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서울대 교수
국내외 큰 관심에 ‘성과’ 과욕
2004년 2월호 <사이언스>가 발간되자마자 황우석 교수 팀은 국내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의 연구는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인간배아복제를 현실화해 줄기세포를 추출한 것이고, 이 줄기세포 연구가 실용화하면 난치병 치료에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3개월이 뒤인 2005년 5월 황 교수팀은 더욱 큰 개가를 올렸다. 황 교수는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에 관한 논문으로 이달치 사이언스 표지를 장식했다. 2004년 논문의 성과는 난자 제공자의 체세포 핵을 그 난자에 심어 줄기세포를 배양한 것. 2005년 논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난자 제공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체세포를 난자에 심어 맞춤형 줄기세포를 배양한 것이다. 더욱이2004년 논문이 242개의 난자를 이용해 복제배아를 만들어 1개의 줄기세포를 얻은 반면, 2005년 논문은 185개의 난자만으로 무려 11개의 줄기세포에 성공했다.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라는 한단계 진전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성공율도 크게 높여 실용화의 길을 열었다.
황 교수팀은 이 연구를 1년도 안 돼 속성으로 해냈다. 황 교수팀은 이 논문을 2005년 3월15일에 제출했다. 논문 작성 기간을 고려하면 2004년 하반기쯤에 이미 연구에 성공했어야 한다. 2004년 논문 발표 뒤 어수선한 기간까지 고려하면, 황 교수팀은 불과 6개월 남짓 만에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당시는 황 교수팀이 거침없는 질주를 한 것으로 보였지만 이것이 의혹의 시발이 됐다.
2004년 논문 발표 뒤 황 교수와 연구팀은 국내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황 교수의 연구는 국가사업으로 부상했다. 황 교수의 연구는 국외에도 크게 보도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국내외에 쏟아지는 관심과 칭찬은 고스란히 부담감이기도 했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관심에 둘러싸인 황 교수팀은 후속 연구 성과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2004년도 연구만으로는 상용화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 무리를 낳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 때문에 황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 지도부뿐 아니라, 연구실무진들도 성과제일주의에 짓눌렸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과학계의 ‘권력’으로 떠오른 황 교수 연구팀에서 성과를 보여준다면 출세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4년 논문 발표 뒤 황 교수는 과학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몇몇 연구원들은 대학교수 등으로 진출했다.
연구팀 지도부는 가시적인 성과에 급급하고, 이에 따라 실무 연구진들도 과장보고 등으로 지도부의 신임을 받으려고 애쓴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됐던 김선종씨의 사진 부풀리기 등도 이런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황 교수팀의 한 관계자는 “연구과정에서 3곳에 분산해 보관하며 키우던 줄기세포 모두가 죽는 어려움도 있었다”도 밝혔다.
<한겨레> 사회부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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