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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은 자본주의의 최고봉이죠. 모든 걸 매출로 판단해요. 백화점에서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매출은 인격이다.’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천박하다고 생각했어요. 한 개인의 인격이나 가치관, 우리가 사람으로서 갖추고 서로 나눠야 할 어떤 걸 깡그리 무시하고 장사만 잘하면, 매출만 좋으면 일단 모든 게 용서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민숙(가명)씨는 백화점에 입점한 가구 브랜드 매장의 판매 매니저로 혼자 근무한다.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30분 뒤 개점 방송과 함께 판매 일선에 나선다. 주중에는 저녁 8시까지, 주말인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30분 더 연장 근무한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백화점 안에서 지낸다. 남들 쉬는 주말과 법정공휴일은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날이라 가능한 한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그 대신 주중에 하루나 이틀 쉬는데, 이때는 백화점 가구 매장 경험이 많은 아르바이트 인력을 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아이를 등교시키고 출근한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저녁 시간과 휴일에 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퇴근해 집에 가 씻고 나면 밤 9시30분. 그제야 긴장이 풀려 늦은 저녁을 먹는다. 긴 하루다.
“백화점은 꽉 막혀 있잖아요. 밖을 못 보고 하늘을 못 보고 바람을 쐴 수 없다는 게 처음엔 무척 힘들었어요. 이런 환경에서 십수년 근무한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죠.”
고향에서 어머니가 콩이며 고추 농사를 지으면 언니들은 가져다 아는 이들에게 팔았다. 민숙씨는 부끄럼에 그간 콩 한쪽도 팔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 민숙씨가 5년 전에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첫 계약서를 쓸 때 기억이 생생해요. 해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에 기분이 참 좋았어요. 그런데 경력이 쌓일수록 오히려 더 제품에 하자는 없을까, 배송에 차질은 없어야 하는데, 여러가지를 걱정하게 돼요. 성심성의껏 진심으로 고객을 대해도 그게 꼭 매출로 이어지진 않죠.”
판매원의 성심성의와 진심, 친절은 매출로 이어져야 인정받는다. 백화점과 브랜드 본사의 중요도 1순위는 매출이다. 매출을 직접 일구는 건 민숙씨 같은 판매원이니, 그 책임의 무게와 스트레스가 크다.
“백화점에서는 매출 신장이 중요해요. 지금이 2022년 2월이면 2021년 2월하고 비교해서 매출이 올랐나 안 올랐나 봐요. 매출에 신경쓰고 시달리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아요. 더구나 코로나로 지난해 매출이 전년도의 반으로 줄었거든요. 그동안도 온라인 매출이 늘어나 오프라인 판매가 쉽지 않았는데 코로나가 더 영향을 미쳤죠. 그런데도 매출 압박은 심하고요. 전국의 백화점 중에서도 유독 잘되거나 안되는 백화점이 있어요. 빈익빈 부익부처럼요. 안되는 백화점에서도 또 매출 없는 매장이 있고요. 거기서 매출을 내려고 판매원들이 얼마나 애를 쓰겠어요. 우리 스스로는 ‘한달짜리 일용직’이라고 해요. 지난달에 아무리 매출이 좋았어도, 새달이 오면 다시 영(0)부터 시작해야 하거든요. 최소 2500만원은 해야지 그래도 월급값은 했다고 해요.”
매출에 매인 노동자는 휴식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다 쓰지 않는다. 1시간 점심시간을 민숙씨는 이까지 다 닦고 30분 만에 마친다. 매출이 급감한 뒤로는 잠시 사이에 고객을 놓칠까봐 잠깐 하늘 한번 보고 바람 한번 맞고 오던 사치도 포기하고, 종일 매장에 붙어 있게 된다. 화장실에 가려다가도 옆 매장에 고객이 들면 참고 미루다 방광염에 걸린 적도 있다. 저기서 판매가 불발하면 기회가 자신에게 오니 어쩔 수 없었다. 같은 백화점에서 일하는 동료라도, 실상은 서로 경쟁 브랜드 직원이다.
“여기는 정글이에요.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이에요. 경쟁 브랜드가 매출이 오르면 그만큼 나한텐 고통이죠. 거꾸로 우리가 잘나가면 상대가 고통이고요. 백화점은 툭 터져 다 보이잖아요. 그러니 신경을 많이 쓰고 비교하죠. 매니저가 살아남는 방법은 매출을 올리는 방법밖엔 없거든요. 매출이 떨어져 매니저를 교체하거나 매장을 빼면 일자리를 잃으니까요. 서로 웃으며 지내도 속으로는 물어뜯고 싸우죠.”
어떤 날은 경쟁사 매니저가 아침부터 민숙씨에게 일부러 기분 나쁜 소리로 신경을 긁기도 하고, 응대 고객이 가고 나면 터무니없는 소리로 상도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처럼 몰아붙이기도 했다. 처음엔 맥없이 당했지만, 지금은 매출로 신경전을 벌인다는 걸 알아서 가여운 한편, 웃으면서 맞받아치는 여유도 생겼다. 5년차는 상대적으로 짧은 경력이지만, 민숙씨는 나름 제품·재료 공부와 관심을 꾸준히 이어가 자신이 판매원으로서 성장하는 걸 느낀다.
“자부심, 있죠. 물건만 팔고 매출만 올리면 된다고 생각하면 이 일은 정말 매력 없어요. 매출 압박에 오래 못 버텨요. 상품을 파는 일이지만 그걸 매개로 사람을 만나잖아요. 짧은 만남이지만 난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내가 판매하는 제품을 고객이 흡족한 마음으로 사가고, 쓰는 동안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요. 개인적으로 나는 건강에도 주의해야 하는데, 코로나 속에서도 씩씩하게 출근하고 일하는 나 자신이 대견해요.”
책정된 사은품이 없는데도 막무가내로 요구해 민숙씨가 개인 돈을 지출하게 하는 고객, 백화점에서 물건을 산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고객을 만나면, 민숙씨는 고객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고객 맞춤형 응대’와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매출을 고민한다. 판매에 실패하면 풀이 꺾이지만, 제품 상담 과정을 복기하며 아쉬웠던 점을 일지에 기록한다. 다음 판매는 이뤄내고 싶다.
“백화점이라는 공간 안에서만 생활하니까 잃어버리는 게 많아요. 종일 나오는 음악도 소음이에요. 그래서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처럼 좋아하는 노래도 듣지 않아요. 감정도 사라지고요. 나도 그렇지만 백화점에서 일하는 분들이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건강하면 좋겠어요. 그래야 오래 일하니까요. 마음속에 옹달샘을 간직하고 마르지 않게 하면 좋겠어요. 책이든 여행이든 주변 사람들하고 재미있는 생활로든요. 자기 일상을 잘 유지하면서요. 퇴근 시간이 앞당겨진다면 더 가능하겠죠? 내가 퇴근 시간이 앞당겨지면 좋겠다고 했더니 다들 꿈도 꾸지 마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그랬는데, 코로나 때문에 딱 한번 7시에 끝났어요. 정말 좋더라고요. 우리도 좀 일찍 끝나면 좋겠어요. 30분만이라도요. 우리 인격적으로 대우받으면서 잘 살아도 되잖아요.”
박수정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