 두 아이가 또래다. 처음에는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 도서관을 찾았는데 점점 자신을 위해서, 이웃 아이를 위해서 활동을 넓혔다. 두 사람이 도서관과 학교와 마을공동체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봉사한 것은 면접 이력서에 그대로 적지 못하지만, 병원에서 일하면서 분명 좋은 바탕과 능력이 될 거다. 두 사람은 “아이들 어느 정도 키우고 난 뒤에는 진짜 못 해볼 거 없으니까, 무슨 일이든 조금이라도 끌리는 게 있으면 도전하라”고 “주부라는 직업에서 벗어나 제2의 직업을 위해 도전하라”고 또 다른 ‘나’에게 말한다.
박수정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