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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황교수, 논문작성 이전부터 '11개로 늘려라' 조작지시했다

등록 2005-12-17 14:04수정 2006-01-17 02:33

김선종 연구원 현지 인터뷰 황우석 교수팀에서 일하다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팀에 합류한 김선종 연구원이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줄기세포 연구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피츠버그=연합뉴스)
김선종 연구원 현지 인터뷰 황우석 교수팀에서 일하다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팀에 합류한 김선종 연구원이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줄기세포 연구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피츠버그=연합뉴스)
김선종 연구원, <한겨레> 인터뷰 “줄기세포 2·3번으로 사진 조작 사실”
황우석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을 작성하기 전에 이미 11개의 줄기세포를 목표로 사진 조작 등을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피츠버그대에 파견 가 있는 김선종 박사는 16일(현지시각)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가 2·3번 2개 줄기세포로 사진을 11개로 불리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시점은 황 교수팀의 초기 줄기세포 6개가 오염돼 폐기된 뒤 미즈메디병원에 분양됐던 2·3번 줄기세포가 복원된 직후여서, 이는 황 교수가 줄기세포가 존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미 논문을 11개 줄기세포로 작성하기로 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김 박사는 이날 “줄기세포 2·3번을 가지고 사진을 많이 찍어 11개 셀라인 세트로 만든 것은 사실”이라며 “그것은 황 교수가 부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2·3번에 맞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염색했기 때문에 당연히 개수가 당연히 적었다. 그걸로 11개 셀라인을 만들다 보니 이런 문제(사진 중복)가 생긴 것이다. 인위적 조작, 단순 실수가 아닌 의도적 조작 인정한다. 제 잘못이다. 제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황 교수가 지시를 했어도 거부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테라토마 작업도 2·3번 줄기세포로 찍은 사진을 사용해 4번 테라토마 사진을 만든 것도 사실이다”라고 털어놓았다.

김 박사는 자신이 <문화방송> 피디수첩과의 인터뷰에 대한 해명 전자우편을 언론 등에 보내게 된 경위에 대해 “황 교수가 젼화로 내용을 불러주고, 그대로 메일을 작성해 서울로 보냈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피디수첩이 취재할) 당시 상황은 보기에 따라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지만 나로서는 언론과의 인터뷰가 처음이었던 데다 그 때 들은 이야기들이 몹시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위협으로 느꼈던 건 사실”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김 박사는 “<와이티엔>(YTN)과의 인터뷰도 자발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으며, 이 인터뷰에서 피디수첩의 발언을 뒤집은 것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그러나 애초 핵치환 방식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 맞춤형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로, 10~11월에 걸쳐 두 개의 줄기세포주를 수립했다고 밝혔다. 이후 4개를 더 만들어 모두 6개가 확보됐다. 김 박사는 “물론 핵치환 방식의 줄기세포인지 수정란 줄기세포인지는 당시에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누구도 그 부분(진실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줄기세포주 8개를 확인했으며 3개도 서울에서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당연히 정상적 과정을 거쳐 줄기세포주를 만들었고, 아침마다 8명이 모여 검증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가 모두 미즈메디병원에 있던 수정란 줄기세포로 판명된 데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겨레> 피츠버그/함석진 기자,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아래는 인터뷰 요지와 녹취록 전문이다.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 사진 조작 여부?

=6개 셀라인중 4개가 죽은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나머지 2개만으로 염색 사진을 찍어 황교수에게 가지고 갔다. 그 자리서 황교수는 (이것을 이용해) 11개의 셀라인 사진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옳지 않은 일이란 걸 알았고 당연히 거부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또 테라토마 작업도 2번, 3번 줄기세포로 찍은 사진을 사용해 4번 테라토마 사진을 만든 것도 사실이다.

-왜 그래야 했나?

=당시엔 논문(사이언스)이 급했기 때문에 일단 그렇게 넘어가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또 오염돼 4개가 죽긴했지만 그동안 기술을 쌓아왔기 때문에 이른 시일안에 다시 만들 자신이 황교수에게나 나에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사진을 늘리고 한 것은 어찌됐건 조작은 조작이다. 다 내 잘못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면 책임도 지겠다. 지금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일이 이렇게 커지기 전에 잘못했던 일을 속죄하고 떳떳하게 나섰어야 했던 점이다.

