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원은 짓는 데 최소 4년은 걸린다. 공공의료인력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나. 바로 결과물이 보이고 효과가 나타나지 않다 보니 정책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지난 21일 만난 윤태호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문재인 정부는 아동수당, 기초연금, 문재인 케어 등 보건복지정책에 종전보다 재정 투입 규모를 늘렸다. 돈을 쏟아부으면 곧바로 정책 효과가 나오는 정책들이다. 하지만 공공의료 관련 정책에 대한 재정 투자는 미미했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정책이 힘을 받을 리가 없다. 윤 정책관은 “그동안 공공의료는 정책의 중요도에 견줘 속도감 있게 추진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복지부 안에서 공공보건의료정책 등을 총괄하는 국장인 그는 코로나19 이후로는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도 겸직하고 있다. 2018년 3월 보건복지부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그는 건강불평등을 연구하는 예방의학과 교수였다. 그는 “정부 밖에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부처 안팎의 장벽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공공병원 확충 문제를 둘러싼 정부 내 온도차가 대표적이다. “대전이나 부산에 민간병원도 많은데 ‘왜 공공병원이 필요하냐’ ‘공공이나 민간이나 환자를 치료하는 건 똑같지 않냐’는 인식들이 정부 안에도 존재한다. ‘발상의 전환’이 있지 않고서는 공공병원 확충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대전과 부산의 공공병원 신축 계획은 정부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그를 포함한 일부 정부 관계자들이 공공병원의 사회적 가치와 중요성을 역설하고는 있지만, 재정 투입에 보수적인 경제관료들은 완고하기만 하다.
윤 정책관은 “공공병원은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전면에 나섰고, 평소에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의료급여를 받는 환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민 모두가 갈 수 있는 병원”이라며, 예타 면제 등을 통해 공공병원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밖에도 공공의대 설립을 통한 의료취약지 의사 확충, 국립중앙의료원 신축 이전,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의 협력체계 마련 등이 그가 꼽는 ‘공공의료 강화’ 방안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대한의사협회와 야당 등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공공의대 설립 문제는 21대 국회에서도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공병원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높아진 이참에 장기적인 공공의료 투자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이후에도 ‘공공병원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지만 단기적인 대책만 세우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윤 정책관의 말은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공공의료 관련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싶다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재정 투자를 망설이는 이들을 향한 호소처럼 들리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이제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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