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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추미애 장관 ‘낙태죄 폐지’ 의지 강했는데, 청와대는 달랐다

등록 2020-10-07 20:39수정 2020-10-08 15:05

정부 논의과정 살펴보니
법무부 7월 초안에 낙태죄 유지
추 장관이 여성계 의견 들은 뒤
자문기구인 양평위에 검토 요청
8월에 ‘낙태죄 전면 폐지’ 권고
국조실·5개 부처 논의 “존치” 확정

복수 정부 관계자 입모아
“낙태죄 유지 청와대 의지 매우 강해”
여성계 “사실상 밀실에서 논의” 비판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7일 오후 서울 국회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이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7일 오후 서울 국회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이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낙태죄 폐지 여부를 검토해온 정부가 결국 존치를 선택했다.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가 완전폐지를 권고하는 등 여성계의 오랜 요구가 수용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임신주수에 따라 임신중지 허용 여부를 달리함으로써 이를 무산시켰다.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따랐다고 설명하는 가운데, 정치권과 정부 안팎에선 청와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풀이가 나온다.

헌재는 지난해 4월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임신 22주 안팎’으로 보고 그 전까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임신 제1삼분기(임신 14주 이내)에는 여성의 판단에 따라 임신중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법무부 형사법제과가 7월께 마련한 형법 개정안 초안에 반영돼, 14주와 22주를 기준으로 두고 임신중지 허용 여부를 다르게 적용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같은 달 여성계 의견을 수렴한 뒤 부처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에 관련 법안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양성평등위는 논의를 거쳐 지난 8월 “여성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임신과 임신중단, 출산할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태아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출생·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며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후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법무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등 5개 부처가 논의를 이어가면서 이 권고안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기한을 2주 더 늘렸을 뿐, 사실상 초안대로 낙태죄를 존치시키는 정부안이 확정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날 “헌재 결정의 후속조처 차원에서 입법 개선 절차를 진행한 것이라, 결정문의 경계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가족부나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다. 올해 5~6월에도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 실무자 회의가 있었고, 8월에 국무조정실 주재로 여가부를 포함한 회의도 있었다”며 “(정부안은) 모든 부처의 의견이 종합된 것”이라고 밝혔다.

입법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절차가 아닌 양성평등위에 검토를 요청하는 등 주무장관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낙태죄 전면 폐지를 추진했는데도 정부안이 이렇게 나온 것은 청와대의 뜻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추 장관이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임신 14주 이내에만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낙태죄를 유지하는 데는 청와대의 의지가 매우 강했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계는 “정부가 사실상 밀실에서 논의했다”며 논의 과정을 비판했다.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되면서 각계 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논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은 채 서둘러 입법예고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지난달 관계장관회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국무조정실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총리 일정과 형평성 문제로 만나기 어렵다며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 이후 사회적 논의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여성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방안은 검토하지 않은 채 ‘처벌’ 조항에만 초점을 맞춰 개정안을 마련한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헌재 결정 이후 임신중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유산유도제 도입을 위해 의료접근성을 제고하는 방법을 검토해달라는 의견을 수차례 정부에 전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다해 김정필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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