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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억지로 쓴 사직서…“회사 경영 잘못한 건 오너인데, 버려진 건 나”

등록 2022-01-01 16:45수정 2022-01-02 14:50

[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동연씨

IMF로 첫 실업, 간병에 고용중단
자격증까지 따도 재취업 ‘별따기’
대우가 나빠도 버티고 버티면서
착실히 일했는데 이번엔 권고사직
취업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는 여성들. 사진은 본문과 관련이 없다. <한겨레> 자료사진
취업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는 여성들. 사진은 본문과 관련이 없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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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난해가 되었다. 동연(가명)씨가 억지로 사직서를 쓴 일이. 생애, 네번째 직장이었다. 경영이 방만해 회사가 어려워지자, 경영주는 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사무실을 옮겨 다른 회사와 동업하면서 동연씨가 3년간 해온 경리·회계·총무·경영지원 업무를 저쪽으로 넘겨 없앴다. 한달 뒤 부장은 권고사직을 통고했다.

“거부하기가 어렵죠. 사무직은 그날 나가래도 나가야지, 버티기가 어려워요. 자기 책상 빠지고 업무 자체가 없어지니까요. 계속 다니기엔 심리적으로 압박감이나 스트레스가 대단해 그만둬야 했죠. 비자발적인 거니까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것과 퇴직금이나 밀린 급여는 없어 노동지청에 갈 일은 없다는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거죠. 중소기업 작은 데서는 체불 임금을 차일피일 미루다 그냥 문 닫고 없어지는 일도 많아요.”

‘권고사직’ 억울과 분노, 배신감

한달 말미를 두고 업무를 정리하면서 “마지막날까지 담담하고 의연하게 지내리라” 동연씨는 여러번 다짐했다. 근무 마지막날 사무실을 나와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데 눈물이 터졌다. 콧물마저 쏟아져 연신 훌쩍이며 그 길을 걸었다.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하루가 지나니까 억울함과 분노, 배신감이 밀려와요. 내가 다른 일이 있거나 계획이 있어서 그만둔 게 아니잖아요. 오너가 회사 경영을 잘못했는데 나는 일자리를 잃었고, 사회에서 버려졌고, 더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심리적 충격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피로감이 심하게 왔어요. 번아웃이죠. 한달 동안은 하루하루를 멍하게 보냈어요.”

동연씨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밖에 나가기도, 누군가에게 연락받기도 싫었다. 안부를 묻는 말에 그냥 집에 있다고, 왜냐는 물음에 회사에서 잘렸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는 없잖은가. 점점 머리도 아프고 정신도 아팠다.

“엄밀히 말하면, 언젠가 우리는 회사를 떠나야 해요. 은퇴가 그런 과정이잖아요.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막상 나에게 닥치면 엄청난 충격과 함께 불안과 상실감으로 이어져요. 직업 혹은 일은, 일차적으로 생계 수단이며 자기 정체성의 일부인데,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봐요. 자신의 일부가 사라지니 충격일 수밖에요. 아무리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도 타의로 회사를 떠나게 되면 ‘이것은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내 인생을 재충전하고 업그레이드할 시간이야’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알지만 큰 병에 걸리면 쉽게 수긍하지 못하잖아요. 사별과 이별에 애도가 필요한 것처럼, 직장을 잃은 경우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요.”

동연씨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을 대하는 심리 5단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을 말했다. 나쁜 소식인 비자발적 퇴사도 이러한 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고. 자신은 최근 들어서는 수용 단계에 접어들었는지 분노와 배신감이 많이 줄었다는데, 시간을 돌이켜 이야기하는 동안 “에휴” 하길 몇차례, 한숨 끝에 안타까움이 맺힌다.