-애초 핵치환 방식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아예 없었고 모든 게 조작 아니었냐는 의혹에 대해선

=체세포 맞춤형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이후 10~11월에 걸쳐 두 개의 핵치환 방식의 맞춤형 줄기세포를 수립했고, 이후 4개를 더 만들어 모두 6개를 확보했다. 황교수도 기자회견에서 말한대로 연구원들은 아침 6시에 출근해 매일 줄기세포의 상태를 확인했다. 또 휴일도 없이 노력했다. 물론 핵치환방식의 줄기세포인지 수정란 줄기세포인지는 당시에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누구도 그 부분(진실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던 것이 1월9일 모두 곰팡이에 감염됐고, 살려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실패하고 6개 줄기세포 중 4개가 죽으면서 모든 문제(사진 조작 등)가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미즈메디병원의 논문과 황우석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 속 사진이 같은 것으로 드러난 부분은?

=사이언스 논문용 사진을 찍을 때 미즈메디병원 여자 연구원 한 명이 사진 해상도 조절 등을 해줬었다. 그때 그 연구원 컴퓨터에 사이언스에 들어간 일부 사진이 정리 안된 채 남아있다가, 미즈메디 병원 논문(생식생물학)을 작성할 때 섞여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김선종 연구원 인터뷰 녹취록

김선종 연구원 /사진 함석진 기자
김선종 연구원 /사진 함석진 기자

황우석 교수팀 연구원으로 미국 피츠버그대에 가 있는 김선종 박사는 16일(현지시각) 피츠버그 주택가의 자택에서 <한겨레> 함석진 기자 등 한국기자 10여명과 2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는 김 박사의 아버지와 부인이 동석했다. 먼저 김 박사가 황 교수팀 논문과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한 설명을 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김 박사 인터뷰를 녹취한 것이다.

황우석 교수님 노성일 이사장님 존경하는 것은 같다. 두분 다 열심히 사시는 분이고 한국이라는 사회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 지금도 저를 아끼는 마음 변치 않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 때문에 많은 갈등과 고민도 있었고 말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가장 잘못했다고 느끼는 것은 일이 커지기 전에 했던 잘못과 책임에 대해 속죄를 구하고 떳떳하게 나섰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한게 가장 큰 잘못..

연구팀은 25명으로 구성 각자 나름대로 분야가 있고 맡은 역할을 하고 있는 연구팀, 황우석 연구팀에서 분야는 인간배아줄기세포의 확립과 배양 특성분석에 관한 부분이다.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은 황교수님이 기자회견에서 말씀하신 대로 매일 아침 6시 출근해서 일을 했고 실험 시작 휴일도 없이 노력했다.

2004년 9월부터 체세포 환자맞춤형 인간배아 줄기세포의 확립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0월, 11월에 걸쳐 두 개의 맞춤형 인간 배아줄기 세포를 확립했다. 이후 4개의 셀라인을 확립했다. 모두 6개의 셀라인이 확립됐다.

1월초 셀의 컨테미네이션(오염)이 일어나게 됐다. 10~11월쯤 확립된 인간배아줄기세포는 안정성 유지를 위해 저희 병원에 미리 와 있었고, 이로 인해 서울대학교 오염되었을 땐 기존에 존재하였던 6개 셀라인은 모두 오염된 상태.

따라서 오염된 세포를 살리기 위해 6개 세포가 저희 병원으로 오게 됐다. 병원 쪽 항생제와 안규리 박사 항생제를 이용해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모두들 뛰어다니기 시작. 밤 11시 황 교수, 노 이사장, 안규리 교수 만났다. 노 이사장은 오염된 것을 그때 알았다.

