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이 25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이날 오후부터 만 12살 이하와 임신부의 독감 무료접종이 재개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온 노출’ 사고로 접종이 중단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은 사람이 200명 이상으로 확인됐다. 질병관리청이 긴급하게 무료접종을 중단시켰지만, 일부 병·의원 등이 이를 유료접종용으로 사용해 빚어진 일로 보인다. 질병청은 접종자 가운데 이상반응을 보인 사람은 아직 없다고 밝혔지만, ‘백신 불안’은 더 커지는 모양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5일 브리핑에서 사용이 중단된 무료접종용 백신을 “서울, 부산, 전북, 전남 지역 105명이 접종했다. 13~18살과 성인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전북 전주시는 이날 “전주에서만 179명이 해당 백신을 맞았다”고 밝혀, 중복 인원(전주 60명)을 제외하면 200명 이상이 이 백신을 접종했다. 양쪽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21일 밤 11시께 무료접종 중단이 고지됐지만, 이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일부 병·의원과 보건소가 이미 배송받은 신성약품의 독감 백신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부 의료기관에선 무료접종용인 이 백신을 유료접종에 사용했는데, 전주의 병원 한 곳에서만 60명이 이 백신을 맞기도 했다.
이들이 맞은 백신에 상온 노출이 의심되는 백신이 포함돼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정 청장은 “독감 백신은 일회용으로 주사기에 충전돼 밀봉 상태로 공급되기 때문에 오염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아직 이상반응이나 부작용도 보고되지 않았다”며 “국민들께서 과도하게 불안해하시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송된 물량도, 접종자도 없다”던 전날까지의 설명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질병청은 백신 관리와 사고 이후 대응에 허점을 드러냈다. 게다가 접종을 금지한 백신이 사용되지 않도록 질병보건통합관리시스템에 전산 등록을 할 수 없도록 한 조처와 관련 공지는 무료접종을 중단한지 이틀째인 23일 저녁에야 이뤄졌다. 무료접종용 백신이 유료접종에 사용된 사실도 밝혀져 백신들의 ‘유통 경로가 다르다’는 설명도 무색해졌다. 정 청장은 “2만개에 달하는 의료기관에 일일이 다 안내를 드리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며 “백신 유통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해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신성약품이 유통시킨 백신 가운데 상온 노출이 의심되는 5개 지역 배송 백신을 검사하고 있다. 또 전문가 자문회의를 연 결과 “품질 변화 가능성은 낮지만 백신의 효과가 저하될 수 있다”며 이 부분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배송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매업체에서 의료기관까지 공급되는 배송·유통업체를 전문업체로 변경하고, 모니터링도 강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신성약품과의 조달계약 자체는 유지된다.
한편, 이날 오후부터 만 12살 이하와 임신부를 상대로 한 무료접종이 재개됐다. 이들은 만 13~18살, 만 62살 이상과 달리 의료기관이 개별적으로 백신을 구매해 접종하고 그 비용을 사후에 정부에 청구한다. 예방접종을 받으려면 질병청이 운영하는 ‘예방접종도우미’ 누리집 또는 앱에서 사전에 병·의원에 예약하면 된다. 이 누리집 등에선 추석 연휴 기간에 운영하는 의료기관도 확인할 수 있다.
조혜정 박임근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