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발하며 집단휴진에 들어간 14일 오전 서울시내 한 병원 진료실에 횐 가운이 의자에 걸쳐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8월14일부터 17일까지 휴진합니다.”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주변 ㄱ이비인후과 의원을 찾은 최아무개(86)씨는 병원문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발을 굴렀다. 귀가 아파 급히 찾은 의원이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집단휴진에 동참해 문을 닫은 탓이다. 최씨는 주변 이비인후과 4곳을 찾았지만, 모두 문을 닫아 홍대입구역까지 15분여를 걸어왔다. 그는 “어제부터 소리가 잘 안 들리고, 아프고 간지러워서 병원을 찾았다”며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은 의사들이 파업을 하는지, 어느 병원이 여는지 닫는지 알 수가 없다. 왜 이러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늙은이 고생시키진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카페에도 불편을 호소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네이버 카페 ‘맘스홀릭’의 한 회원은 “아이 코감기가 심해서 다니던 병원을 가야 하는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황당하다”고 썼다. 강원 강릉시의 주민 카페에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 때문에 피부과 두곳에 전화했는데 다 휴진이더라. 혹시 진료 볼 수 있는 병원 있으면 알려달라”고 올렸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계획 등에 반대해, 전국 ‘동네병원’의 30%가 넘는 곳이 14일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낮 12시 기준 지방자치단체에 휴진을 신고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1만1025곳으로, 전체 의원(3만3836곳)의 32.6%에 이른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이날 찾아간 서울 종로구·마포구·서대문구·동작구의 휴진한 의원 20여곳은, 대부분 병원 앞에 ‘집단휴진에 동참한다’ 대신 ‘여름휴가’라고 적은 안내문을 붙여두고 있었다. 17일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생긴 연휴를 명분 삼아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렇게 의원급 의료기관들이 문을 닫으면서 대형병원들엔 환자가 몰려 북적였다. 서울성모병원엔 아침 9시부터 1층 로비에 외래환자가 가득 차 있었다. 이 병원 전공의들은 병원 밖에서 ‘의사증원 전면 재논의’ 등의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도 전공의들이 릴레이 1인시위를 벌였다. 딸과 함께 이 병원을 찾은 박아무개(67)씨는 “의사들 파업은 집단이기주의로 보인다. 코로나19 때문에 의료진이 많이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여론도 별로 안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의협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등 전국 5곳에서 집회를 열어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26~28일 2차 집단휴진’을 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이날 집회에 여의도 2만명 등 모두 2만8천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의사 국가고시 거부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14일 오후 서울 여의대로에서 의대생, 전공의, 개원의 등 의사들이 정부의 의료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집단휴진의 직접적 계기가 된 의대 정원 확대와 지역의사제 도입, 공공의대 설립 필요성을 두고 정부와 의협 간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오전 의협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좌훈정 대한개원의협의회 기획부회장은 “현재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천명당 3.5명)보다는 다소 적지만 증가율이 높아 2028년이면 오이시디 평균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은 의사 은퇴 시점이 늦는 편이고 전체 인구 감소 속도는 빠른 편이란 게 근거다.
이에 정부는 한국 의사 수가 인구 1천명당 2.4명, 한의사를 제외하면 2명으로 오이시디 평균에 크게 못 미치며, 지역별 의사 수는 심한 경우 14배나 차이 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전날 공개한 2011년 한 연구 결과에서 오이시디 평균 환자 1명당 1차 의료기관 진료시간은 17.5분인데 한국은 4.2분에 그친다는 점도 의사 수 부족 현실을 뒷받침한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런 현실이 “의료인이 충분하지 못한 지역 주민의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코로나19 신규 지역사회 환자가 약 넉달 반 만에 최다인 85명이 나와 위기감이 고조되는데도 의료계가 ‘진료 공백’을 만들고 집회를 강행한 점 역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국민들은 그동안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현장에서 사투를 벌인 의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있는데, 일부 의사들의 집단휴진은 이런 사회적 인식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코로나19와 수마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께 고통만 드릴 뿐”이라고 비판했다.
최하얀 채윤태 전광준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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