다음날 새벽 5시 황 교수가 병원에 와서 세포 생사 여부 확인하고 서울대 가서 서울대 랩 오염 정도 줄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서울대에서 배양 중이던 기존 셀은 모두 폐기하는 걸로 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새로 만들어진 NT 셀라인(체세포복제 줄기세포주) 6개는 기존에 만들어진 두 개 셀라인은 이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많은 셀을 가지고 있었지만, 4개의 셀라인은 만든 지 얼마되지 않았다. 저희가 사용하는 배양용기가 있는데 각 1개씩 밖에 없었다.

그 오염된 것을 저희병원으로 옮겼기 때문에 서울대에서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된 거죠. 이후 다음날 병원 가서 세포를 살리기 위해 노력 많이 했고, 다음날 오후 3시 정도에 윤현수 박사(현 한양대 의대 교수)와 도저히 세포의 생사를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오염된 상태였기 때문에 황 박사, 노 이사장에게 말씀드리고 폐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저희 병원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NT(체세포복제) 2·3번 셀라인만 남고, 서울대에는 그 이후 2주간에 오염정화시스템 가동해서 1월 셋째주 안정성 여부를 확인한 뒤에 NT(체세포복제) 2·3번 셀라인이 병원에서 서울대로 가기 시작했다. 이후 저와 서울대 연구팀들이 셀라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 거쳐 4~6월 정도까지 6개의 셀라인을 제가 만든 것으로 기억한다.

곧 기존 2개 라인과 새로 만들어진 6개 라인, 제가 직접 확인하고 배양한 라인은 8개다. 이후 서울대에서 3개의 셀라인을 확립했다는 말을 들었고, 그건 모르는 사실이다. 그래서 모두 11개의 셀라인이다.

말씀 드리는 이유는 병원에서 갔던 셀라인이었다면 그런 노력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가슴 아파하지도 않았을 것. 이것은 서울대에서 함께 연구했던 다른 연구원들, 황 교수, 노 이사장 마찬가지실 거다.

사이언스 논문 2005년 3월15월 서브미션(접수)됐고, 2005년 5월 파이널 억셉트(최종 승인) 받았다.

1월9일 셀이 오염됐기 때문에 당시 실험에 이용할 수 있는 라인은 두 종류가 있었다. 이후 1월말부터 4월까지 새로운 셀라인을 만들기 시작한 게 제가 만든 6개 셀라인이고 동시에 3개도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

기존에 만들어진 셀라인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배아줄기세포주(ESL)의 특성분석(마커의 스테이닝, 분화능확인, 디엔에이지문검사, 면역거부반응 확인) 등 실험 수행했다. 제가 이용할 수 있는 셀라인은 NT 2번 3번 셀라인밖에 없었다. 가장 쉽게 할수 있는 방법이 마커의 스테이닝을 가장 먼저 수행했고 2번 3번에 대한 사진을 만들었다. 나머지 실험절차는 황 교수가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 그렇게 해서 2번 3번 셀라인으로 2번 3번 그림을 만들었고 그걸 황 교수에게 가져갔다.

지금의 제 생각으로는 6개 셀라인을 만들었다가 4개 셀라인을 실험실 오염으로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이른 시간 안에 셀라인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심감도 내부에 있었고 황 박사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2번 3번 그림을 가지고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 사실, 그리고 그것을 11개 셀라인 세트로 만든 것도 사실. 그것은 황 교수가 부탁했고, 저는 2번 3번에 맞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염색했기 때문에 당연히 개수가 당연히 적었다. 그걸로 11개 셀라인을 만들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 인위적인 조작, 단순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조작 인정. 이것은 결국 제 잘못이다. 제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황 교수가 지시를 했어도 거부했어야 했다.

그림 작업을 하면서 같은 병원에 있는 여자 선생님이 그림의 해상도 조절 등을 도와주게 됐다. 그래서 사진의 일부가 거기에 남아 있었고, (ㅊ박사) 논문 작업을 하다가 실수로 사진이 삽입된 것 같다. 저조차도 사진 중복사실을 몰랐다. 제 책임도 있지만 총괄하시는 다른 교수님들도 책임 있다고 본다.

