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사인력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법 입첩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턱없이 모자란 의사인력으로 인해 간호사들이 피해를 입고 있으며 코로나19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현실을 비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대전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지역 의료체계가 곧 과부하에 걸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전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지방의료원이 없어 감염병 환자 치료를 위해 신속히 투입할 병상 자원이 적은 탓이다. 대전시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거치면서 지방의료원 신설을 추진해왔지만, 경제성을 따지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 발이 묶여 있다.
대전시의료원 설립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대전에서는 21일 0시까지 최근 엿새 동안 모두 36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지난 15일 한달 만에 지역사회 환자가 다시 발생한 뒤, 하루 3~7명씩 환자가 늘다가 20일에는 하루 사이에 10명이 양성 판정을 받는 등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최근 집단감염 첫 환자의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아 지역사회에서 ‘조용한 전파’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확진자들 가운데 60살 이상 고령층이 23명(63.8%)이라는 점에서 중증 환자가 늘어날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러나 20일 기준으로 대전에서 중환자가 발생할 경우 당장 입원할 수 있는 음압병상은 3개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 13개인 중환자 치료용 음압병상은 이미 10개가 차 있는 상태다. 통상 신규 확진자 수의 5~10%가량이 중증환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전파 속도가 유지될 경우 수일 안에 대전의 중환자용 음압병상은 부족해질 수 있다. 일반환자용 음압병상도 42개 가운데 현재 입원 가능한 병상은 13개뿐이다.
정부가 지방의료원이 없는 대신 국군대전병원, 대전보훈병원 등 소규모 공공의료기관을 대전지역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해놨지만, 제대로 된 음압병실이나 감염내과 의료진이 있는 것은 아니라 치료보다는 격리시설 성격에 그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방의료원을 서둘러 설립해야 한다. 대전시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지방의료원이 없어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피해도 컸다는 시 안팎의 진단에 따라 지방의료원 설립을 추진해왔다. 당시 노인질환 전문병원인 대청병원과 역시 노인 환자가 많이 몰리는 건양대병원 두곳에서만 17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고위험군이 몰려 있는 시설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오다 보니 병상 자원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하게 드러났다. 전국 사망자 38명 중 12명이 대전에서 나왔다. 박희용 대전시 보건정책과 주무관은
“당시에 민간 병원에 환자들을 받아달라 사정했고, 의료진이 부족해 군의관·간호장교까지 투입하며 대응했는데도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
이후 대전시는 동구 쪽 17만8000㎡ 터에 300병상 규모의 의료원을 2025년 개원하는 사업계획을 수립해 보건복지부와 협의한 뒤 기재부에 예타조사를 신청했다. 예타조사는 정부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2018년 예타 대상사업으로 선정돼 그해 5월부터 조사가 시작됐지만 2년 넘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기재부 의뢰를 받아 타당성조사를 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7월 대전시 지방의료원 설립 사업의 ‘비용 대비 편익’이 1.0을 밑돌아 사업 기준치를 넘지 못한다는 잠정 조사 결과를 냈다.
당시 편익 추정 항목에는 이용자의 이동시간과 교통비용 절감, 응급사망 감소 편익 등이 포함돼 있었다. 대전시 요구로 대전시의료원이 담당하게 될 결핵과 자살예방 사업도 ‘편익’ 추산에 추가됐다. 하지만 신종 감염병 관련 대응은 ‘간헐적으로 발생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편익’ 항목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잠정 조사 결과에 대해 대전시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방의료원의 공익적 성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며 경제성 재산정을 요구해놓은 상태다. 원용철 대전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공동대표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사안을 이렇게 경제성 중심 편익으로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전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지낸 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전 건양대 예방의학과 교수)은 “공공병원 예타 평가 항목이 지역에 다리를 건설하는 사업과 거의 비슷하게 돼 있으니 공공병원의 공공성 부분이 평가에 반영 안 되는 것”이라며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던 대전시의료원 설립이 좀더 빨리 이뤄졌더라면 코로나 사태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희용 주무관은
“코로나19 환자가 조금이라도 더 늘면 지역 내 병상 자원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메르스 때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부산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도권 다음으로 인구 규모가 큰 지역인데도 지방의료원이 1곳(부산의료원)밖에 없다. 국립중앙의료원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부산의 전체 의료기관 386곳 가운데 공공의료기관은 10곳에 그친다. 공공의료기관 비중이 2.6%에 불과해, 전국 평균(5.7%)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전국 시도 가운데 울산(1.0%)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특히 부산 서부권에 있는 사상구·사하구에는 응급의료기관이 아예 없다. 이에 부산시는 서부산의료원 신규 설립을 추진하려고 예타조사를 신청해, 2018년 12월 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뒤 평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보건소장을 지낸 의사 출신 공무원인 안병선 부산시 건강정책과장은 “공공의료원 특성상 수익성이 높을 수 없는데도 (한국개발연구원 쪽에선) 덩치 큰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 넣을 방법을 가져오라고 하니 답답하다”며 “공공병원은 학교나 도서관처럼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적인 코로나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공공병원의 예타 평가 항목을 바꾸거나 아예 예타를 면제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지난달 28일 ‘지방의료원 예타 면제’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21대 국회에는 공공병원에는 예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노정훈 보건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지방의료원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편익이 있는 만큼 대전시·부산시와 협의해 (예타를 통과할 수 있도록) 재정당국을 잘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최하얀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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