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왼쪽)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2021년9월2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노정 실무교섭이 타결된 뒤 서명한 합의문을 교환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취약한 공공의료 체계의 민낯이 드러남에 따라 지난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복지부)가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처우 개선에 합의한 지 2일로 1년을 맞았다. 하지만 내년 공공의료 예산이 삭감된데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에 적정 인력을 배치하기 위한 의사 양성·증원을 위한 사회적 논의도 실종돼 합의 이행 점수가 ‘낙제점’(F)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 보건의료노조와 복지부는 이른바 ‘9·2 노정합의’ 1주년을 맞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 3년, 공공의료 확충, 보건의료인력 처우 개선 어디까지 왔나?’ 토론회를 열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으로 의료 현장의 부담이 높아져가던 지난해 9월2일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5시간을 앞두고 복지부와 노조는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당시 합의문에는 △감염병전문병원 확대 △감염병 대응 인력기준 마련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및 지역의사제도 도입 등을 통한 의사 증원 △국립대병원 소관부처 복지부로 이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등이 담겼다.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등은 1일 9·2 노정합의 1주년을 맞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 3년, 공공의료 확충, 보건의료인력 처우개선 어디까지 왔나?’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핵심 방안 중 하나는 2025년까지 70여개 중진료권(각 시·도 내 인구 15만명 이상)마다 1개 이상 책임의료기관 지정·운영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공개된 올해 8월 기준 복지부 중진료권 확충 현황을 보면, 지금까지 책임의료기관 지정은 42곳에 그친다. 특히 복지부는 합의문에서 안양권·부천권·안산권·남양주권·제천권 등 20곳을 필수의료 제공에 필요한 공공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으로 언급했는데, 안산권을 제외한 나머지 권역은 책임의료기관 지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료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2021년까지 마련하기로 했으나,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보건의료노조는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예산이 불투명하다고 우려한다. 지방의료원 기능 강화 등에 필요한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예산’도 올해 1703억원에서 내년 1506억원으로 11.6%(197억원) 삭감됐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정부가 바뀌면서 공공의료 예산이 축소되고 있다”며 “정부는 공공의료를 ‘공공정책수가’로 풀어나간다고 했는데, 구체적 (계획 마련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지적했다.
공공·필수의료 분야에 적정한 의사 인력이 배치될 수 있도록 17년째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논의도 헛돌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의 의사협회 눈치 보기 등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사회적 대화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공공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이 추진됐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현장에선 간호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교육전담 간호사 지원사업’에 대한 내년도 예산은 확보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는 2019년부터 신규 간호사 역량 강화와 이직 최소화를 위해 교육전담 간호사 인건비를 지원해왔다.
조승연 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의사·간호사 인력 문제 모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필수의료 국가책임’을 제시한 새 정부에서 약속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양정석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합의를 대부분 이행 중이고, 새 정부 국정과제에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며 “실무협의체 등과 지속해서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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