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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가명)씨는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교사다. 20대에 일찍 교사가 된 이들과 달리 한참 뒤늦게 교사가 되었다. 그 ‘한참’과 ‘지금’ 이야기를 들었다. 그이는 “사람들이 너무 힘든 환경에서, 특히 여성이 많은 집단은 더 열악하고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전문대 전산학과를 마치고 현정씨는 스물 초반에 결혼했다. 아이를 낳고 직장에 다니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편입해 경제학을 공부했다. 발전하고 싶었다. 두번째 직장에서 셋째를 임신하자 상사는 아이와 회사 중 하나를 택하라 했다. 화나고 어이가 없었다. 출산 뒤 구직에 나섰다.
“아이가 셋 되니까 취직이 안 돼요. 중소기업 괜찮은 곳들에서 좋댔는데 아이가 몇이냐 물어요. 셋이라 그러면 얼굴색이 싹 변해요. 그냥 거기서 끝이에요, 면접이. 굉장히 사회에서 버려진 기분이 들었어요. 나는 정말 일을 잘할 수 있는데.”
현정씨는 부업집을 찾았다. 휴대전화 디엠비(DMB) 안테나를 만들었다. 당시 호황이던 모 전자회사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인 셈인데, 근로기준법은 회피하면서 불시에 필요한 어떤 공정도 가능한 “공장의 숨은 라인”이었다. 안테나 양 끝에 남은 코일을 감아 완성하면 18원, 한달 80만원을 채우면 손톱이 닳고 허리 디스크가 점점 주저앉았다. 앞 공정에서 납물을 써 코일 끝에 납이 묻어 오는데 맨손으로 작업했단다. 부업집에 오는 여자가 스물 남짓, 그중엔 임신부도 있었다.
“이게 손톱 가지고 하니까 장갑을 못 껴요. 임신부한테 ‘납이 태아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기사 같은 데 많다, 납 만지는 일 말고 안전한 걸 해라’ 그러면 기분 나쁘죠, 자기도 이거 해서 돈 벌고 싶은데. 이런 말 자꾸 하면 사장님이 미워하죠. 여기선 근로기준법이니 뭐니 몰라야 하니까요.”
아이들이 잠들면 부업집에서 싸 온 일감을 펼쳤다. 안테나 코일을 감으면서 평생교육진흥원 학점은행제의 아동학과 방송 강의를 들었다.
“부업을 2년 했는데 밤에 자려고 누우면 온몸이 다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어요. 너무 힘들 땐 어떤 생각까지 했냐면, 내일 아침에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 보육교사 자격증 따고 직장에 가니까 그나마 좀 편하고 해방감이 있었어요. 부업은 내가 연락돼야 일감을 받으니까 늘 대기 상태였죠.”
어린이집도 공공연히 법을 어겼다. 현정씨는 3년간 두군데서 일했는데 최저임금에 출근시간만 있고 퇴근시간과 휴게시간이 없었다. 원장은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구청에는 정직원으로 임명 보고하고 교사와는 파트타임으로 계약했다. 새 학기다, 평가인증이다, 행사다, 밤늦도록 일하고 토요일에 당직해도 연장·야간·휴일 임금을 주지 않았다. 연차는커녕 여름휴가로 금요일 하루 쓰게 하면서 금·토·일 사흘이라고 우겼다. 현정씨가 따지면 형편이 나아지면 해준다며 다음으로 미루고 구슬리더니, 어느 날부턴 수시로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로서 자질이 없다며 모욕하고 폭언했다.
“선생님들에게 자기 휴가는 자기가 챙겨야 한다, 주임인 나 혼자 말해서는 소용없고 같이 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괴롭혀요. 혼자 밤 10시, 12시까지 애들 놔두고 일했는데, 이제 안 되겠어서 그만두겠다고…. 생각하니까 울컥하네요. 한동네인데 그 어린이집 앞 골목을 몇년간 못 지나갔어요. 트라우마죠.”
우울증이 생길 만큼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현정씨는 어린이에게 부족한 선생일까 두렵고 미안해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더랬다. 초등학교 방과후 돌봄교실 대체 강사로 일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학교 가면 천국일 줄 알았죠. 공무원이고 정규직이잖아요. 근데 여기엔 또 여기의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현정씨네 유치원은 과밀학급이다. 학생 108명에 교사가 5명, 5학급이다. 현정씨 반은 24명, 보조교사는 없다. 5살 반에만 교육실무사가 배치된다. 시설은 교실 5개와 교무실, 작은 도서실이 있고, 어린이가 뛰어놀 유희실과 교직원 휴게실은 없다. 현정씨가 그림으로 설명하는데 화장실이 한칸이다. 원감, 교사, 교육실무사, 방과후 돌봄전담사, 환경미화 선생님과 자원봉사 선생님까지 여성 13명이 쓴다. 제때 화장실 못 가 방광염, 아이들 챙기느라 제대로 밥 못 먹어 위염이, 유치원 교사에게도 흔하다. 행정 인력이 없어 수업 앞뒤로는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수업 준비는 집에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이 난다.
“임신한 선생님이 입덧이 심해 ‘모성보호시간’(임신 중 근로시간 단축)을 쓴다니까 원감님이 막 화내요. 그 선생님이 참고 참다가 눈물이 터져 같이 울었어요. 사실 이 선생님이 모성보호시간을 쓰면 누군가 업무를 대체해야 하는데 이미 우리는 과부하예요. 결국 당사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모성보호시간을 써도 2시간 일찍 퇴근할 뿐이지 일을 집으로 가져가서 해요.”
이날 원감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현정씨는 ‘은따’당했다. 교무실에 가면 주위가 조용해졌다. 어느 날 원감이 단톡방에서 한 교사의 개인정보를 발설해가며 불필요한 책임을 추궁하고 이에 교사들이 동조하는 걸 보면서 인권침해이니 그만두라고 했다가는 ‘왕따’가 되었다. 교묘하게 일지 검사를 요구하는 원감에게 저항하자 집단따돌림까지. 4년간 원감 3명한테 골고루 겪었다. 다른 교사도 번갈아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었다. 폐쇄적인 유치원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원감이 일은 않고 교사들의 성과를 자기 실적으로 가로채는 문제도 결부된다.
“부장은 ‘조용히 해라, 유치원 일이 유치원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선생님이 낙인찍힌다, 사람이 갈 때 소문부터 먼저 간다’며 말리고, 원감님은 ‘이게 다 선생님을 위해서’라고 회유해요. 유치원 교사 집단에도 가스라이팅, 태움이 있어요. 간호사 태움처럼.”
교사를 이렇게 몰아넣는 구조가 문제라는 걸 현정씨는 안다. 그래서 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를 알아내는 인권 감수성을 키워야겠단다. 세상을 겪은 시간이 있고, 그간 밑바닥 노동에 단련됐고, 세 아이도 다 커 유치원 어린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기에 교사가 돼 주저할 게 없다.
“2020년부터 교육과정이 개별 유아에게 맞춘 개별 교육, 놀이 중심 교육으로 바뀌면서 아이마다 성장 과정을 지켜봐요. 이렇게 무한한 능력을 가졌구나, 감동해요. 사고력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문제해결력과 자기조절력을 키우는 교육을 유치원에서 시작하는데, 교사가 중요하죠. 연수도 엄청 받고 책도 많이 읽고 연구해요. 버겁지만 대학원 공부도 합니다. 나는 왕따, 은따를 당해도 날 사랑해주고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어서 유치원에 갑니다.”
박수정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