‘고용중단’ 혼자 감당하기 무겁고 힘든 일

동연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외국 기업 한국 대리점에서 영업지원 업무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텔렉스와 팩스, 워드프로세서를 쓰던 때였다. 아침마다 일일 보고서를 작성해 일본 도쿄 지사로 팩스를 보냈다. 두번째 직장은 미국 지방정부 한국 연락사무소인데 그 무렵에는 차츰 팩스 대신 컴퓨터 이메일을 사용했다. 동연씨는 시장조사와 다양한 산업전시회 참가, 새로운 거래선 발굴에 나섰다.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시작한 직장생활이 도합 8년을 채울 즈음 아이엠에프(IMF)가 터졌다. 사무소 폐쇄로 회사를 나와야 했다. 첫번째 겪은 비자발적 실업이었다.

“그때는 큰 충격은 아니었어요. 공부해서 더 전문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고, 나이도 젊어서 새로 다른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안 그렇죠.”

충격은 다른 곳에서 왔다. 몇달 뒤 어머니가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꿈꾸던 도약은 내려두고 5년간 어머니를 돌봤다. 그러면 어머니가 살아야 하는데, 세상을 떠나셨다. 허탈하고 허망했다. 스스로 자신을 도닥이고 쓸어줄 새도 없이 1년 뒤에는 아버지가 대장암이란다. 다시 4년,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했다. 동연씨는 서른 10년을 아픈 삶에 연대했다. 혼자 감당하기 무겁고 힘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딴 일은 할 수도 없었어요. 병원에 계속 보호자로 다니고, 집안 살림 할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20대에 번 돈을 그때 다 썼어요. 하하. 간병도 힘들었지만, 경력도 다 없어져서 다시 취업하기가 어려웠죠. 나이가 서른 후반, 마흔이 돼 쉽지 않았어요. 근데 가만히 있으면 누가 해주는 게 아니잖아요. 생계를 유지하려면 벌 수밖에 없으니까, 취업에 나섰어요.”

‘재취업’ 일자리 못 구한다는 두려움

동연씨는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엑셀·한글 등 사무직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전산회계 1급 자격증을 땄다. 지금의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기, 면접 요령 등을 도움받아서 경리·회계·영업지원 업무로 재취업했다. 세번째 직장이었다.

“자격증이며 준비 기간 빼고, 첫 이력서를 내고부터 취업까지 7, 8개월 걸렸어요. 나이에서 걸리니까요. 이력서도 몇백장 넣었을 거예요. 하루에 세번도 면접을 봤어요. 오랜 시간 경력이 단절되면 원하는 일자리나 그 전 일자리로 돌아가기가 힘들죠. 대우가 안 좋은 회사인데도 8년을 다녔어요. 해마다 더 많은 일을 했는데 인정받지 못했어요. 급여로든 다른 노동조건으로든요. 그래도 계속 다녔던 건 취업이 너무 힘들었던 게 각인된 거죠. 여길 그만두면 더는 일자리를 못 구한다는 두려움이 되게 컸어요.”

피치 못해 고용중단 상황이 길어졌지, 동연씨는 기존 경력에 삶의 경력을 더해 더 넓고 깊어졌다. 네번째 회사의 권고사직 당시 회사 내 기술직 여성들은 자녀 양육 문제로 먼저 회사를 떠나야 했다. 대개 서른 후반인데, 코로나 시기에 재택근무를 보장받지 못해 무급휴직으로 버티던 이들이다. 동연씨는 가족 돌봄으로 고용중단을 먼저 겪은 사람이라 동료들의 사정이 남 일 같지 않다. 다만 이 여성들은 기술자이니 돌아오는 길이 자신보다는 수월하기를 믿고 바랄 뿐이다. 새해를 앞두고 일터 곳곳에서 권고사직과 해고로 일자리를 잃고 뺏기는 일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찬바람 한가운데 서서 눈물범벅이 되었을 이들은 또….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마음과 몸을 잘 추슬러야지요. 그래야 이게 끝이 아니고 어쨌든 내일을, 다음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착한 게 무능한 건 아닌데,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열심히 근면하게 회사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가장 멍청한 사람이 되는 게 우울하지만요.”

박수정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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