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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진주의료원 사라진 자리, 코로나 환자들은 123km를 달렸다

등록 2020-06-22 05:01수정 2020-06-23 20:53

[코로나 2차 유행 ‘경고음’, 최전선 공공의료 긴급진단]
② 더 불안한 의료 취약지


거창·진주·사천·남해·합천 등
마산의료원까지 먼 길 이동

1천명당 0.33개 음압병실도
서부권엔 4개뿐
마산의료원 전담병원 지정되며
일반 진료·취약층 사업 연쇄 피해
지난 2013년 폐쇄된 경남 진주시 초전동 진주의료원. 이 병원 폐쇄로 경남 지역의 공공의료원은 마산의료원 하나 뿐이다. 진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2013년 폐쇄된 경남 진주시 초전동 진주의료원. 이 병원 폐쇄로 경남 지역의 공공의료원은 마산의료원 하나 뿐이다. 진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23㎞. 경남 거창군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입원 치료를 위해 이동했던 거리다. 거창에서는 올해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 19명의 환자가 나왔다. 인구 6만명의 산간 지역에서 하루 1명, 많게는 하루 4명의 환자가 잇따르자,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추연욱 거창군보건소 주사(감염병 관리 담당)는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20살 청년부터 75살 할머니까지, 군은 환자가 나올 때마다 구급차에 태워 1시간 반에서 2시간 거리의 경남 창원 마산의료원으로 보냈다. 같은 경남이지만 거창 주민들에겐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먼 곳이다. 거창군은 물론이고 인근의 합천군, 함양군 내에도 종합병원과 지역응급의료센터가 한군데도 없다.

추연욱 주사는 “2009년 신종플루 때는 비교적 가까운 진주의료원이 거점병원으로 지정돼 1만2천명을 진료했는데 도지사가 적자가 난다고 없애버렸다”며 “대구처럼 확진자가 폭증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진주의료원은 1910년에 문을 연 국내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이었다. 하지만 2013년 5월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 적자를 이유로 강제 폐업시킨 바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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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이 사라진 자리

거창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주·사천·남해·합천에서 확진된 환자들도 60~110㎞ 떨어진 창원 마산의료원으로 먼 길을 떠나야 했다. 진주의료원 폐업 뒤, 서부경남에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활용 가능한 공공병원은 1곳도 남아 있지 않다. 진주 경상대병원이 있지만, 중증 환자를 받아야 하고 암센터와 응급센터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감염병 전담병원 기능을 하긴 어렵다.

2013년 강제폐업 직전 경남도립 진주의료원 모습. 현재 진주의료원 시설은 경남도청 서부청사로 쓰인다. <한겨레> 자료 사진
2013년 강제폐업 직전 경남도립 진주의료원 모습. 현재 진주의료원 시설은 경남도청 서부청사로 쓰인다. <한겨레> 자료 사진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 3월 코로나19 대응 브리핑에서 “국립을 제외한 도내 시·도립 공공병원 병상 1개당 1만1280명을 감당해야 할 상황”이라며 “공공병상 1개당 인구수가 전국 평균 4104명으로, 경남은 2.7배 수준의 인구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서부경남의 인구 1천명당 공공병상 수는 0.33개로 경남 전체 1.53개에 견줘 매우 적다. 음압병실도 경남에 총 36개가 있는데, 대부분 마산의료원, 창원 경상대병원, 양산 부산대병원 등 동부권에 있고, 서부권에는 진주 경상대병원 4개뿐이다.

이런 까닭에 서부경남은 정부에서도 공공병원을 신축해야 하는 지역으로 분류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지역의료 강화 대책’을 보면, 양질의 민간·공공병원이 없는 진주권(산청·하동·남해·사천·진주)과 거창권(합천·함양·거창) 등 9곳을 지방의료원·적십자병원 등 공공병원 신축 추진이 필요한 지역으로 분류했다. 복지부는 인구 규모와 이동시간, 의료 이용률 등을 고려해 여러 시군구를 묶은 중진료권 단위로 필수의료 정책을 관리하고 있다. 입원·응급·심뇌혈관질환 사망 비율이 지역 간 최대 2.1~2.5배 벌어지고 퇴원 이후 재입원하는 비율도 최대 1.7배 차이가 나는데, 필수 의료서비스를 제때 제공받지 못하는 지역이 적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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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더 커진 진료 공백

진주의료원의 빈자리까지 채워야 하는 마산의료원(298병상)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감염병 대응뿐 아니라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사업이나 지역사회 건강관리 사업에서도 경남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취약지를 방문하는 ‘찾아가는 무료검진’ 사업이다. 마산의료원 의료진은 1년에 40차례 정도 주말에 경상대병원 의료진과 함께 의료장비를 갖춘 버스로 작은 읍·면·동을 찾는다. 하지만 지방의료원이 1곳에 그치다 보니 한 지역당 2년에 한번꼴로밖에 방문하지 못한다. 황수현 마산의료원장은 “서부경남에도 지방의료원이 있다면, 두 의료원이 각각 진주 경상대병원, 창원 경상대병원과 팀을 짜서 작은 마을의 주민들을 더 자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공공병원 부족에 따른 취약층 진료 공백은 코로나19로 인해 더 커졌다. 도내 유일한 지방의료원인 마산의료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존에 하던 진료와 수술을 중지해야 했다. 특히 고령의 농촌지역 주민들은 무릎질환이 많은데,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길 기다려야 했다. 의료급여 등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민간 병원에서 300만원 정도 하는 진료·수술비가 이곳에선 150만원 수준이다. 송기혁 마산의료원 노조위원장은 “코로나로 일반 진료가 중단되자, 무릎관절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들로부터 문의 전화가 가장 많았다”고 전했다.

정백근 경상대병원 교수(예방의학)는 “경남 지역에는 하동·남해·사천처럼 인구가 적어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 꽤 많기 때문에,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민간의료에 기대서는 도민들에게 충분한 의료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근 경남도는 진주권 공공의료시설 설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도지사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없앴던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도민 참여단 100명이 직접 권고안을 낼 계획이다.

창원 진주/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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