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2일)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이날 ‘기자회견’은 그동안 온 국민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아온 황 교수가 국민을 상대로 할 수 있는 ‘마지막 회견’일 수도 있는, 각별한 자리였다.
지난해 11월 이후 석달째 온 나라와 국민을 ‘줄기세포’ 논란 속으로 휘몰아넣었던 당사자인 황 교수가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방송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황 교수의 회견을 본 뒤 아쉬움과 연민, 씁쓸함이 뒤섞였다.
‘최고과학자 1호 황우석.’ 국가를 대표하는 과학자로서 있을 수 없는 ‘논문 조작’으로 국가의 명예와 위신을 추락시키고 국민을 대혼란 속으로 빠뜨리게 된 데 대해, 당사자 황 교수가 ‘진솔한 참회’를 하기를 기대했던 까닭이다. ‘사기꾼’ ‘정치꾼’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인식하고 있는 황 교수에 대해 마지막까지 기대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우석 교수의 여러 발언 중에서도 지난해 6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세계를 놀라게 한 ‘줄기세포’ 연구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묻는 패널의 질문에 대해 황 교수는, 상황을 ‘우문현답’으로 만드는 `멋진 말'을 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는 전혀 모릅니다. 노벨상이 저의 목표도 아닙니다. 저는 만약 역사에 한 줄 기록이 된다면 ‘참 과학도였다’는 기록이 어느 가치보다 소중한 재산으로 남을 것입니다.”(2005년 6월7일 관훈토론회)
적어도 그는, ‘과학자’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었다.
“하늘 우러러 부끄러운 일 없다”던 황 교수에게 윤동주의 시처럼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는 ‘깨끗하고 분명한 참회’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황 교수도 이제 더이상의 ‘언론플레이’로 진실을 덮고 국면을 회복할 수 없는 것을 알 만큼 ‘아름다운 퇴장’을 바랐던 것은 사실이다.
비록 많은 허물이 있는 이라도 물러날 때 깨끗한 모습은, 그동안의 평가를 다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인이 읊은 것처럼 ‘아름다운 뒷모습’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떠나간 이는 이따금 ‘떠날 때의 뒷모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
황 교수의 참회와 사죄를 기대했지만, 12일 기자회견은 ‘변명’과 ‘책임전가’를 위한 마당이었다. 황 교수는 이날 자신에게 어쩌면 마지막으로 주어진 ‘중요한 기회’를 그렇게 썼다.
황 교수는 10시30분부터 진행된 기자회견의 대부분을 ‘참회’와 ‘사죄’ 대신 ‘대국민 언론플레이’에 썼다. 황 교수가 국민에게 사죄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기자회견에는, 황 교수의 말대로 ‘아무 죄없는’ 실험실의 연구원들이 황 교수 뒤에 도열했다. 회견장에는 척수 장애인단체 관계자도 황 교수의 참석 요구로 자리했다.
황 교수의 마지막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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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언론인 여러분께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이제부터 모든 화살은 저 한사람으로만 모아주십시오. 우리 이병천 교수, 강성근 교수, 여기에 나와 있는 우리 연구원들 일한 죄밖에 없습니다. 저를 믿고 끝까지 이 모든 연구결과가 진실인 줄 알고, 마치 저처럼 말입니다. 밤잠을 지새우면서 2006년 첫번째 임상실험에 돌입하기 위해서 갖은 애를 썼던 서울대학교 병원의 임상팀들, 한양대학교 한 교수님, 박 교수님. 또 그위험을 무릎쓰고라도 난자채취에 적극적으로 응해주신 한나산부인과 장 원장님, 구 원장님 이 분들 아무 죄도 없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 가야되는 손가락질이 있다면 그것은 저를 향한 화살로 돌려주십시오.
그리고 이 소모적인 갈등 이제 끝내주십시오. 칼이 필요하다면 저를 향해 내리쳐주십시오. 그리고 이제 여기에서 끝내고 대한민국의 과학을 위해서 다른 분들께는 여지껏 보여주셨던것처럼 저에게 주셨던것처럼 그 애정을 훌륭한 다른 과학자들에게 아낌없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 당국에 계신 여러분! 언론인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참회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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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황우석’이 그동안 자신을 믿어왔던 국민을 향해 진실을 밝힘으로서 ‘더이상의 소모적 갈등’을 끝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황 교수의 12일 기자회견은 도입과 마무리 발언에 ‘참회’와 ‘사죄’가 들어 있었지만, 내용적으로 ‘참회’가 아니었다.
그 것은 황 교수가 “미즈메디에 속았다”라고 기자회견을 한 뒤 다시금 들끓고 있는 ‘누리꾼 여론’이 증명한다.
황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학자로서 해서는 안될, 조작을 했다”고 밝혔으면 충분했다. 그리고 국제 과학계가 ‘사기와 조작’으로 판정한 자신의 논문에 대해,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밝혀낸 부분에 대해 “부끄러운 말이지만 내가 줄기세포 배양은 몰랐다. 내 성격이 꼼꼼히 지시하는 확인하는 성격이 아니다. 다른 연구자를 믿은 게 잘못이다”라는 식의 구구절절한 변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다투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다루는 자리에서 객관적 자료로 논증하면 될 일이지, 국민을 상대로 감정적 호소를 할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연구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서울대 조사위원회와 <사이언스>에, 그리고 검찰에서 이야기하면 될 일이다.
더욱이 '마지막 회견'은 국민들을 혼돈으로 빠뜨리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되었다. “이 소모적인 갈등 이제 끝내주십시오”라고 황 교수 스스로 말했듯, 황 교수는 자신이 불러온 ‘소모적인 갈등’을 끝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과학자’로서의 역할이었다.
여전히 ‘황우석 교수’를 ‘대한민국의 자존심’으로 여기고 있는 다수의 지지자들과 국민들을 향해, “사과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속았습니다”라고 말할 게 아니라 “참회합니다. 과학은 진실의 바탕 위에서만 나아갈 수 있고, 그럴 때에만 국익도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황 교수가 해명하고 의혹을 제기한 ‘구구절절한 부분’들은 전문가들과 검찰을 상대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달라.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 이게 증거다”라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황 교수는 국민을 상대로 한 참회의 자리에, “나도 속은 것 같다”며 음모설과 의혹을 퍼뜨렸다.
황 교수는 그동안 발언에서 유난히 “대한민국”을 많이 언급해왔다. 12일 기자회견에서도 8번이나 ‘대한민국’이 등장했다. 황 교수가 ‘대한민국’을 유난히 강조하면서 상당수 국민에게 “황우석 연구는 대한민국의 국익”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조작된 연구’에 ‘대한민국’이 의존한 만큼, ‘대한민국’은 추락했다. 한국 과학계가 외국 학계로부터 ‘접촉 금지’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한국인이 제출한 과학논문들이 예상치 못한 냉대와 홀대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을 되뇌이면서 진행된 황우석 교수의 ‘거짓’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국익이 되지 못했다.
‘과학자 황우석’의 ‘마지막 참회’가 그 소모적 갈등을 끝내지 못하고 오히려 이어나가게 해, 못내 아쉽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기회를 선용하지 못한 황 교수의 어리석음이 한스럽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