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12일 오전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서울 신도림역을 통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가 11일(현지시각)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유행’(팬데믹) 선언을 한 것과 관련해, 국내 전문가들은 대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고 본다. 코로나19에 대한 각 나라 대응의 양상이 이전과 획기적으로 달라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좀더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치료제 개발을 위한 각국 간 공조를 강화해야할 국면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팬데믹은 감염병이 한 나라를 넘어 세계 2개 이상의 대륙으로 전파돼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노출될 위험이 있을 때를 가리키는 용어다. 세계보건기구가 창설된 이래 팬데믹 선언은 1968년 홍콩 독감(H3N2), 2009년 신종플루(H1N1)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앞선 사례들에서 보듯 감염병 팬데믹에 대한 세계보건기구의 대응은 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팬데믹에 대한 기준, 지침 등도 모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것이다. 과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이 없지 않았지만, 팬데믹으로 발전하진 않았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서도 인플루엔자에 대한 지침과 기준이 대체로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선터(CDC)도 “새로 등장한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발전한다면 인플루엔자에 대한 지침과 대응을 활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지침은 감염이 진행되고 있는 나라들에 감염원 감시 강화, ‘사회적 거리두기’ 실시, 의료자원 확보 및 공급 등을 담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현재 우리나라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대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국가 간 이동을 제한하는 것도 여전히 권하지 않는다. 이재갑 한림대의대 교수(감염내과)는 “팬데믹 선언에 따라 한국의 코로나19 관련 대응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한국이 여태까지 써왔던 방법들이 다른 나라들에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2009년 신종플루 때와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점도 지적된다. 당시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한 데에는 백신과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원활하게 공급받기 어려웠던 나라들에게 치료제·백신을 공급해주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컸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아직 적절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못한 상태다. 한마디로 세계보건기구가 적절한 역할을 할 핵심적인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예방의학)는 “치료제도, 그걸 매개로 한 국제적인 공조도 없는 상황에서 세계보건기구가 앞으로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짚었다. 전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됐던 신종플루와 달리, 이번 코로나19는 초창기에 크게 확산됐던 나라들과 현재 확산이 시작된 나라들 사이에 시간적 격차가 크다는 점도 국제적인 공조를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팬데믹 선언은,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상징적인 의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선언 뒤에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답보 상태에 머물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재갑 교수는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의 국제 공조를 유도하는 정도가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자국 문제 해결에만 매달리게 되면, 저소득 국가들에게 적절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짚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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