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상과 의사 인력을 늘린다고 했던 ‘구상’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의료 자본의 경제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국민의 보편적 의료에 대한 관심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기본 방향에서 ‘공공’이 사라졌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은 지난 21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공공의료’ 정책에 힘이 실리지 않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내놓은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종합대책)의 밑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정 원장과 당시 보건복지부 차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민·관 합동 ‘공공보건의료 발전위원회’는 2017년 11월 발족한 뒤에 공공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2018년 10월 종합대책을 내놨다. 지역 간 의료격차를 없애고 감염병 등 재난·응급상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중앙 및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을 세우고, 국립공공의대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이 뼈대였다. 다만 재정 계획은 쏙 빠졌다.
그 뒤로 청와대와 정부 안에서 ‘공공의료 강화’ 목소리는 약해졌다. 지난 3월 발표한 복지부 2020년 업무계획에서는 ‘공공의료’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필수의료 강화, 공공인력 확충 항목만 남았다.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감염병 대응을 위한 수단으로서 ‘공공병원 확충’ 정도만 간단히 한줄 언급되었을 뿐이다.
정 원장은 “2018년 종합대책을 발표할 당시에도 ‘그림’만 있었을 뿐, 재정이나 인력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는 것을 (정부가) 부담스러워했다”며 “지금도 전반적으로 공공의료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에 큰 의지가 없다는 것은 재정 투자계획에서 나타난다. 올해 복지부 예산에 공공의료 관련 항목은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에 165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 정도가 전부다. 공공병상을 10%에서 30%까지 확충하기 위해 5년간 4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던 노무현 정부의 청사진과 견주면 미흡한 수준이다.
정 원장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중앙 감염병 병원’으로 지정된 국립중앙의료원은 복합성 질환이 있는 코로나 환자 특수진료부터 수도권 병상 배분, 감염병 확산에 대비한 총괄 교육·조정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민간병원, 특히 상급종합병원들은 암을 잘 치료할 수 있도록 공장처럼 잘 세팅되어 있는 곳이다. 그래야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이런 병원들은 감염병 대응에 동원될 수가 없다. 질 좋은 공공병원이 확충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코로나 때문에 다시 깨닫게 된 셈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그는 지역 간 의료불평등의 심각성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먼저 느꼈다. 충북 옥천군 보건소장, 전남 순천의 중소병원 원장을 지내며 오랫동안 지역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지방에 있는 병원들은 고령 인구가 많아지고 인구가 줄어들어서 경영난에 빠진다. 지방 환자의 30%가량이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지역 병원을 찾는다. 공공병원이 이런 지역 의료격차의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줘야 한다.”
그는 양질의 공공병원 확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립대병원이나 지방의료원 중에 껍데기만 공공병원인 곳도 많다. 그런 상태에서 투자가 제대로 안 되니, 병원의 질은 더 낮아지는 것이다.” 그는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핵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력”이라고 여긴다. “의사 인력 확충이 국립대병원 정원 늘리기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국립대가 아닌 국가 책임하에 필수의료인력을 키워내야 한다. 이런 인력을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 국립대병원에서 순환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면, 국제보건의료 업무 등 다양한 개인의 요구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정부 안팎에서도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다시 각인되기 시작했다. 공공병원과 공공의료인력들이 코로나 환자 진료의 최전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코로나가 없었으면 공공의 ㄱ자도 안 나왔을 것”이라며 “지금은 당장 급하니 공공병원에 여러 권한과 역할을 주지만 다 끝나고 나면 원위치로 돌아갈 것 같다는 불안감도 있다”고 씁쓸해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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