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조작사건' 발표하는 수사팀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이인규 3차장 검사가 12일 오전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과 연구비 사용 내역 등에 관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과학계 음지 파헤친 수사 뒷이야기
121일만에 144쪽의 수사결과 보고서 공개
황우석 검찰에 조그만 목검 걸고 나와 ‘기싸움’
121일만에 144쪽의 수사결과 보고서 공개
황우석 검찰에 조그만 목검 걸고 나와 ‘기싸움’
검찰이 수사 착수 121일 만에 144쪽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수사 결과 보고서를 내놓았다.
서울대 조사위 조사 결과를 놓고도 논란이 분분했고 여론이 극명하게 엇갈렸던 사건인 만큼 긴 수사 중에 드러나지 않았던 뒷이야기 역시 무성하다.
검찰 관계자는 "학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에 공을 넘긴 것 자체가 비극이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문제로 형사처벌 논란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마라톤 수사를 지켜본 심경을 토로했다.
◇ `증거조작' 시도하다 덜미 = 생소한 생명공학 분야를 수사하게 된 검찰은 수사 착수 이후 전문서적 탐독, 설명회 개최 등 `학습'에 주력하다 미즈메디 김진미 연구원을 소환 조사한 1월 하순 무렵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했다.
`바꿔치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선종 연구원이 김진미 연구원을 통해 증거인멸을 시도하려 했던 사실이 포착돼 `섞어심기'의 실체를 파악했다.
김 연구원은 작년 10월 말 황 교수가 NT-2,3 테라토마 슬라이드를 반환하라고 요청하자 김진미 연구원에게 전화해 DNA가 검출되지 않도록 약품 처리를 부탁했지만, 약품이 스며들지 않아 원래의 테라토마 슬라이드를 줄 수밖에 없었다.
BRIC 사이트에서 DNA 지문분석 조작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김 연구원은 체세포만으로 DNA 지문분석을 한 게 들통날까봐 김진미 연구원에게 시료를 폐기하라고 했다가 오히려 의심받을게 두려워 다시 갖다 놓으라고 전화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 섞어심기 시연하며 마라톤 수사 = 검찰은 김 연구원의 섞어심기를 포착한 이후 직접 섞어심기 과정을 핵심 연구원들과 시연하며 마라톤 수사를 벌였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서울대 조사위 결과에도 의문이 계속 제기된 터라 검찰은 줄기세포 조작 과정 전반을 재연해보지 않고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시연을 하면서 황 전 교수가 줄기세포 배양에 거의 문외한 수준이었고,연구실 시스템이 얼마나 경직돼 있었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검찰은 12일 언론 브리핑에서 줄기세포 섞어심기 시연 과정을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설명했다.
수사 초기에 초급 연구원들까지 모두 조사한 것도 전문적인 영역을 다루면서 기초를 다지지 않으면 수사가 부실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서울대 조사위가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던 미즈메디 실험실도 두 차례 방문해 조사했다.
검찰은 줄기세포 바꿔치기 가능성을 규명하기 위해 미즈메디 연구소에 보관하고 있는 수정란 줄기세포, 서울대 줄기세포 샘플과 김진미 연구원 집에 있던 Miz 1~15번, NT 1~14 샘플 등 254점의 샘플도 모두 유전자 지문분석 검사를 했다.
◇ 황 전 교수 `목검'으로 검찰과 기싸움(?) = 황 전 교수는 수사 중반인 3월2일 검찰에 첫 소환된 뒤 두 달 가까이 출퇴근 조사를 받았다.
황 전 교수는 검찰에 나왔을 때 조그만 목검(木劍)을 목에 건 모습이 목격돼 수사팀의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수사팀 관계자는 "차고 다니면 검찰에 맞서 이길 수 있다며 어느 스님이 줬다고 하더라. 세계적인 과학자라는 분이 목검을 갖고 다닌다는 게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조사를 받을 때도 황 전 교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검찰이 제공한 식사는 물론, 물 한잔도 입에 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져 이것도 `기싸움'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 작은 의심이 희대의 `과학사기' 규명 = 황 교수팀의 논문 조작 가능성은 사소한 의심에서 시작됐다.
2004년 논문에서 NT-1을 어렵게 수립한 뒤 황 교수팀에서 나온 유영준 연구원은 불과 몇 개월만에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10여 개나 만들어지자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의심을 품었다.
유 연구원은 황 교수팀에서 일했던 아내 이유진 연구원에게 분양받아놓은 NT-2를 떼어 달라고 부탁했고, DNA 검사 결과 Miz-4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자 고민 끝에 MBC PD수첩팀에 제보를 했다.
끊임없는 의문을 갖는 습관이 자칫 영원히 묻힐 수도 있었던 희대의 과학사기를 밝혀내는 단서가 됐던 셈이다.
◇ 검찰, 특수부ㆍ형사부 역량 총동원 = 생명공학이라는 전문 분야를 수사하게 된 검찰은 특수부와 형사부, 첨단범죄수사부 검사 등 검사 9명을 포함해 수사관과 수사지원팀 등 총 63명으로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팀장은 특수통으로 잔뼈가 굵은 홍만표 특수3부장이 맡았다.
그는 지난해 `유전 의혹' 수사를 이끌며 왕영용 전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 전대월씨 등 사건 핵심 인물 5명을 구속기소해 법원에서 모두 유죄를 받아냈다.
한화그룹의 대한생명인수 비리의혹 사건과 진승현 게이트 등도 홍 부장검사가 수사했던 사건들이다.
그는 1995년 서울지검 평검사 시절 태아 성감별 사건 전담 검사로 일했던 경험도 있어, 이번에 태아의 전단계인 `배아' 줄기세포 관련 수사를 맡았을 때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고 한다.
차명계좌를 63개나 만들어 갖고 있던 황 교수의 연구비 횡령은 서울지검 첫 여성 특수부 검사인 이지원 검사가 도맡아 처리했다.
이 검사는 지난해 대학 연구비 횡령 사건 수사를 맡아 서울대 연세대 등 명문대 교수 6명을 기소해 대학과 교육계에 자정 결의를 이끌어 냈다.
첨단범죄수사부 서영민 검사는 김선종 연구원이 미즈메디 병원에서 수정란 줄기세포를 가져와 서울대 실험실에서 `섞어심기'하는 과정을 모두 밝혀내 서울대 조사위 관계자들로부터도 전문가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 거짓말탐지기 조사받은 과학도들 = 과학은 검증된 진실만을 말하지만 과학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까.
검찰은 줄기세포 섞어심기를 황 전 교수와 김 연구원이 공모했는지를 밝히려고 두 사람을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벌였다.
김 연구원 단독으로 섞어심기를 했고 황 전 교수는 공모하지 않았다는 답변에 두 사람 모두 진실 반응이 나왔다.
거짓말탐지기는 고의로 거짓말을 할 때 들통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다보면 호흡에 이상이 생기고 피부, 혈압, 맥박도 변화하는 점을 이용해 만든 장치다.
두 사람을 포함해 박종혁, 권대기 연구원 등 핵심 관계자 7명을 조사할 때는 진술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요 진술을 모두 녹음하고 영상으로 제작했다.
◇이병천 교수 한때 긴급체포 = 논문 조작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난 이병천 교수는 수사가 마무리에 이른 지난달 말께 검찰에 긴급체포됐다가 풀려났다.
나중에 검찰이 밝힌 내용은 연구비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
액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아 강제 조사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1999년 8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허위 세금 계산서 등을 이용해 재료비를 청구하는 방법으로 정부 지원비 2억4천6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 (서울=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