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의 <나의 생명이야기>를 읽고 감동받아 연구를 위해 난자를 기증하기로 결심하고, 2005년 2월 미즈메디 병원에서 난자를 채취했습니다. 이후 복부 팽창과 미열, 비염 등의 증상이 있었고, 몸무게가 7kg이 줄었습니다. 질염이 한달간 지속돼 치료를 받았고, 우울증으로 현재 직장도 그만둔 상태입니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연구팀에 난자를 제공했던 20대 여성이 21일 오전 10시 국가와 난자채취 의료기관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한 얼굴, 비쩍 마른 그녀의 몸은 한눈에 보기에도 ‘정상인’과는 차이가 있어 보였다.
“황 교수를 신뢰했다”는 그녀는 난자문제와 줄기세포 진위 논란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끝까지 믿고 싶었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지만,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전 지금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잃었어요.” 기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물거품처럼 사라져갔다. 그녀의 고통은 오히려 파도처럼 밀려왔다.
“난자 채취의 위험성이나 부작용에 대해 전혀 설명을 듣지 못했어요. 동의서 작성시 부작용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제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경비한 것이었고, 불임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도 지속성 동통신체장애와 불면증, 식욕 부진 등의 증상을 겪고 있는데, 그것보다 더욱 두려운 건 향후 불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간혹 눈시울이 불거졌다.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어 담담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조차 신기할 뿐이다. 그녀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이나 이해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난자채취 피해자를 포함한 여성을 대표해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아이든 차별 없이 건강권을 누리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다”라며 “공감해 주시고 관심을 가져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고 말했다.
◇ “국가, 미즈메디병원, 한양대병원은 제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다”
21일 서울중앙지법에 ‘난자채취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20대 여성. 그녀는 “이번 소송의 목적은 개인의 이해나 이익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와 모든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소송의 취지를 설명했다. 김미영 기자
이날 그녀는 ‘황우석 연구팀의 난자채취 과정에서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었다’며 기자회견을 연 뒤 또다른 난자채취 피해여성 1명과 함께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원고는 그녀와 또다른 난자제공 피해여성이며, 피고는 대한민국과 의료법인 성심의료재단(미즈메디 병원), 한양학원(한양대병원)이다. 청구금액은 의료법·생명윤리법에 명시된 적법한 설명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정신적·신체적인 난자 채취 후유증, 국가의 줄기세포 연구 및 생명윤리위원회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배상, 노동능력 상실로 인한 피해 등을 감안해 1인당 3200만원이다.
이들은 소장에서 ‘비치료적 임상시험’의 특수성상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함에도 보건의료법과 생명윤리법에 명시된 ‘의학적 연구대상 여부’와 ‘생명윤리 및 안전’ 등에 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거짓임이 드러났는데도 의료법에서 밝히고 있는 환자에 대한 기록의 열람·사본 교부 등의 내용확인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생명윤리적으로 민감한 ‘난자’ 채취 과정에서 인권과 건강권이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제공된 난자가 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한 초기단계의 기초 연구에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난치병 환자들의 ‘치료’에 사용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제공받았다고 덧붙였다.
현장에 나오지 않은 다른 여성은 난치병으로 한양대 병원에 입원 중인 동생의 치료를 위해 난자를 사용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에 속아 난자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2004년 7월 한양대 병원에서 난치병을 앓고 있는 동생을 통해 황우석 교수의 환자맞춤형 연구 참여 형태로 난자를 공여할 것을 제안받아 지방에서 서울로 7차례 이상 오가며 시술에 필요한 검사의 호르몬 주사 등을 맞고, 2004년 11월 한양대 병원에서 난자를 채취했다”며 “실험에 필요한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 난치병 환자인 동생을 이용했다는 점 때문에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소장에서 밝혔다.
◇ 여성민우회·여성단체연합, 민변 등 소송과정 협조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대한YWCA연합회 등 36개 여성단체들이 21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서 ‘난자채취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 기자회견을 했다. 김미영 기자
이들의 소송에는 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단체연합·대한YWCA연합회·여성환경연대 등 36개 여성단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가 참여해 진행 과정을 도울 예정이다.