사진을 겹쳐 썼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NT셀라인이 병원에 있는 수정란 셀라인으로 보도되기 시작. 저나 황 교수, 노 이사장 정상적 방법으로 셀라인 확립했고, 매일 아침 관찰했고, 아무 문제없이 배양되었기 때문에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다.

논문에 나와 있는 수정된 테이블을 보면 시간상 조금 페이지 번호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2,3,4,5,6,7이 처음 6개 셀라인인데, 4, 5, 6, 7은 계대가 얼마 되지 않아 얼마되지 않아 다 죽었다. 그러나 테이블에는 한참 진행이 돼 있는 걸로 표시돼 있다.

일반 국민들한테 더 이상 설명할수 없다. 서울대 진상규명위원회나 다른 기관에서 보게 되면 금방 나타나게 될 것이다.

2번 3번 셀라인은 저희 병원에서 테라토마 작업을 분명히 수행했다. 두개의 셀라인에 대한 테라토마 검증은 저희 병원에서 정확히 마쳤고, 사진을 많이 찍어 서울대에 보내줬다. 이 그림 결과도 스테인 사진과 마찬가지로 4번 셀라인으로 사용 된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은 황 교수도 인정한 걸로 알고 있고. 일단 그림에 대한 오류는 정확한 것으로 말씀드릴 수 있다.

가장 예민하게 문제되는 부분은 핑거프링팅 부분인데, 핑거프린팅과 HLA(면역반응) 타이핑은 제가 서울대서 튜브를 두개씩 받았고, 저희 병원에 와서 DNA 분리 작업을 수행했고 HLA타이핑을 위해서는 안규리 박사에게 보냈고, 핑거프링팅을 위해서는 장성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줬다.

만약에 병원 셀라인이 지금 첫 계대에서 누군가의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셀이 가있었다면 핑거프린팅을 하면 도너와 셀은 일치되는 결과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셀이 이상이 없었다고 생각될 수 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제가 받은 샘플 자체가 동일한 체세포일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세포에 대한 검증작업이 일뤄지면 쉽게 밝혀질 것.

제가 말씀드린 결과에 오류가 있을 땐, 논문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손상이 되기 때문에 황 박사나 노 이사장 새튼 교수 합의 아래 논문 철회를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고 이에 준하는 조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8월29일 미국으로 오게 됐다. 새튼 박사 랩 외에 다른 두 곳에도 지원을 했고 준어드미션 통보받은 상태.

박종혁 박사는 저와 15년 이상을 같이 지내 친형 같은 사이다. 박 박사와 상의한 뒤 새튼 교수는 영장류 분야고 해서 지원을 했고. 새튼 교수가 황교수에게 확인 메일을 보내왔고 황 교수는 지원했냐고 물은 뒤 가도 좋을 것 같다고.

한달은 아무 문제가 없없다. 피디수첩 선생들을 만나게 됐다. 10월20일 만나서. 인터뷰 끝나고 바로 황 교수와 통화.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셀라인의 진위 여부였다. 황 교수나 서울대연구팀이나 저나 셀에 대한 진위 여부는 의심해본 적이 없다. 배양을 거쳤기 때문에 의심할 수 없었다. 피디수첩 때 당황했고, 어렵게 인터뷰했던 것도 사실이고, 한학수 피디에게 인터뷰 뒤 2번 정도 방송 불가 통보를 두번 정도했던 것도 사실, 이메일을 보낸 것도 사실이다. 그 이후에 지금은 다 밝혀졌지만, 인터뷰 했던 내용이 황 교수에게 아주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심적 갈등이 컸다. 세명 한국인 출근뒤 퇴근때까지 그 얘기만 하다 간적도 있다. 나름대로 불안이 컸다. 그뒤 몸이 안 좋아져서 입원하는 일이 생기고, 그 사이 피디수첩은 황 교수를 만나 셀을 받아 검증절차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11일 정도 입원했었는데, 퇴원 뒤 2~3일 뒤 미즈메디셀라인과 셀라인이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박종혁 박사와 가족에게서 듣게 됐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서울대 선생님들이나 황 교수님이나 당황하셨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결과가 나온 뒤 황 교수 대로한 것 같고, 저에게 진술서 받아오라고 말씀 하신 것 같기도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생각을 오래 하신 뒤에 저랑 박종혁 박사 같은 사람을 못 믿으면 어떻게 연구하느냐 하면서 진술서 철회한 것으로 들었다.

