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마음의 약일까, 독일까? 담배(니코틴)나 커피(카페인)는?
원숭이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과실주를 마신다지만 인류는 신석기시대부터 인위적으로 술을 만들어서 마셨다. 술은 종류에 따라, 양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날그날의 신체적·정신적 조건에 따라 약주도 되고 독주도 된다. 술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심혈관계와 소화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발암물질이며 간, 면역계, 생식, 내분비계에 각종 질환을 일으킨다. 알코올(에탄올)은 워낙 작고 여러 표적을 건드리는 비특이적 작용을 보여서 신경계에 미치는 약리 작용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저농도에선 억제성 신경 전도를 막아 평소보다 기분을 좋게 하고 수다스럽게 떠들면서 사회적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흥분 작용을 한다. 하지만 고농도에서는 비특이적으로
모든 신경 활성을 억제해 기억이 소실되고 운동·감각 기능이 저해되며 정신병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게 된다.
술은 정신적·신체적 발달장애도 유발한다. 임신 중 여성이 술을 마시면 태아 알코올 스펙트럼 증후군이라는 발달장애 발생 확률이 커진다. ‘임신한 엄마’ 탓만 할 수도 없다. 필자의 연구진은 몇년 전 과연 ‘술이 엄마를 통해서만 태어나는 아이에게 문제를 일으킬까’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 동물을 이용한 연구를 수행했다. 엄마 쥐는 술을 마시지 않고 아빠 쥐가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임신해 태어난 새끼 쥐들이, 놀랍게도 임신 중 술을 마신 엄마 쥐에게서 태어난 새끼들보다 오히려 발달장애 유발 확률이 높거나 같았다. 남성의 음주와 후세대의 발달장애 관련성에 세계적으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발암성과 마찬가지로 술의 발달장애 유발 가능성에는 안전한 영역(역치)이 없다. 한잔의 술도 확률은 좀 낮을지 몰라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까지 음주가 몸에 괜찮다는 건지 과학자들도 잘 모른다. 현재까지는 하루에 한두잔(남자는 두잔, 여자는 한잔. 여자의 체중이 적어서가 아니라 생리적 반응이 달라서)은 괜찮다고는 하지만 40살 이후에 하루 한잔은 기대수명을 6개월 정도 감소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하루 평균 3잔 이상은 확실히 기대수명을 크게 감소시킨다.
알코올 중독이 되면 마약 중독 치료제인 날트렉손이라는 약을 쓰거나 뇌의 흥분성을 억제하는 아캄프로세이트를 사용한다. 예전에는 술이 대사돼 숙취를 일으키는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몸에 많이 쌓이게 함으로써 술이라면 넌덜머리가 나게 하는 디설피람을 술 끊는 약으로 쓰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술 끊는 약, 알코올 중독 치료제는 항암제, 코로나19 치료제, 이명, 알츠하이머 치매, 뇌졸중, 자폐증 등의 치료제로 연구개발이 진행 중이다.
그럼 니코틴은 어떨까? 담배의 해악이 워낙 극명해서 요즘은 전자담배로 니코틴만을 흡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니코틴은 아세틸콜린이 결합하는 두 종류의 수용체 중 니코틴성 수용체를 자극하는 물질이다. 정신 흥분성을 증가시키며 행복감, 집중력 증진, 기억력 촉진, 각성, 소화 촉진 등의 효과를 나타낸다. 소량을 흡입하면 혈압을 증가시키지만 양이 많아지면 혈압이 떨어진다. 좀 더 높은 용량에서는 집중을 저해하고 예민해지며 손발의 경련을 유발한다. 나아가 두통과 불안감이 커지며 식욕을 저해하고 복통과 설사, 불면증, 남성 성기능 장애까지 일으킨다. 니코틴 자체는 발암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알코올과 마찬가지로 임신 중 태아의 기형을 일으킬 수 있다. 니코틴은 가지과 식물(Solanaceae)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물질이며 강력한 살충 효과를 지니고 있어 유사 물질이 살충제로 활용되고 있다. 또, 니코틴의 다양한 약리 작용에 근거해 니코틴 유사체들을 파킨슨, 알츠하이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조현병, 자폐증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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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배와 함께 커피는 대표적인 기호품이다. 커피 없이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커피를 마시면서 느끼는 각성 효과는 카페인 때문이다. 대표적인 각성제인 카페인은 커피뿐만 아니라 차 종류에도 많이 함유돼 있다.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맛을 들이면 술·담배처럼 끊기 어렵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아데노신은 일반적으로 신경전달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데 카페인류 각성제는 이 아데노신 수용체를 억제해 흥분 작용을 나타낸다. 심장의 아데노신 에이(A)1 수용체를 억제해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뇌의 에이1, 에이2에이 아데노신 수용체를 억제해 잠을 안 오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 아데노신은 어린 동물에게서 시냅스를 안정화하고 나이 들면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발달 단계에서 아데노신 수용체를 억제하는 카페인에 노출되면 시냅스가 파괴돼 뇌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고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는 치매 예방 등의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예전에 아이들에게는 커피를 못 마시게 했다. 지금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카페인이 많은 에너지 음료와 콜라, 커피에 일찍부터 노출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어린이의 카페인 함유 음료 섭취와 학업 성취도가 반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카페인 섭취로 잠을 덜 자고 공부를 더 많이 할진 몰라도 집중력이 떨어져 결코 좋은 성적을 받을 순 없다는 얘기다.
카페인에는 기관지 확장 작용이 있어 카페인과 유사한 테오필린이라는 물질은 여전히 천식 치료제로 사용된다. 이뇨와 위산 분비 작용으로 커피를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가고 속이 쓰리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복잡한 카페인의 약리 작용을 연구해 파킨슨, 알츠하이머 치료제, 이뇨제, 항암제 등의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정교한 말과 표정, 동작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가족, 친구, 동료들과 소통하고 좋은 영향도 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 ‘과유불급’이다. 약리학에선 약의 물량이 넘치면 독이 된다는 원리를 생명처럼 여긴다. 좋은 말도 1절만 적당히 해야 한다. 좋은 말도 그러할진대 나쁜 말은 그냥 독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의 약과 독을 동시에 갖고 있는 셈이다. 살아가면서 약을 선물할지 독을 살포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타인의 말을 수용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모든 신경과·정신과 약은 플라세보 효과는 물론 노세보 효과(약효가 없을 거라고 믿어 진짜 약인데도 효과가 없어지는 현상)가 존재한다. 상대의 진심을 의심하면 그건 약이 아닌 독이 된다. 마음의 독이 아니라 마음의 약을 주고받는 마음의 의사, 마음의 약사가 가득 찬 세상을 기대한다.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과 내 마음이 다름을 인정하는 정신약리학자. 뇌 발달장애 기초연구 개척자로 뇌질환 동물모델, 기전 연구와 관련해 190여편의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