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참사 현장.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응급의료 책임자인 용산구 보건소장이 이태원에 도착하고도 진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용산구청으로 돌아간 사실이 확인됐다.
보건소장은 현장 응급의료소장을 맡아 환자 분류·이송을 지휘해야 하는데, ‘컨트롤 타워’ 격인 보건소장이 자리를 비우면서 응급환자 이송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보건소장은 사고 발생 2시간 만에야 참사 현장에 나타났다.
15일 용산구청과 소방·의료 당국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최재원 용산보건소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자택을 출발해 밤 11시30분께 이태원 지하철역 근처에 도착했다. 사고 발생 후 약 1시간15분, 소방 당국이 용산보건소에 출동을 요청한 지 40여분 만이었다.
하지만 최 소장은 곧장 참사 현장인 해밀턴호텔 주변으로 진입하지 않고 용산구청으로 발길을 돌린 뒤 구청에서 대기 중이던 용산보건소 신속대응반 직원들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했다. 구청에서 참사 현장까지는 약 500m 거리였지만, 도로 정체 탓에 차로 이동하는 데 30여분이 걸렸다.
최 소장이 신속대응반과 함께 현장에 나타난 건 사고 발생 1시간54분이 지난 30일 오전 0시9분이었다. 보건복지부의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매뉴얼’에 따르면, 관할 보건소장은 재난 상황에서 현장 응급의료소장을 맡아 환자의 응급처치·중증도 분류 등을 지휘해야 한다.
용산구청은 경찰 통제 탓에 보건소장이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용산구청은 <한겨레>에 “최 소장은 29일 밤 11시30분께 참사 현장 근처에 도착을 했지만, (그가) 보건소장임을 확인할 수 없던 경찰에 의해 통제됐고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며 “사무실에서 신속대응반 출입증을 챙긴 뒤 출동중이던 보건소 앰뷸런스에 합류해 현장으로 복귀했다”고 밝혔다.
최 소장이 이태원역과 용산구청을 오가는 사이, 현장에선 혼란이 이어졌다. “현장응급의료소 설치 인력이 부족하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왔고, 환자 분류도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체 사상자 194명 가운데 약 4분의 1(46명)이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뒤였다. 이 가운데 21명(46%)는 구조 당시 심정지 상태였는데, 현장에서 환자 중증도 판단이 이뤄지지 않아 회생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중환자보다 먼저 병원으로 옮겨졌다.
소방·의료 전문가들은 ‘경찰에 막혀 구청으로 돌아갔다’는 최 소장의 판단에 대해 “안일하다”고 지적한다. 환자 분류와 중상자 이송이 시급했던 만큼 공직 신분을 밝히고 현장에 진입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밤 11시20분 현장에 도착한 서울대병원 재난의료지원팀(DMAT·디맷) 역시 경찰에 출입을 저지당했지만 의료진임을 밝히고 현장에 진입했다. 염건웅 유원대 교수(경찰소방행정학과)는 “환자를 신속히 분류·이송하려면 소방·경찰·디맷 등 여러 기관을 연계하는 지휘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보건소장은 의료책임자로서의 소속과 신분을 명확히 밝히고 현장에 들어가 빠르게 지휘를 시작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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