(부인: 황 교수께서 전화하셔서 미즈메디병원 셀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양쪽을 드나드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시고, 남편한테 자백서를 받아오라고 말씀하셨다. 저는 스트레스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항의를 했다. 다음날 다시 전화를 하셔서는 김 박사 같은 사람을 못 믿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씀하셨다. 자백서도 내도 안줘도 된다고 했다. 날짜는 11월18일이나 19일이었던 것 같다. 퇴원 뒤 충격을 받을까봐 얘기를 하지 않다가 며칠 뒤 얘기를 하자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느냐고 저에게 물어봤다. 잘 모르니까 박종혁 박사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박 박사에게 바로 물어봤다)

그 이후에 제가 병원 있을 때 윤리문제로 방송됐던 것 같고, 일요일인가 노무현 대통령 발언이 나온 것 같고, 취재 문제, 진실성 논란, 인터넷에 제 피디수첩과의 발언 등이 뜨고, 그런 과정에 안규리 박사님이 오셨습니다. 오시게 된 11월30일에 전화를 해서 한국에 나와줄 수 있느냐 얘기를 하셨습니다. 새로운 셀라인도 봐주고, 은밀히 말씀하실 것도 있고. 퇴원뒤 1주일이나 열흘 뒤라 몸이 안좋은 상태라, 저희 아버님이 황 교수께 전화해 꼭 필요하면 한국에서 나오면 안되겠나 전화하셨고. 처음에는 강성근 교수와 이 박사님만 오시는 걸로. 그렇게 황 교수와 전화를 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뒤 바뀌었다. 안규리 교수님과 세계줄기세포허브 팀장이 오시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다른 선생님을 통해서 들어오시는 분이 허브 계신 분이 아니고 와이티엔 기자분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날 기자분들 많이 오셨고, 아파트 앞에서 사진도 찍고 방송도 하셨드라고요. 여기 주기적으로 경찰이 돕니다. 경찰을 한번 부른 것도 사실이다. 아이와 안사람이 상을 찡그리고 해서 경찰을 부르라고 했다. 경찰이 상주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아니다. 와이티엔 선생님 하고 인터뷰를 하게 됐다. 처음에 제가 직접 신청을 한 것은 아니죠. 사실적으로는. 그런 식으로 와이티엔과 인터뷰를 하게 됐다. 선생님들이 많이 느끼시겠지만, 제가 말이 뚜렷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두루뭉수리 하게 얘기하는 측면이 있다. 피디수첩과 얘기한 것 많이 포함시키고 사실적으로 얘기하려 했는데, 그런 부분이 많이 빠져 있는 것 같다. 시청자도 그렇게 느끼고 해서 제가 말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분들은 가시고 그날 기자분들이 집에 지키고 있을 것 같아서 하루 지나서 돌아왔다. 인터뷰는 인(INN)에서 했다.

