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캠페인 기간인 지난해 12월2일 오후 서울시 중구 시그니처타워에서 열린 스타트업 정책 토크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노동 공약은 ‘노동시간 유연화’다. 과거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저성과자 해고에 방점을 찍었다면, 새 정부의 노동 유연화 정책은 노동시간을 노사 자율로 정하는 데 초점을 뒀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현행 1~3개월→1년 추진
윤 당선자는 대선 후보 때부터 “한 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할 수 있어야 한다”(지난해 7월 <매일경제> 인터뷰)거나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근로시간을 유연화하고 충분한 보상을 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올 1월 인천 남동공단 방문 현장)고 말해왔다. 노사가 원하면 노동시간에 상·하한선을 터줄 수 있다는 취지로, 주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명시한 문재인 정부와 확연한 기조 차이를 보인다. 윤 당선자의 대선 공약을 보면 1주 노동시간을 특정 기간 동안 평균 40시간 이내(연장노동 포함하면 52시간)로 맞추면 법을 지킨 것으로 보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 기간을 현행 1∼3개월에서 1년 이내로 늘리자거나, 특정 사유에 한해 1주에 52시간 넘게 일을 시킬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대상에 신규 스타트업을 포함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는 법 개정 사안이어서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면 시행이 어렵지만, 특별연장근로 사유 확대의 경우 정부가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 된다.
일터에 생계가 달린 노동자의 사정을 고려하면 노사의 표면적 ‘합의’가 실상은 사용자 편의나 생산 일정에 끌려갈 거라는 우려가 크다. 노동시간을 늘리려면 회사 직원 과반수 동의를 얻은 ‘근로자대표’와 합의하거나 개별 노동자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노동자들을 한데 모아 손을 들게 하거나 돌아가며 서명을 받는 식으로 사용자가 동의를 종용하는 관행이 만연하다. 공약으로 제시된 ‘시간선택제 일자리’ 역시 노동자가 원할 때 노동시간을 전환할 수 있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약속된 시간을 넘어 초과근무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노동자 의사가 왜곡되지 않으려면 이를 좀 더 투명하게 반영하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지만 이런 내용은 공약에 없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근로자대표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임하는 것부터가 급한데 아직 관련법 개정도 안 된 상황에서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면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근로자대표제 자체를 정비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의 노동시간 유연화 논의는 노동시간 자체가 한국과 견줘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이뤄지는 건데 노동시간이 긴 한국이 유연화를 하면 장시간 노동밖에 안 된다”고 덧붙였다.
공약을 설계한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일주일 내내 안 쉬고 일하자는 게 아니라 근로일 간에 11시간씩 쉬게 한다는 보편적 원칙이 전제된 것이고 노동자들도 노동시간 선택권에 관심이 많다”며 “생산직에 맞춘 획일화된 방식으로만 일하기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개인의 다양성과 노사 자율 결정을 존중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공약”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공약집엔 임금체계 개편도 포함돼 있다. 연차에 비례해 임금을 주는 연공급제(호봉제) 대신 직무급제나 성과급제를 택할 수 있도록 도입 절차를 손본다는 내용이다. 최근 연차가 낮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연공급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과도 관련 있다. 윤 당선자는 임금체계 역시 각 직급이나 직무별 근로자대표가 사용자와 서면으로 합의하면 임금체계를 바꿀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단 공약을 내놨다.
그간 임금체계 개편 논의는 꾸준히 있었지만 성공 사례는 흔치 않다.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한데다 질 낮은 일자리로 하향평준화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한국지엠(GM)은 2003년 성과연봉제를 전 직원에 도입했다가 임금 격차 확대와 지나친 경쟁문화를 이유로 11년 만인 2014년 제도를 폐지했다. 박근혜 정부가 2017년 주도한 공공 부문 성과연봉제는 노조 파업과 소송이 빗발치며 끝내 폐지됐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이들에게 직무급제를 적용했으나 기존 정규직 직원에 대한 호봉제는 그대로 유지해 직무급제를 임금 차별 수단으로 썼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한겨레>에 “독일처럼 산업별로 노사가 교섭해 노조 미가입자까지 적용할 정도로 대등한 관계면 모르지만 한국처럼 기업이 일방적으로 기준을 세워 도입하는 방식이면 고임금 직종엔 성과급제를, 저임금 직종엔 직무급제를 적용하는 식으로 모두가 더 낮은 임금으로 고착화될 수 있다”며 “지금도 고용형태에 따라, 기업 규모에 따라 임금 격차가 큰데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위험 역시 존재한다”고 말했다.
유길상 교수는 직무·성과급제 도입에 대해 “기존의 낡은 틀 안에서 노동시간만 계산해서는 생산성을 혁신할 수 없고 경쟁력을 키우기도 어렵다”며 “하루아침에 추진하자는 게 아니라 꾸준히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직무가치 평가 인프라도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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