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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전공의들, 끝내 집단휴진…합의안 왜 걷어찼나

등록 2020-08-26 20:05수정 2020-08-27 02:43

‘휴진철회’ 막판에 엎은 전공의들
확진자 폭증 아랑곳없이 강행

‘지역의사제’ 땐 한해 300명 늘어
젊은 의사들엔 직접적 경쟁대상

“밥그릇 지키기 아니라면
스스로 공공의료 대안 내야”
전국의사 2차 집단휴진 첫날인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의료진이 벗어놓은 가운 뒤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의사 2차 집단휴진 첫날인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의료진이 벗어놓은 가운 뒤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 코로나19 안정화까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안정화 뒤 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한의사협회(의협)와 협의한다. 협의 기간에는 의대 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

지난 25일 새벽 3시께 어렵게 마련된 정부와 의협 간 이 ‘잠정합의’는 22시간 만인 26일 새벽 1시께 물거품이 됐다. ‘정책 철회 전에 휴진 철회는 없다’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적인 반발에 부딪치면서다. 이에 따라 의협은 정부와 최종합의서에 사인을 하는 대신, 예고했던 대로 사흘간의 2차 집단휴진을 26일 시작했다. 지난 21일부터 무기한 휴진 중인 전공의들은 싸움 수위를 높여 각 병원에 단체로 제출할 사직서를 모으는 분위기다. 정부의 수도권 전공의 진료개시명령에 맞서 아침 7시부터 12시간 동안 외부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는 ‘블랙아웃’ 단체행동도 감행했다.

■ 잠정합의안 하루 만에 ‘물거품’ 잠정합의의 내용은 정부나 의협 모두 기존의 주장에서 후퇴한 것이다. 지난 7월23일 발표된 지역의사제 도입 등 의대 정원 확대 구체안대로면, 이달 중에는 보건복지부가 교육부에 각 의대 정원 규모를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들의 반발이 커지자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 19일 “수도권의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뒤 의료계와 논의하며 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25일 잠정합의에는 ‘안정화까지 추진 중단’이라는 좀 더 강한 ‘후퇴’ 어감의 표현이 담겼다. ‘백지화 선언 먼저 해야 대화를 시작하겠다’던 의협 또한 23일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먼저 대화를 요청했고, 당일 저녁부터 시작된 복지부와 마라톤 실무협의를 거치면서 조심스레 퇴로를 열었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달랐다. 25일 저녁 7시 서울 영등포 서울시의사회관에서 열린 비상대의원총회에서는, 상당수의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잠정합의 내용에 반발하며 ‘집단휴진 계속’ 결론을 이끌어냈다. 애초 이 회의가 열리게 된 배경을 두고 한 의협 관계자는 “의협은 집행부에 협상권이 어느 정도 일임돼 있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사정이 다르다. 더구나 의대 정원 확대란 사안이 전공의들에게 더 중요하고 민감한 일”이라고 말했다.

26일 자정 전에는 ‘의-정 합의, 집단휴진 해제’를 발표해 ‘진료공백’ 우려를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정부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능후 장관은 이날 오전 “전공의협의회 투쟁 결정에 따라 (의협이) 입장을 번복한 점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리더십에 상처가 난 최대집 의협 회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후배 의사들은 소신을 굽히지 말고 끝까지 투쟁해달라. 감옥은 내가 가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을 만나서는 “복지부가 의-정 간 합의문이 있었다고 발표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의협은 정부의 제시안을 최종 불수용한 것”이라고 했다.

■ 전공의, 개원의 간 ‘온도차’는 왜? 협상 과정을 잘 아는 한 정부 관계자는 “처음부터 이번 싸움을 끌어왔던 쪽은 의협보다는 전공의협의회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공의협의회는 의협 차원의 집단휴진(1차 14일, 2차 26~28일)보다 항상 몇발씩 앞서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인력까지 포함된 집단행동(1차 휴진 7일, 2차 21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벌이고 있다. 국가고시 거부와, 동맹휴학을 준비 중인 의대생들도 만만치 않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은 새달 1일로 예고된 의사 실기시험 접수 인원 중 89%(25일 오후 6시 기준)가 취소 및 환불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반면, 전국 3만2787곳 의원급 의료기관의 26일 낮 12시 기준 휴진율은 10.8%에 그쳤다.

이에 대해 이미 개원한 40대 이상의 의사들과 달리, 현재 의대생들이나 전공의들은 정부의 ‘지역의사제’로 늘어나게 될 한해 300명이 ‘직접적인 경쟁 대상’이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지역의사제는 의료 취약지에서 10년간 필수·중증 의료를 할 별도 인력을 장학금으로 양성하는 제도다. 10년에는 인턴·레지던트 등 5년여 수련 기간도 포함된다. 2022년 처음 선발하게 되는데, 이때 입학하는 학생들은 현재 예과 1학년생의 불과 2년 후배다. 수도권 지역 한 의대 본과 3학년생은 “정부안에 따라 의무적으로 지역에서 10년(인턴·레지던트 등 수련 기간 포함)만 일하고 나면 수도권이나 공부한 지역에서 얼마든지 개원할 수 있다”며 “그러니 경쟁 상대가 늘어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독 끈끈하고 서열 질서가 강한 집단 문화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종합병원의 전공의는 “의대에 입학해서 인턴·레지던트 등 수련 기간을 거치기까지 워낙 오랜 기간을 함께하고 앞으로도 수년간 볼 사이이기 때문에 의사 사회는 응집력과 서로에 대한 존중감이 굉장히 강하다”며 “각 과(전공)에서 1~2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내기 시작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다른 결정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전공의들의 싸움에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전공의들이 단순한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도 보완을 요구하거나 스스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무조건적인 철회만을 요구하며 휴진을 강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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