(아버지 : 인터뷰를 하는 장소에 제가 있었다. 가장 예민하게 돼 있는 부분은 2개를 11개로 찍었다 그랬나. 그 자료를 여러 장 많이 찍었습니다. 그것을 황 교수에게 전해 드렸다데, 내용은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엠비시하고는 좀더 디테일하게, 와이티엔에는 전체적으로 제너럴하게 얘기한 것이다. 내용은 변화가 없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따라서는 와이티엔과 엠비시와 한 것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제가 퇴원한 뒤에는 섀튼 박사님이,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확할지 모르는데, 저희 상황을 많이 이해해주고, 많이 도와주고 챙겨줍니다. 들어온지 3개월도 안되는 사람이 휴가를 내게되고, 한달을 랩에 안나가고 있는 상황이고. 그 이후에 서울대학교에서 셀라인에 대한 재검증을 진행하신 것 같다. 그러다가 계속적으로 하시다가 12월13일에 황 교수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직도 서울대 병원과 저희 병원 뭐가 몇번이 잘못됐는지 모르고, 황 교수도 얘기를 안한 상태다. 새벽에 전화를 하셔서 셀라인을 빨리 다시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12월24, 25일까지 들어와 줄 수 있느냐 얘기를 하셨고, 가족들이랑 회의를 한 끝에 들어가는게 힘들다고 말씀드리고, 1월중순에 들어가면 어떻겠느냐고 말씀 드렸다. 황 교수는 너를 꼭 믿는다고 말씀하셨고, 한 두번 정도 전화가 왔다갔다 한 것 같다. 그뒤 전화하셨을 때 마지막으로 깊게 생각해보고 들어오는 방향으로 생각해보자고 하셨을 때 재차 거절을 말씀 드렸고, 그 때 자리를 언급한 것도 사실이다. 자리를 어디에 잡아주실 수 있고, 그런 편의와 다 생각해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못 들어간다고 말씀 드렸다. 그 뒤에 저희 이사장님이 조금 시원시원하게 말씀 하시는 편이지 않습니까. 거침 없이 말씀 하시는 편이라, 뭐 제가 피디수첩 선생님들한테 검찰 얘기할 때도 어떻게 들으면 위협적이고 어떻게 들으면 아닐 수도 있는데, 피디수첩 할 때는 정말 위협적이었습니다(웃음). 그때는 제가 놀랬습니다. 황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둘이 들어와서 못하면 셀라인을 만들지 못하면 이 상황을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것이 어떻게냐,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고, 박종혁 박사와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우리도 억울하니까. 맡기십시오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전에 뭐 우리가 미국에 영주권을 신청하느냐 그런 문제도 있었고, 저희는 정말 속상합니다. 한마디도 안했는데, 기사화돼서 나가고.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고. 멀리서 오셨는데, 만나지 않고 전화도 안 받고 예의가 아닌데 이해를 하셨으면 합니다.

(기자들 : 사람이 많으니 일인다 2개씩만 질문하자.)(충분히 말씀 들은 다음 하자)

12월14일 새벽에 저희 이사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그렇게 어떻게 들으셨는지는 몰랐는데 이사장님은 그때까지 정확하게 파악을 못하셨던 것 같아요. 황 교수 셀라인이 우리 미즈메디셀라인으로 확인됐다며, 사실대로 얘기해라. 그 다음에 논문에 거짓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사실대로 얘기해라. 이사장님 오늘 아침 말씀 하셨지만 그렇게 많은 말씀을 드리지도 않았고 솔직히 말씀드리지도 않았다. 총괄 책임자가 황 교수님이었기 때문에. 저는 미즈메디병원 사람이고, 저희 서울대 연구를 도와주는 자격으로 서울대로 가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제가 잘못한 건데. 당연히 황 교수에게 보고를 드렸어야 했는데, 그전에 말씀드렸던 사실과 셀라인의 혼합 여부는 저도 정확히 몰랐고, 지금도 정확히 모르고, 그런 소리는 들은 적이 있다고 말씀 드렸다. 그 다음날 황 교수님과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자리에서 저희 병원 셀의 진위 여부에 대해 말씀을 나누셨던 것 같고. 이사장님이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 하시는 것은, 잘 들으셔야 할 것 같다. 지금 김 연구원은 말을 바꿔서 줄기세포가 있다고 확인했다고 기사가 뜨는 것 같은데. 저는 셀라인을 만들었고, 제가 만들었을 때까지 의심을 하지 않았고, 황 교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고, 셀라인을 만들었다는 증거 자료가 다 있기 때문에 셀라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저희 이사장님께서는 황 교수님과 현재의 셀 상태를 물어봤을 때, 현재 셀이 뒤바뀌어 셀라인이 수립된 것이 하나도 없지 않느냐 생각하시는 거고, 저희 이사장님은 그래서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멘트를 하신 거고, 이에 반해 황 교수께서는 저도 마찬가지고 정상적으로 셀라인으로 만들어 졌고, 피디수첩 자체검증 결과 저희 병원 셀라인으로 확인됐고, 재차 확인한 뒤. 미즈메디에 15개 셀라인이 있는데, 그중 일부가 서울대에 가서 있는 것 같다. 황 교수도 그 이유를 모르고 저도 모르고 이사장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살아 있는 맞춤형 인간배아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다고 이사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고. 황 교수님은 생각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 검증 결과는 10일 뒤면 판명이 난다. 두분이 모두 풀어서 검증하신다고 하셨으니까. 그때 있다 없다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 황 교수도, 이사장님도 모를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셔야 할 것이다. 제가 마치 셀이 없는 것처럼 말씀 해서 이사장님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가더니, 다음날엔 인터뷰에서 확인됐다 하면 제가 셀라인이 있다고 얘기한 것으로 기사가 나가고. 두분이 정확히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그런 기사는 안나갔으면 좋겠다. 저도 굉장히 궁금한 게 사실이다. 10일 뒤 진짜 엉뚱하게 세포가 나오면 그때는 문제가 있다는 거죠.