여성단체는 “난 2월부터 난자채취 피해자 신고센터에 접수한 6명 가운데 2명이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하기로 했다”며 “연구팀이 난자의 사용 방안 등에 관해 허위 또는 불충분한 정보를 제공했고 난자채취 시술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아 현행 보건의료기본법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했다”며 “연구를 지원한 국가와 연구를 실행한 각 의료기관은 위법한 의료행위와 감독책임 불이행으로 원고측이 입은 재산상 손해와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신고센터에 접수된 6건의 사례를 보면, 난자채취 여성들의 후유증은 연구자들이나 의사들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후유증과 부작용으로 고통을 겪었다”며 “그런데도 ‘부작용이 따른다’는 간단한 설명만 들었고, 배란촉진제를 통해 성숙된 난자들의 채취·보관·사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할 수 없는 등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와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었다”고 덧붙였다.
소송을 담당하는 김진 변호사는 “1인당 손해액을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3천만원에 치료비 및 노동력 상실로 인한 손해액 각 100만원 등 3200만원으로 산정했다”며 “그러나 신체감정 등을 통해 치료비와 손해액이 구체화되면 추가로 배상액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여성단체는 “황 교수팀에 연구용 난자를 제공한 여성이 119명에 이른다”며 “연구과정 속에서 여성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더 많은 여성들의 경험과 피해사례들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어야 한다”며 신고센터(www.womenlink.or.kr/nanja.html, 02-736-8020)를 계속 운영할 방침이다. 또 소송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활동(농협 085-17-000478 한국여성민우회)과 각종 홍보활동도 전개하기로 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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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으로 난자기증했던 한 미혼여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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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에 참석한 20대 여성의 심경고백 전문
황우석교수의 ‘나의 생명 이야기’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자발적으로 난자 제공에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증동기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을 뿐 난자 채취의 위험성, 난자 채취 과정 등의 기술적인 부분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1월 초 황 교수와의 면담에서는 위험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난자기증 동의설르 작성할 때 부작용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제가 겪은 것에 비해서는 경미한 것이었으며 불임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난자를 제공한 뒤에도 의학적 부작용에 대한 검증이나 치료는 전혀 없었습니다. 안규리 교수와의 면담에서도 기증동기에 대해서만 말했고, 부작용에 대한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황 교수의 면담을 거쳐 안규리 교수와 노성일 원장을 만났으며 열흘간 호르몬 주사를 맞은 뒤 2월5일 난자채취 시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이후 과배란 후유증이 심해 배에 복수가 차고, 숨쉬기가 힘들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소연했고, 결국 안 교수가 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해줬지만 하루만에 퇴원했습니다. 그 뒤 치료는 개인비용으로 부담했습니다.
몸 상태가 크게 호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줄기세포 진위문제가 불거져 정서적으로 타격을 받았고, 지금도 몸 여기저기가 아픕니다. 수면장애와 식욕부진, 정신장애 등의 증상까지 겹쳐 작년 11월말 다니던 직장을 포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황교수를 신뢰했고, 난자 문제가 터질 때만해도 오해라고 생각했으며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말 황 교수와 노 이사장이 기자회견을 할 때 ‘확실히 아니구나’라는 심증을 굳혔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수술대 오르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고, 그 이후에도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여기 이자리에 오니까 더욱 실감이 나고 한편으로는 여러분들 앞에서 담담하게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지난 1년간 언론보도를 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난자 문제’를 얘기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두려움’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일들 뿐만 아니라 제 몸과 마음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어떻하나, 제가 말하는 것들이 보편타당하게 여러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더욱 큰 것은 불임에 대한 공포입니다. 현재 불임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결혼 후 1년 이상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가진 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가부장적 혈통사회에서 불임이 큰 흠이어서 다른 생명을 잉태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가장 큽니다.
심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잃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사의 얼굴로 다가와 저를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지금도 저를 많이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인 치유와 소통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침묵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말했을 때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주변의 여러 여성들과 친구들, 일을 통해서 만난 많은 분들이 힘을 주셨고, 내 아픔을 함께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희망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경우뿐 아니라 많은 난치병 한자들이 그렇듯 황상이나 희망이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소송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이나 이해를 받기 위함보다는 피해자, 많은 여성을 대표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 자신을 감추고 있는 그분들이 떳떳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가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또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아이든 차별없이 건강권을 누리는데 기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제 이야기가 예외적인 하나의 케이스가 아니라 주변의 많은 여성들, 여러분 주변의 여성들에게도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많이 공감해주시고 함께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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