(냉동 배아 푸는 것과 검증에 대해 부연설명)

세포를 계속 키울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저희도 쉬어야 하고. 계속 키우면 사람처럼 늙는다. 세포가 나이를 먹는거죠. 계대배양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하다보면 세포가 나이를 먹게 되는 거죠. 자연적으로 오래 키우다 보면 유전적 병리가 보고돼 있다. ESL 자체가 일반 ESL 자체가. 특정 과정마다 세포를 얼려 둡니다. 필요할 때 다시 녹여서 쓰는데, 모든 랩에 다 시스템이 다 있다. 없으면 이상한 것이다. 저희 병원에 2·3번 셀라인이 넘어 왔었고, 주로 셀을 얼리는 작업을 했다. 오염 사건 같은 것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노 이사장님 증언을 한 것처럼 돼 있고, 그건 사실이고, 데리고 있던 사람이고, 황 교수님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섭섭한 것은 진술서 얘기를 직접은 아니지만 속이 상했고, 지난번 전화했을 때도 마지막 기회다. 사실대로 얘기해라. 다시 전화하셔서 빨리 들어오라고 하셨고. 저에 대한 의구심을 계속 가지고 계셨던 것 같고. 서울대와 병원을 용이하게 다니는 사람을 저로 생각하신것 같았고. 저는 같이 연구하는 사람을 의심을 피디수첩에서 내부 제보자 얘기하면서 특정 인물을 얘기했고, 우리는 아니라고 잘라서 얘기했고, 당연히 아니었고, 우리가 생각했던 제보자가 제보자로 판명됐다. 그분은 제보자가 아니라고 거꾸로 그쪽에서 말씀하셨고.

서울대학에서 미즈메디병원에 2004년 9월부터 2005년 2,3월까지 3명이 있었다. 이것은 참고사항입니다. 저뿐만이 다닐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서울대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다. 아이디카드가 없기 때문에 서울대학교 연구원 선생님들과 같이 함께 들어게 돼 있다. 셀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컬쳐 메디아에 저희 병원 셀을 가져와서 배양하는 것처럼 인터넷에 돼 있는데, 서울대 오염된 이후 2,3월 이후에 피더세포 등을 서울대에 공급했는데, 이후에는 2,3월 뒤에는 서울대에서 자체적으로 했다. 그런 시스템에서 서울대로 옮길 수도 없고, 작업을 할 때 서울대 연구원 선생님들이 옆에 항상 있다. 그런 뒤에 제가 셀라인을 만든 기억이 있고. 저의 병원 셀을 서울대에 가져가서 제게 돌아올 게 없다. 부귀영화를 얻는 것도 없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희 병원을 대표해서 가는 사람이고, 거기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느끼는 상황은 여기까지다.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범했던 일들, 지시르르 받았다 하더라도, 제가 한 일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진위 여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경우에는 확실히 임하겠습니다. 거기에 따르는 대응조처가 있으면 마땅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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